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이승현>내가 사랑한 거짓말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입력 : 2025. 06. 04(수) 15:27
이승현 강진백운동전시관장
글씨 한 점이 210억원에 팔렸다는 뉴스에 귀를 의심했다. 중국 명나라 중기의 철학자이자 정치가로 알려진 왕양명의 시서(詩書) 작품이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경매 시장에서 1억 900위안에 낙찰되었다는 인터넷 보도를 보고 가짜뉴스나 오보라고 생각했다. 백운동 전시관에 있는 추사며 다산, 청명, 일중, 학정선생 등의 서예 대가들의 작품 값과 비교해 보자니 터무니 없는 가격에 놀라고 부러웠지만 믿기 어려워 기사 검색을 더 해보니 출처가 분명한 사실이었다. 정말로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지귀연 판사가 룸살롱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일까? 민주당과 사법부 간 진실 공방에 세상 사람들은 누가 거짓말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해하지만 직접 확인할 방법은 없다.

이재명 재판을 자신이 마무리해버리겠다고 했다는 대법원장의 말은 소문대로 사실일까. 의사 증원은 누구의 주장이 합리적인 것일까? 부정선거는 있었던 것일까? 세상의 부귀영화는 모두 누리고도 부족해 자신도 호남사람이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목 놓아 외친 한덕수의 말은 진심일까? 거짓말에 징용되고 계몽되고 노예처럼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단 말인가? 공부 잘하고 그똑똑한 대한민국의 엘리트들은 왜 거짓말의 앞잡이자 선동자, 배후조종자가 되었을까? 수많은 거짓말 중에 ‘호소용 계엄’은 단연코 ‘거짓말들의 왕’이다. 당대 최고의 거짓말이다. 그 계엄과 탄핵, 파면, 대선을 치루면서 거짓말 쓰나미가 나라를 덮치고 있다. 거짓말로 그리고 진위를 따져보는 일로 나라가 마비될 지경에 이르렀다.

얼마 전 장석남 시인이 보내준 시집 ‘내가 사랑한 거짓말’처럼 우리는 거짓말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내가 사랑한 거짓말로 자서전을 꾸민다. 나는 하나의 정원 한창 보라색 거짓말이 피어 있고 곧 피어날 붉은 거짓말이 봉오리를 맺고 있다. 거짓말을 옮기고 물을 준다. 새와 구름이 거짓말을 더듬어 오가고 저녁이 하늘에 수수만년 빛을 모아 노래한다. 어느 날 거짓말을 들추고 들어가면 나는 끝이다. 거짓말 내가 사랑할 거짓말 거짓이 빛나는 치장을 하고 거리를 누빈다.’

거짓말이 정치, 법조, 군, 종교, 언론, 대통령 주변 등을 누비고 다니고 거짓말 용병들은 옮기고 물을 주고 키운다. 거짓말을 생산하는 공장이나 키우는 양묘장도 있다. 혼탁하고 위태롭고 불안한 세상이다. 계엄과 탄핵, 대선을 거치면서 거짓과 선동이 극에 달하는 것 같다. 유튜브나 정치세력들, 이익집단들에게 거짓말이 하나의 상품이 되고 공개적으로 사고파는 시대가 되었다. 손톱만한 거짓말부터 개인을 파탄내거나 정권을 거머쥔 거짓말, 나라를 거덜 내는 거짓말을 수 없이 목도한다. 제어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 피해자는 누구란 말인가?

‘진실이 신발을 신는 중에 거짓은 지구의 반을 돌고 있다.’는 영국 속담처럼 AI와 빅데이터 기술이 발전하고 쇼셜미디어가 폭발하는 요즘시대에 가짜뉴스, 대중조작과 대중선동이 더욱 커지고 빠르고 교묘해졌다.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국민저항권’으로 세뇌된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가짜뉴스와 대중조작의 대표적 사산아다. 쏟아지는 정보와 선전에 일반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사실 불가능하다. 사고를 친 사람들이야 살기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쳐도 그것을 가려내야 할 심판들이 동조하고 은폐하고 나팔수가 되고 있으나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이른바 ‘확증편향’이나 잘못된 이미지나 선입관에 사로 잡혀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는 ‘정박효과’ 때문이라고 개인들에게 원인을 돌리지만 그 보다는 정치인이나 법원, 검찰, 경찰 같은 심판자들이 역할을 못한 책임이 더 크다. 국민들이 가장 신뢰해야할 공직자나 공직기관의 말을 사실로 믿는 국민은 별로 없다. 도의와 정직, 헌신이라는 사명과 덕목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사실만을 보도한다는 언론보도를 사실로 믿는 국민도 별로 없다. 우두머리에 따라 사실과 진실이 달라진다. 국민의 지탄을 받고 조직의 존재이유를 잃어가면서도 스스로 쇄신이나 ‘정풍운동’을 하는 집단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자주성을 상실했으니 강제가 필요하다. 부패한 기관이나 우두머리에 대한 합당한 청산과 강력한 윤리와 책임을 갖춘 조직으로 재탄생시키는 일이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할 일이다.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먼 임중도원(任重道遠)의 새 정부가 될 것이다

사족으로 210억에 팔린 서예작가인 왕양명(1472~1528)은 양명학(陽明學)의 창시자다. 양명학은 앎과 실천은 하나라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했다. 양명학은 단순히 이념이나 철학적 논의에 그치지 않고 지식과 행동이 분리될 수 없으며 참된 앎은 반드시 실천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인성이 양육되지 못하는 시대, 말만 무성하고 책임지지 않는 시대에 양명학을 시대정신과 정부의 국정철학으로 삼는다면 세상은 조금이라도 더 맑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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