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무더기 폐점 위기… “임차 점포 어쩌나”
61곳 임차료 협상… 17곳 계약 해지 통보
입점 매장 300개 안팎… 자영업자 불안 ↑
입력 : 2025. 05. 26(월) 07:47
홈플러스 본사. 연합뉴스
임차 점포인 잠실점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40대 A씨는 홈플러스 측이 최근 건물주에게 임차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는 뉴스를 본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A씨가 가게를 연 것은 지난해 2월로 홈플러스 측과 2027년 6월까지 전대차(임차물의 재임차) 계약을 맺은 상황이다.

홈플러스 측은 기한 안에 폐점 등으로 매장을 접게 되면 보상해 주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에 A씨는 보증금 2400만원을 포함해 1억5000만원을 투자했고, 이 중 8000만원은 은행 대출이다.

A씨는 “홈플러스가 기업 회생 절차(법정 관리)에 들어간 터라 폐점하면 약속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보상 없이 매장을 접으면 생계는 물론 매달 180만원에 이르는 원리금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홈플러스가 임차료 조정 협상이 지지부진한 17개 점포의 임차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입점 소상공인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계약 해지 대상 점포는 가양, 일산, 시흥, 잠실, 계산, 인천 숭의, 인천 논현, 원천, 안산 고잔, 화성 동탄, 천안 신방, 천안, 조치원, 동촌, 장림, 울산 북구, 부산 감만 등이다.

해당 점포에 입점해있는 매장 수는 대략 200∼300곳으로 추산된다. 점포별로 적게는 10여개, 많게는 30여개 매장이 영업하고 있다. 절반은 브랜드 본사 직영 매장이고, 나머지 절반은 순수 자영업자들이다.

문제는 홈플러스와 같은 대형마트에 입점해있는 매장은 특수 상권으로 분류돼 임대차 보호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최대 10년의 계약 갱신 청구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권리금도 받지 못한다. 폐점이 확정되면 6개월 이내에 문을 닫아야 한다.

그나마 회생 절차 개시 전 폐점이 결정된 홈플러스 부천 상동점이나 서울 동대문점에 입점한 점주는 위로금과 인테리어 투자비 일부를 보상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회생 절차 개시 이후로는 최소한의 보상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홈플러스가 임차료 협상이 끝내 결렬될 경우를 대비해 입점주 보상책을 마련했는지도 불확실하다.

홈플러스는 17개 점포의 임대차 계약 해지 통보 사실을 알린 지난 16일 점포가 문을 닫을 경우 소속 직원에 대해선 고용 안정 지원 제도를 적용해 인근 점포로 전환 배치하고 소정의 격려금을 지급하겠다는 등의 대책을 밝혔으나 입점주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없었다.

점주들은 홈플러스 측의 소통 부재와 무성의한 태도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실제로 상당수의 점주는 홈플러스의 임차 계약 해지 통보 사실을 언론 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점주의 생계가 달린 문제임에도 사전에 어떤 설명이나 공지도 없었다고 한다.

A씨는 “뉴스를 보고 매장 직원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폐점이 확정되지 않아 뭐라고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묻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하다”고 했다.

홈플러스 측은 뒤늦게 임차 계약 해지 대상 점포 입점주들에게 임차료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니 동요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입점주들은 홈플러스를 신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홈플러스 측이 수익이 나지 않는 몇몇 점포를 이미 살생부에 넣었다는 말도 돈다.

일산점 식음료 매장의 한 점주는 “기습적인 회생 절차 개시에 이어 예고 없는 임차 계약 해지 통보까지 두 차례나 뒤통수를 맞은 셈”이라며 “임차 계약 해지도 결국 손실 나는 점포를 대거 정리하려는 의도로 의심하는 점주들이 많다”고 말했다.

침체한 상권에 있는 점포의 입점주는 기업 회생 절차에 들어간 이후 방문객 수가 줄면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인천 논현점에서 음료 매장을 운영하는 B씨는 “회생 개시 이후 매출이 20∼30%가량 빠졌다”며 “문을 연 지 8개월 됐는데 영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폐점이 확정되지 않은 만큼 언급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해당 점포 입점주들의 불안은 이해하지만 현재도 임차료 협상을 지속하는 만큼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개시된 홈플러스 임차 점포의 임차료 협상은 건물주와 홈플러스 측 줄다리기가 이어지면서 장기화할 조짐을 보인다. 홈플러스의 임차 점포는 68개로 전체(126개)의 절반이 넘는다.

이 중 임차료 협상 대상 점포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점포와 회생 절차 개시 이전에 폐점이 확정된 점포 등 7개를 제외하고 61개에 이른다. 홈플러스 측은 건물주들에게 임차료 50% 인하와 일부 전대차 매장의 승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임차 계약 해지 통보가 된 17개 점포 외에 나머지 44개 점포에 대해서도 유사한 조건을 두고 협상이 진행 중이지만 아직 결론이 난 곳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임차 점포의 연간 임차료는 4000억원대이며, 임차 계약 기한 만료까지 계상한 리스 부채는 약 3조6000억원이다. 홈플러스와 건물주 간 임차료 협상이 장기화할수록 점포 내에서 영업 중인 매장 점주들과 노동자들의 불안감 확대는 불가피하다.

또 임차료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면서 홈플러스 회생 절차도 더뎌지고 있다. 회사의 존속·청산 여부를 가늠할 조사 위원의 조사 보고서 제출 기한은 지난 21일에서 다음 달 12일로 미뤄졌고 자연스럽게 회생 계획안 제출 기한도 다음 달 12일에서 7월 10일로 한 달 늦어졌다.
노병하 기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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