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투명인간’ 노동자의 한숨과 땀방울의 연대기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6411의 목소리 | 창비 | 2만원
입력 : 2024. 07. 18(목) 17:39
지난 2일 경기도 화성시청에 마련된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 사고 추모 분향소에서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철저한 진상 규명 및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4일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일차 리튬 전지 업체 아리셀의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한국인 5명, 중국인 17명, 라오스인 1명이 사망하는 대형참사가 발생했다. 참사 원인으로 사전 안전점검 및 교육 미이행, 리튬 배터리 전용 특수 소화기 미구비, 스프링클러 미설치 등이 꼽힌다. 현재 사측은 외국인 사망자의 경우 비자 종류, 체류 기간 등에 따라 배상액을 차등 산정해 유족들에게 보상액을 제안해 논란을 키우고 있다. 아리셀 산재피해 가족협의회와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대책위원회는 “대형 재난 사고에 대한 통상적인 위자료 수준, 중대재해처벌법상 징벌적 손해배상 등도 적절하게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희생자에 대한 보상을 국적이나 비자 종류 구분 없이 평등하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과연 그들은 ‘얼마짜리’ 노동자였을까?

웹툰작가. 물류센터 직원, 도축검사원, 번역가. 대리운전기사, 사회복지사, 전업주부, 예능작가, 헤어디자이너, 농부, 건설노동…. 각자의 노동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수많은 이들. 전국 방방곡곡 다양한 현장에서 땀 흘리는 일흔다섯명의 노동자가 자신에게 익숙한 도구를 잠시 놓고 펜을 들었다. 그리고 각자가 일하며 겪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어떤 리얼리즘 소설보다 리얼하고. 어떤 시집보다 감동적이며. 어떤 에세이집보다 반짝이는 언어로 가득한 책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로 묶였다.

한편당 A4용지 한장 분량의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밀한 사연들은 오래 시선을 붙 든다. 화려하거나 미끈한 문장으로 포장되지는 않았지만 페이지를 가득 채운 진심과 진실은 곧바로 감전되듯 와닿는데, 그러면서 독자들은 순식간에 겪어보지 못한 삶의 현장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경험을 통해 독자들은 평소에 무심코 지나쳐온 일하는 얼굴들을 떠올리게 되며 그들이 어떤 기분으로 일터에 나가서 어떤 순간에 웃고 우는지를 짐작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나의 얼굴, 내가 사랑하는 이의 얼굴과 다르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이는 누군가와 함께 살아간다는 ‘공생’의 실감으로 이어지는 동시에 모두가 이 사회를 떠받치고 살아가며, 또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공존의 마음가짐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 책은 노회찬재단의 기획으로 시작되었다. 노동자가 직접 쓴 글을 받아 ‘6411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2022년 5월부터 한겨레에 연재를 시작했다. 억울한 사연, 힘을 보태 달라는 호소문, 위트 있는 일화, 따뜻한 감동을 주는 이야기 등 저마다 다른 얼굴을 지닌 목소리가 지면을 통해 사회에 발신되었다. 여태껏 한반도 사회적 발언권을 지녀보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였다.

“6411번 버스를 아십니까?” 우리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으며, 한국사회가 그 노동자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알린 고 노회찬 의원의 명연설이다. 그 연설 이후 6411번 버스는 소외된 노동계층을 대표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명이 6411의 목소리인 것은 그러한 이유다.

수록된 글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쓰였지만 모두를 한곳으로 이끈다. 바로 더 나은 세상이다. 여태껏 듣지 못했던, 존재하는 줄 몰랐던, 혹은 애써 외면해온 목소리들을 들음으로써 우리는 한발짝 더 나은 세상으로 향한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라는 책 제목은 자본이라는 가치에 매몰된 세상을 향한 모두의 질문이자 경고이다.
나는 얼마짜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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