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노크라시' 격화…대한민국도 '내전 안전지대' 아니다
[신간]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열린책들│2만2000원
바버라 F. 월터│열린책들│2만2000원
입력 : 2025. 01. 30(목) 13:33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내란 수괴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담장 너머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뉴시스 |
지난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시설들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의 난입으로 파손돼 있다. 뉴시스 |
민주주의가 확고한 안정성을 지녔다는 믿음이 오판이었다고 일갈하는 책이 출간됐다.
책의 저자인 바버라 F. 월터는 전 세계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분열을 조명하며 내전은 더 이상 중동이나 아프리카 대륙에 속한 국가들의 얘기만이 아닌, 민주주의를 오랫동안 유지해 온 국가도 겪을 수 있는 현실이 됐다고 설파한다.
실제 지난 20년간 세계 곳곳에서 발발한 내전 횟수는 그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저자는 최근 벌어지는 내전은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발생했던 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간헐적인 테러 행위와 함께 소셜미디어를 통해 갈등이 가속화되는 형국이라고 꾸짖는다. 이 중심에는 ‘아노크라시’(Anocracy)로의 추락이 있다.
‘아노크라시’란 독재도 민주주의도 아닌 중간 상태를 의미한다. 이 같은 ‘아노크라시’ 현상을 부추기는 사건들이 국내외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21년 1월6일 트럼프의 대선 결과에 불복한 폭도들이 미국 의사당을 습격했던 사건도 이러한 ‘아노크라시’ 현상의 일환이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부정 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극우 단체와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이는 현재 미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수십 년간 탐구해 온 내전, 정치적 폭력, 테러리즘 분야를 바탕으로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조명하고 사회적 분열과 파벌화, 극단주의를 심화시킨 요인을 분석했다.
앞서 벌어진 ‘서부지법 폭동’과 같은 폭력의 유력한 결정 요인은 한 집단의 정치적 지위의 궤적이다. 손아귀에 들어온 권력이 다시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볼 때 싸움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지위 격하’라고 지칭한다. 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서 누가 폭력을 행사할지 예측하는 방법으로도 여겨진다.
2010년대 이래 민주주의 사다리를 올라가는 국가보다 내려가는 국가가 더 많은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특히 부유한 자유주의 국가들에서 이러한 퇴보가 나타나며 민주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현대 사회는 과거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퇴보가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만 한다. 소셜 미디어는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의심을 키우게 하는 정치인들의 이용 수단으로 전락했다. 끊임없이 생산돼 퍼져 나가는 가짜 정보들은 제도에 대한 공격은 물론 언론, 독립적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가짜 정보를 활용해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법질서를 강조하는 극우파 후보가 당선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며 “특히 가짜 정보를 활용해서 부정 선거를 주장하고 일부 유권자들에게 선거 결과가 뒤집어졌다고 설득해 국민들이 선거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아노크라시’로의 추락은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적 갈등과 정치 이념에 따른 양극화가 극에 치달은 대한민국 또한 이 대열에 합류한 것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