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반달곰의 꿈
김성수 논설위원
입력 : 2024. 10. 22(화) 17:31
지난 2015년 방사된 3살 된 수컷 반달가슴곰(KM-53)이 지리산국립공원을 벗어난 적이 있다. 90㎞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까지 이동했다가 결국 포획됐다. 어린 반달곰의 모험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인간 위협이냐” vs “이동의 자유냐”를 놓고 논쟁거리가 됐다.

2004년부터 본격 시작된 지리산 반달곰 종복원 사업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가 터진 ‘어린 반달곰의 가출’은 인간사회를 큰 고민에 빠트렸다. 사실 지리산국립공원은 반달곰에게 있어 가장 안전한 ‘울타리’다. 반달곰 복원사업이 오래 진행돼 지역주민들의 곰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밀렵의 위협 역시 낮다. 반대로 어린 반달곰의 수도산까지의 이동은 곰의 안전은 물론 인간과의 마찰도 우려되는 위험한 ‘자유’다.

국립공원공단의 ‘반달가슴곰 종복원 매뉴얼’에 따르면 방사 곰의 회수 조처는 사람에게 위협이 되거나 야생적응 가능성이 없는 개체를 격리할 목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어린 반달곰은 90㎞가 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수도산에서 숲 가꾸기 작업자들의 눈에 한번 띄었을 뿐 인간과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 등에서 받은 국감자료를 보면 현재 지리산 등에 사는 반달곰 총 89마리 중 위치추적기가 작동중인 개체는 32마리라고 한다. 일부 고장과 훼손도 있지만 야생에서 낳은 새끼들로 위치추적기가 부착된 적 없는 개체가 상당수를 이룬다. 반달곰의 개체가 자연 증식 중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서식지의 포화다. 지리산은 국내 국립공원 중 가장 면적이 넓지만 개체수가 늘어난 반달곰 입장에선 이젠 비좁은 공간일 뿐이다. 먹을거리 부족 등으로 자연스럽게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는 개체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리산 내 반달곰 복원사업 추진 과정에서 개체수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하는 논의가 전혀 없었다니 안타깝다. 개체수가 늘어난 만큼 추가 서식지가 확보되지 않을 경우 반달곰은 지리산에 갇힌 ‘사육곰’ 신세나 다름없다. 반달곰 종복원 사업의 성공은 반달곰이 ‘야생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곰의 민족이다. 동굴에 들어가 100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고 사람이 된 곰의 후손이라 배웠다. 점점 추위가 찾아들면서 반달곰은 깊은 겨울 잠에 빠져들 것이다. 다시 찾아올 봄엔 반달곰이 인간과의 마찰 없이 한반도 곳곳에서 자유롭게 서식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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