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김명선> "그래도" 새로운 시작들
김명선 계수초등학교 배움터지킴이
입력 : 2025. 03. 27(목) 18:10
“선생님 안녕하세요.” 멀리서 뛰어오면서 연수가 인사를 건넨다.

“안녕” “어서 오세요.” 또 뒤에서 쌍둥이 언니들과 함께 걸어온 나현이도 인사를 건넨다.

어느 엄마는 내게 인사를 하지 않는 아들의 머리를 손으로 누르면서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사를 해야지!”말하고는 나를 보고 씽긋 웃는다.

초등학교 등굣길에 학생들 보호를 위한 나와 학생들의 모습이다. 나는 경찰 생활 37년을 마무리하고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초등학교에서 배움터 지킴이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너희들이 나무 묘목이라면 나는 나무 고목쯤 될 것이다. 아이들과 눈 맞춤 인사를 할 때마다 나 자신의 지난날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반성하고 앞으로 더욱더 잘 살아야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학교 구성원들은 한 해의 시작이 3월이라고 느끼고 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3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새로운 시작은 태어나면서부터 몇 차례 과정을 거친다. 학교, 군대, 취업, 결혼 등 그중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새로운 시작점은 초등학교 첫 등교가 아닐까 싶다. 1학년 첫 등교는 흰 도화지에 첫 그림을 그리는 순수함과 설렘 그리고 조심성이 묻어나는 것처럼 학생이나 학부모나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입학식을 마친 다음날 학교 앞에는 첫 등교하는 1학년 어린 학생들의 모습을 조선시대 화가 김홍도가 있었다면 멋지게 화폭에 담았을 것도 같다.

엄마 손을 놓지 못하고 떨어짐이 아쉬워 계속 시간을 끄는 여학생,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서 품 안에서 울고 있는 남학생, 엄마 안녕을 외치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남학생, 학교 안으로 걸어가면서 계속 뒤돌아보며 손을 흔드는 여학생, 이런 아이를 떨쳐내고 까치 발로 내 아이가 눈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걱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엄마도, 아이의 뒷모습을 핸드폰으로 추억을 담고 있는 아빠도 끈끈한 정이 넘쳐난다.

이런 모습들을 언젠가 본 듯하다. 그래 논산훈련소였다. 군인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서는 논산훈련소를 거쳐야 한다. 아들과 부모들의 이별하는 모습도 지금과 똑같았다.

아들을 훈련소에 떨치고 돌아서는 아내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지금도 가끔 그날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은 기쁨, 설렘, 기대. 두려움, 걱정이 있는가 하면 누구에게는 눈물과 이별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더욱 자라고 성숙하고 또다시 새로운 과정으로 계속 가는 길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1학년 하굣길도 마찬가지다 이산가족이 상봉이라도 하듯 지금도 제법 쌀쌀한 날씨임에도 엄마들은 하교 시간 20여 분 전에 미리 도착하여 몸을 움츠리며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서있다. 이런 모습들도 어디선가 본듯하다.

30여 년 전에 지금 학부모들 첫 등교하는 날에도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여러분을 기다리는 모습에서 본 것 같다.

내리사랑 속에 갈수록 묻혀간 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교문이 열리고 아이들이 뛰어서 엄마의 품 안에 안기면 엄마는 아이에게 “잘했어 잘했어?”라고 계속 묻는다. 아이는 말없이 그냥 엄마 품에 안겨만 있다. 엄마는 온몸의 냉기가 금방 사라지고 몇 시간 이산가족처럼 모자상봉의 기쁨을 나눈다. 새로운 시작은 초등학교 1학년만이 아니다. 새롭게 단장한 교실도, 파란 새싹을 돋으며 교정을 꿋꿋이 지키는 나무들까지도,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짹짹거리는 새들까지도 새로운 시작에 들뜬 듯하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도, 학년이 올라간 학생들도,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과 어떻게 어울릴까 하는 설렘과 기대감에 부풀어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에서 공놀이로 뛰노는 학생들, 어깨동무로 웃고 달려가는 남학생들, 팔방 놀이로 계속 재잘거리며 웃고 뛰는 여학생들, 교실에서 울려 퍼지는 합창 노래까지도.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만남을 알리는 희망찬 신호 같다. 고목인 내가 묘목인 너희들에게 바램 하나 얘기해 볼까? 너희들은 앞으로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거야. 그러나 살아가는 길이 지금처럼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굴곡진 험한 길. 내리막길 비바람치는 길도 있을 것이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심과 험한 길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학교생활하면서 잘 배우고 익혀야 하겠지 지금처럼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건강하고 바르게 잘 자라도록 하여라.

‘너희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라는 노래의 가사처럼 너희에게는 내일의 찬란한 미래를 꿈꾸는 힘이 있다는 것. 너희들의 꿈이 실현되도록 이 고목나무 지킴이 선생님도 항상 바라고 또 바라겠다. 나의 작은 바람이란다. 추억이 깃든 학교 종소리는 아니지만 언제부터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벨 소리가 오늘 하루를 시작할 때 학생 두 명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헉헉거리면서 뛰어온다.

“천천히 오세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히-”동생이 늦잠을 잤어요!”

그래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감을 느낄 줄 아는 그 발걸음이 고맙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밖에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내몰고 있고, 아직도 어둠의 터널 속에서 많은 국민들은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치고 힘들어하는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고즈넉한 교정에서 바라본 교실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서 또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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