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활주로 탓?·유독가스?…전문가가 본 사고 원인
양쪽 엔진 기능 상실 가능성
동체 착륙시 감속 못해 충돌
직전 승무원 등 기절 가능성
기령 15년 노후된 기종 아냐
입력 : 2024. 12. 29(일) 18:49
전남소방대원 등이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태국 방콕발 무안행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의 실종자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나건호 기자
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추락한 여객기 사고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새 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이 꼽히지만, 동시에 양쪽 엔진이 모두 기능을 상실하고 무안공항이 동체 착륙을 하기엔 다른 공항과 비교해 활주로가 짧은 점 등이 합쳐져 사고가 더 커졌을 것으로 내다 보고 있다.

●랜딩기어·엔진·역추진 장치 모두 작동 불능 추정

무안공항 1번 활주로로 접근하던 사고 여객기는 1차 착륙을 시도했지만 정상 착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복행(Go Around)해 다시 착륙을 시도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전륜 항공기인 보잉737 기종은 항공기의 앞쪽 랜딩기어(노즈기어), 날개와 동체 중앙에 2개 이상의 랜딩기어(메인기어)가 있다. 하지만 사고 직전 상황이 담긴 영상을 보면 동체착륙을 시도하던 항공기의 메인기어와 노즈기어가 전부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끝내 항공기는 바퀴없이 활주로에 기체를 끌며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활주로 끝 외벽과 충돌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엔진이 전부 파손됐을 경우 랜딩기어가 모두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쌍발엔진을 갖추고 있는 해당 기종은 한개 엔진에 이상이 생길 경우에도 다른 한개의 엔진을 활용해 회항까지 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한개의 엔진만으로도 운항이 가능하다. 또 항공기는 바퀴의 브레이크 외에도 엔진의 일부를 변형시켜 추력을 통상의 반대 방향으로 작용케 하는 ‘엔진 역추진’ 장치가 있지만 엔진이 기능을 상실했다면 이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유난히 짧은 무안공항 활주로

국토교통부는 이날 사고 발생 이후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무안공항 활주로가 짧은 탓에 충돌사고가 났다’는 관측에 대해 “활주로 길이는 2800m로 이전에도 유사한 크기의 항공기가 계속 운행했기 때문에 활주로 길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공항을 건설할 때 활주로 길이는 ‘어떤 항공기가 들어오는가’가 기준이 된다. A380같은 대형 항공기가 들어서는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국제공항은 각각 3.7㎞와 3.6㎞과 달리 무안국제공항은 2.8㎞ 수준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항공기 동체착륙이 불가피할 경우 기장은 관제탑에 상황을 보고하고 승객에게 비상 착륙 절차를 안내한다. 충돌 여파로 폭발 위험을 줄이기 위해 탑재된 연료를 모두 소모하거나 방출하며 활주로에는 긴급 구조팀을 배치하고 활주로 바닥에 마찰계수와 화염을 냉각시킬 물질도 도포한다.

하지만 당시 여객기는 이미 우측 엔진에서 발생한 화염이 번지고 있었고 기체 내부에 연기와 유독가스가 들어오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랜딩 진입 각도도 양호했고 기장의 수동전환도 잘 됐으나 감속을 역추진 장치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던 점, 조향이 불가능했던 점으로 인해 감속할 수 있는 방법은 노면 마찰로 인한 감속 뿐이었지만 끝내 활주로를 넘어 외벽과 충돌할 때까지 속도를 줄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허드슨 강의 기적’…비상착수는 어려웠나

‘비상착수’는 애초부터 논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항공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무안공항 인근에는 항공기가 착륙할만한 강이 없고 만약 바다로 눈을 돌릴 경우 더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사고 항공기가 활주로와 충돌한 것처럼 빠른 속도로 충돌할 경우 폭발 여파는 덜했을 수 있지만, 충격 흡수를 거의 못하기 때문에 기체 파손은 더 심각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 승무원과 승객들이 해상탈출장비인 라이프래프트(구명뗏목)을 통해 탈출을 해야 하는데 강과 달리 파도가 치는 바다인 점과 겨울바다의 수온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강한 충격·유독가스에 비상탈출구 열기 어려웠을 듯”

객실 승무원은 매 이·착륙 30초 동안 현재 상태에서 발생 가능한 비상사태를 스스로 가상하고 취해야 할 행동을 30초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30 Second Review를 하며 비상상황 시 본인들의 안전보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한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이에 승객들에게 ‘버드 스트라이크’ 상황을 공지했고 비상탈출구 문을 열 계획도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탑승객 중 한명은 가족에게 충돌 직전인 오전 9시께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을 못하는 중”이라는 문자를 남기기도 했다.

승무원들은 동체착륙처럼 충격이 큰 비상착륙을 시도할 때 ‘브레이스’라고 불리는 머리를 숙이고 완전히 몸을 웅크리는 충격 방지 자세를 승객들에게 요구한 뒤 동체착륙과 동시에 비상구 옆에 있는 승무원은 곧바로 비상탈출구를 열어야 한다.

하지만 사고 여객기 비상탈출구가 열리지 않은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그 안에서 이미 충격 혹은 유독가스로 인해 기절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진경미 호남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는 “충돌 전부터 엔진 화재로 인해 유독가스들이 유입된 상황에서 강한 충격까지 발생해 고강도의 안전 훈련을 받아온 승무원들도 기절했을 수 있다”면서 “특히 보잉 737기종은 문이 더 무겁기 때문에 산소포화도가 부족했을 상황에서 비상탈출구를 열기가 어려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추락 여객기 보잉737-800…기령 15년 “노후화 아냐”

이번 사고가 난 여객기는 미국 보잉사가 제작한 보잉 737-800 모델로 189좌석을 갖춘 737-8AS이다. 해당 기종은 지난 2009년 8월 제작돼 비행기 기령은 15년으로 후속 모델로는 737-900·737MAX 등 이 출시됐다. 또 최근 국내 항공사가 신규 기종을 도입하는 추세를 보면 분명 신규 기종은 아니다.

다만 여객기의 경우 기령 20년에서 30년까지도 운행하기 때문에 여객기 노후화로 인한 사고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방청은 최고 등급인 비상대응 3단계를 즉시 가동하고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에 나섰다.

경찰과 항공 당국은 활주로 길이와 항공기 정비 상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
사건사고 최신뉴스더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 뉴스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