[교황 선종] 한국과의 소중한 인연 프란치스코
아르헨티나서 헌신한 韓 수녀들에 감복
亞 첫 방문 이어 ‘2027년 또’ 약속까지
윤지충 바오로 등 124위 직접 와서 시복
한반도 평화 기원·2027년 WYD 서울로 결정
입력 : 2025. 04. 21(월) 18:55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주교 시절인 1993년 현지 병원에 파견된 한국 수녀들과 함께 찍은 기념 사진. 교황 방한준비위 제공=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선종한 ‘가난한자들의 성자’였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한국과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었다.

그는 즉위 후 선택한 아시아 첫 방문지를 한국으로 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이는 역대 한국인 추기경 중 절반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하는 결과로 연결 됐다.

이에 더해 교황은 오는 2027년 ‘세계청년대회’(WYD)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해 교황의 4번째 방한을 약속하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들과도 소통을 거듭하며 한반도 평화나 남북 관계에도 큰 관심을 쏟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첫 방문은 지난 2014년 8월14∼18일까지 4박 5일간이었다. 한국은 교황이 즉위 후 세 번째 외국 방문지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에 앞서 윤지충(1759∼1791) 바오로를 비롯한 한국 천주교 순교자 124위의 시복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이뤄진 시복식은 한국 천주교회 역사상 세 번째였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79위)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인 1968년(24위)에 열린 두 번의 시복식은 모두 로마에서 열렸다. 세 번째 시복식은 이와 달리 교황이 직접 한국에 와서 진행한 것이어서 특별함을 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중 세월호 참사 유족을 위로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나 꽃동네 장애인 등 고통받거나 소외된 이들과 마주하며 한국 사회에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기도했고 고급 방탄차 대신 준중형 자동차를 이용하는 검소하고 소탈한 행보로 감동을 안겼다.

교황은 2025년 봄 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산불이 확산해 큰 피해가 발생하자 위로의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2025년 3월 28일(현지시간) 한국 가톨릭교회와 행정 당국에 보낸 전보에서 “(교황은) 한국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인하여 발생한 생명의 위협과 피해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선에서도 한국에 대한 깊은 배려를 읽을 수 있다.

한국인 추기경은 그간 4명이 배출됐다. 이 가운데 염수정(82) 안드레아 추기경(2014년 서임)과 유흥식(74) 라자로 추기경(2022년 서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했다. 역대 한국인 추기경 4명 중 2명을 그가 임명한 것이다.

다른 두 명은 김수환 스테파노(1922∼2009), 정진석 니콜라오(1931∼2021) 추기경이다. 한국인 1호인 김수환 추기경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1963∼1978년 재위)가, 2호인 정진석 추기경은 2006년 교황 베네딕토 16세(2005∼2013년 재위)가 임명했다.

특히 유흥식 추기경은 대전교구장으로 재직하던 2021년 6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 주교였던 그를 장관으로 임명하며 대주교로 승품했다. 일반적으로 교황청의 각부 장관은 추기경이 맡는다는 점에서 파격 인사였다. 이는 세계 가톨릭교회의 총본산인 교황청 장관에 한국인이 임명된 첫 사례이기도 했다. 유 대주교는 이듬해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유 추기경은 과거 교황에게 한국 방문을 요청하는 편지를 여러 차례 썼고, 2013년 7월 브라질 세계청년대회 때는 교황을 만나 방한을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교계에서는 그가 교황의 한국 방문에 기여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유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가깝게 소통한 측근으로 꼽힌다. 2023년 9월 가톨릭 성지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 한국 최초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1821∼1846)의 성상이 세워졌다. 아시아 성인의 성상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 설치된 건 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이는 유 추기경의 의지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에 대한 애정이 결합한 결실로 풀이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의 신앙 대축제인 ‘세계청년대회’(WYD) 차기(2027년)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한 것에서도 한국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은 필리핀(1995년)에 이어 WYD를 개최하는 두 번째 아시아 국가로 선정됐다.

2014년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로써 교황의 4번째 방한을 약속한 셈이다. 비록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후임 교황의 몫으로 남았지만 1984·1989년(요한 바오로 2세), 2014년(프란치스코)에 이어 13년 만에 교황이 다시 방한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 WYD 지역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연구팀(이태준 교수 등)은 2027 서울 WYD가 11조3698억원의 생산 유발 효과를 낼 것으로 분석했다. 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1조5908억원, 고용 유발 효과는 2만4725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교황이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그가 주교로 활동하던 1993년 한국 토종 수도회인 성가소비녀회(聖家小婢女會)에 보낸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테오도로 알바레스 시립병원에서 활동하던 수녀회가 철수해 곤란한 상황이었는데 성가소비녀회가 수녀를 파견한 것이다. 이에 앞서 아르헨티나 현지 수도회 대표들에게 환자를 돌볼 수녀를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편지를 20여통이나 썼지만 답을 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니 한국 수녀들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스페인어를 거의 못 했지만,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았고 교황은 이에 큰 감명을 받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국내에 번역 출간된 ‘공존을 위한 8가지 제언’(책세상)에 소개된 프랑스 석학 도미니크 볼통과의 대담에서 환자들이 흡족해했다고 당시를 회고하며 ”(한국 수녀들이) 소통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눈으로, 미소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역대 한국 대통령들과도 긴밀하게 소통했다.

그는 2014년 8월 방한 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공항 영접을 받았고 이어 청와대에서 대화를 이어갔다. 2개월 후 박 대통령이 바티칸 교황청을 방문하면서 방한에 대한 답례 형식으로 교황과의 재회가 이뤄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통일된 한국에서 교황님을 다시 뵙기를 바란다“고 밝혔고, 교황은 ”동북아 평화와 화해, 그리고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 같이 기도합시다“라고 화답했다.

가톨릭 신자인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8년 10월과 2021년 10월 두 차례에 걸쳐 바티칸을 찾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났다.

교황청은 문 대통령이 처음 방문한 날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한반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문 대통령과 55분간 면담했다. 이는 앞서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면담한 시간(30여분)보다 훨씬 길었다.

유흥식 추기경 서임 직후인 2022년 8월 보낸 서한에서 ”교황님의 충실한 협력자로 대한민국의 유흥식 추기경을 비롯한 20명의 추기경을 새롭게 세우심을 축하드린다“며 ”교황님께서 대한민국에 대해 항상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시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2023년 9월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 기념일을 약 3개월 앞두고 ”한국과 교황청 수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그동안 다져온 우호 협력 관계가 더욱 심화하기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은 친서를 강승규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보냈다.
노병하 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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