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명장> "꽃 한송이가 주는 행복과 위안 나누고 싶어요"
‘충장로의 보물’ 동구의 명인·명장을 찾아서||23. 남영숙 화훼장식 명장||‘9전10기’ 호남 최초 명장 영예||직장생활중 꽃꽂이 매력에 빠져 ||작품성 향상 위해 선진국 유학도||조경학 박사 취득 활동범위 넓혀||“끝 아닌 시작, 업계 발전 이끌 것”
입력 : 2022. 09. 15(목) 17:25

남영숙 화훼장식 명장은 "꽃은 주는 기쁨과 갖는 기쁨을 모두 가진 생물"이라며 "꽃 한 송이로 제가 위로받은 만큼 남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전달하고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에서 두 번째, 호남에서는 최초의 화훼장식 대한민국 명장이 광주에서 탄생했다. 지난 50여년간 화훼디자인부터 원예, 조경까지 아우르며 활동해온 남영숙 명장이 그 주인공이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남 명장은 여전히 꽃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소녀처럼 웃는다. 플로리스트라고 하면 '고상한 취미이자 직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녀의 인생은 10번의 도전 끝에 명장 칭호를 따낼 만큼 열정적이었다.

대한민국 화훼장식 명장으로 인정받은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남 명장의 눈은 오늘도 열정으로 반짝이고 있다.

명장 칭호는 그녀의 화훼 인생을 인정받은 마무리가 아닌 시작이라고 말하는 남 명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광주 동구 금남로5가에 위치한 남영숙플라워앤아트에서 남영숙 화훼명장이 입구에 비치된 화분에 물을 주고 있다.

● 사무실 꽃꽂이로 시작해 화훼의 길 들어서

젊은 시절, 당시 하고 있었던 일에 도움이 될까 시작한 꽃꽂이는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20대 중반까지 국세청에서 비서직으로 근무를 하던 남영숙 명장은 꽃을 다루는 일에 익숙했다. 손님들을 맞을 때면 꽃을 마련해 자리를 꾸며야 했고 사무실 조경 등을 위해 업무에 활용하려고 꽃꽂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 명장은 "당시에 회사 퇴근하고 일주일에 한 번 가던 꽃꽂이 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졌었다"며 "3년 정도 배우면 강사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렇게 할 것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화훼를 배워보고 싶었고 또 강사로 활동하면 생활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화훼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퇴직 후 강사로 활동하던 남 명장은 1985년 당시 광주 동구 충장로에 위치했던 삼양백화점에 학원을 개원하고 교육자로서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현재는 금남로5가에서 남영숙플라워앤아트를 운영하며 화훼장식부터 조경, 원예까지 다양한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남 명장은 "화훼라고 하면 얌전히 앉아 꽃꽂이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사실 화훼는 식물이라는 자재를 가지고 길러내는 것부터 활용하는 것까지 모든 과정이 포함된 것"이라며 "꽃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을 화훼디자인이라고 하고 꽃을 길러내는 것은 원예라고 하지만 이 둘은 사실상 별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남영숙 화훼장식 명장이 화훼디자인 중 하나인 '행잉' 작품에 비커를 달고 꽃을 올리고 있다.

● 끝없는 배움과 열정으로 역량 높여

남 명장은 수많은 제자들을 두고 가르치면서도 본인의 실력에 의심이 들 때면 지체없이 다시 배움의 길로 나서기도 했다.

남 명장은 "1980,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인터넷이나 이런 것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때니까 지역에서 기술을 배우고 다루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었다"며 "평일에는 일을 하고 토요일이면 서울로 올라가 저도 배우는 시간을 갖고 일요일에는 다시 돌아와서 공부하고 월요일 출근하며 살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런 열정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국내에서 익힐 수 있는 기술에 한계를 느꼈을 때는 해외로 나가 화훼선진국의 기술을 취득해왔다.

남 명장은 "기술을 배우고 습득한다는 것은 끝이 없는 것 같다. 자기만족을 못 하는 순간들이 계속해서 찾아오는데 그래서 일본, 미국, 독일 등 각국을 다니며 다시 저 자신을 정비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화훼선진국의 플로리스트 교육 지정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하는 등 멈추지 않고 실력을 쌓아나가던 남 명장은 그 시간을 토대로 중·고등학교 기술반과 대학 창업반 등 가리지 않고 강단에 서며 후학 양성에 열정을 쏟았다.

늦깎이로 대학에 진학해 조경을 배우기도 했다. 석사 후 무려 9년이 걸려 조경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남 명장은 다수의 특허와 디자인등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남 명장은 "원예와 조경을 배우니 화훼디자인만 했을 때보다 훨씬 범위가 넓어졌다"며 "지난해에는 공학 전문가와 함께 수국의 색을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 재배 기계를 만들었는데 이런 기술들은 제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현장에서 꽃을 재배하시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에는 흙을 직접 만지고 식물의 생명을 보살피면서 치유를 받는 원예 치료도 각광받고 있는데, 이렇게 화훼라는 것이 정말 저희 삶 속에 가까이 있을수록 좋은 것이고 더욱 넓은 폭에서 이해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영숙 명장은 10번의 도전 끝에 지난달 30일 대한민국 화훼장식 분야 명장으로 선정됐다. 남 명장은 전국에서는 두 번째 화훼장식 분야 명장이며 호남에서는 최초다.

● "호남 최초 화훼명장으로 역할 다할 것"

남 명장은 9전10기 끝에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선정하는 대한민국 명장에 이름을 올렸다.

매년 접수를 받는 4월부터 면접이 진행되는 8월까지 5개월은 만사를 제쳐두고 명장 준비에 집중해왔다.

남 명장은 "화훼장식은 다른 분야보다 명장이 늦게 생겼다. 2012년에 생겼는데 당시에 처음으로 한 분이 선정된 후에 계속해서 명장이 나오질 못했다"면서 "그때부터 도전을 했는데 저도 그게 10년이 걸릴 줄을 몰랐다"며 웃어보였다.

이어 "무엇보다 호남지역 최초의 화훼장식 명장으로 선정된데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고 그날은 정말 많이 울었다"며 "제가 이토록 오래 도전해온 것은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남 명장은 열악한 화훼업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꿈을 꿔왔다. '명장'이라는 두 글자는 개인의 명예보다는 업계 전반의 경사였으며 앞으로 활동해나갈 자양분이 되는 셈이다.

남 명장은 "지금까지 화훼업계는 영세하고 작은 단체들만 존재해서 그동안 제대로 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발전도 더뎌 왔다"며 "업계 발전을 위해서는 통합된 단체를 만드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현재 남 명장은 가까운 업계 지인들과 화훼장식발전위원회를 꾸리고 업계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서삼석 국회의원과 국회에서 '화훼장식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남 명장은 "아직은 갈 길이 너무 멀지만 제 힘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날까지는 명장으로 책임감을 갖고 화훼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전했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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