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정원거닐기
입력 : 2024. 10. 21(월) 16:05
최도철 미디어국장
 세계적으로 저명한 철학자나 예술가, 작가 가운데는 삶의 일부분으로 정원(庭園)을 가꾸면서 영감을 얻었던 사람들이 많다.

 시인이며 소설가, 화가였던 헤르만 헤세도 ‘정원에서의 생활은 인생에서 누리는 마지막 행복’이라 여겨 그 곳에서 보내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오로지 밤에만 글을 쓸 정도로 정원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고 한다.

 땅에 식물을 키우고 가꾼다는 것은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는 일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식물은 녹색을 띠어 생명을 연상하게 하니 그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그래서 혹자는 정원을 두고 둘러싸고(gan) 즐거움(oden)을 주는 곳이라고 해석한다.

 식물과 교감하고 가꾸는 것은 생명과 우주를 들여다보는 일인지라 그 마음에는 대지, 물, 햇빛 등 자연에 대한 경건함이 있다. 그리고 사계절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이 있으며, 생명력에 대한 확신도 있다.

 대부분의 정원지기들은 이 경건함과 믿음에 이끌려 이리저리 다니면서 섬세한 손길로 널따란 땅에 보이지 않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생명의 땅 남도 곳곳에는 정원지기들의 지극한 정성으로 가꾼 그림같은 정원과 수목원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2017년 고흥땅 끄트머리 작은 섬 애도에 ‘제1호 힐링파크 쑥섬쑥섬’을 시작으로 지난해 ‘제27호 우림원’까지 민간정원으로 스물일곱 곳이 등록됐고, 수국 천국으로 불리는 해남 포레스트수목원 등 사립수목원도 세 곳이 문을 열어 나들이객들을 반기고 있다.

 민간 외에 관(官)에서 조성한 정원도 있다.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도지사가 지정하는 지방정원이다. 전남 1호는 순천만정원이고, 담양 죽녹원이 2호로 그 이름을 올렸다.

 지난 달 지방정원이 한 곳 더 늘었다. 전라남도 최대의 산림 휴양공간인 구례 지리산정원이 3호로 등록됐다.

 지리산정원은 구례군 광의면 일대 193ha 규모로 야생화테마랜드, 지리산 자생식물원, 구례생태숲, 숲속수목가옥 등 정원시설을 포함한 공간이다.

 인간에게 영감과 마음의 안식을 주는 원천은 자연이다. 누구라도 갖가지 식물을 예술처럼 배치한 정원, 이 작은 우주 속에서 어슬렁거리거나 머무르면서, 일상 너머에 있던 자연의 경이를 감각하고, 사유하고, 상상한다는 것은 더없이 기쁘고 즐거운 일임이 분명하다.

 정원을 걷노라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같이 가을 정원 숲길을 거닐고, 쉬고, 생각하면서 마음 산책을 하다 보면 도시에서부터 따라온 이런저런 번뇌들이 절로 사라질 지도 모를 일이다.
최도철 미디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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