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끝나지 않은 전쟁’ 지뢰 제거 500년 걸린다니…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91)‘땅속의 숨은 살인자’ 대인지뢰
입력 : 2024. 08. 27(화) 17:54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장마철이 되면 비무장지대에서 폭우로 유실되는 북한 지뢰의 위험성이 언론에 종종 보도된다. 일반적으로, 땅에 매설되는 지뢰는 외부의 압력을 받으면 뇌관이 작동하며 폭발하는데, 대인지뢰와 대전차 지뢰로 나뉜다. 대인지뢰는 사람을 목표로 하고, 대전차 지뢰는 전차(탱크)를 겨냥한다. 수중 목표물을 공격하는 지뢰는 어뢰 또는 기뢰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대전차무기로 활용도가 높아졌다. 러시아는 2022년 2월 이래 우크라이나에 대한 불법 침공을 계속하면서, 점령지인 도네츠크 등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국토의 30% 지역에 지뢰를 매설해 놓고 있다. 전후복구를 위해서는 매설된 지뢰가 제거되어야 하지만, 이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지뢰 1발의 매설 비용은 10불 미만인데, 이를 제거하는 데는 300~1000불이 소요된다. 이처럼 매설된 지뢰는 전후 국가의 정상적인 발전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지뢰는 소총, 야포, 탱크, 전투기, 군함 등과 함께 전형적인 재래식 무기다. 그런데, 여타 공격용 무기와 달리, 지뢰는 주로 전장에서 적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데 쓰인다. 9세기 중국의 당나라에서 화약이 최초로 발명된 이후, 15세기에 명나라가 처음으로 지뢰를 사용했다. 지뢰는 아군과 적군, 민간인을 구별하지 않는 무차별적이고도 비인도적인 무기다. 지뢰 피해자의 80%가 민간인이고, 이 중 최소 20%는 어린이다. 현재 전세계에 매설된 지뢰는 1억 발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중, 지뢰가 가장 많이 매설된 지역은 수차례 전쟁을 치른 이집트와 이라크, 이란으로 1600만~2000만 발 규모가 매설되어 있다.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스마트 지뢰(smart mine)’가 개발되고 있다. 이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 폭발되거나, 또는 무능화되는 ‘현명한’ 지뢰다. 그렇지만, 지뢰의 전면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마트 지뢰도 결국 지뢰일 뿐’이라는 비판적 입장을 취한다. 한국 지뢰제거연구소에 따르면, 남북한에는 약 350만 발의 지뢰가 매설되어 있다. 비무장지대(DMZ)의 남쪽 후방지역에 150만 발, 그리고 북한의 북방 한계선 전후방지역에는 약 200만 발의 지뢰가 각각 매설된 상태다. 1953년 한국전쟁 정전 이후에도, 남한에서 발생한 지뢰폭발 사고로 2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다.

대인지뢰를 규제하는 양대 국제규범은 특정재래식금지무기협약(CCW)의 지뢰의정서 및 오타와 협약이다. CCW 지뢰의정서가 특정 대인지뢰의 사용을 ’제한‘하는 반면에, 오타와 협약은 대인지뢰의 사용, 생산, 보유와 이전을 ‘전면금지’할 것을 규정한다. 또한, 오타와 협약은 유엔 체제 밖에서 캐나다,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등이 주도하여 1997년에 채택된 국제법규범이다. 그 당시에, 비정부간 기구인 ‘대인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은 범지구적 지뢰금지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재 오타와 협약의 비준국가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일본 등 164개국이지만, 러시아, 중국 및 남북한 등은 아직 비준하지 않고 있다. 2022년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오타와 협약에 따라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ICBL를 창립한 조디 윌리암스(Jody Williams)는 수차례 비무장지대를 방문하여 우리가 북한에 앞서서 대인지뢰 폐기에 앞장설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으로서는 엄중한 안보 현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남북한 간의 긴장이 실질적으로 완화되거나, 또는 실효적인 대체수단이 개발될 때까지는 대인지뢰를 유지해야 한다. 그 대신, 우리나라는 지뢰매설 지역에 접근금지 표지를 설치하고, 민간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등 지뢰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북한은 올 4월부터 비무장지대의 북측 지역에 핸드폰 크기의 ‘나뭇잎 지뢰’를 비롯해, 수만 발의 지뢰를 새로이 매설하는 등 우리에 대한 도발 수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단위 면적당 매설된 지뢰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한반도다. 우리 국방부는 한반도의 지뢰를 완전히 제거하는 데는 약 500년이 걸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차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를 탐지하고 제거하는데 필요한 신기술을 꾸준히 개발해야 하는 이유다. 지뢰의 매설 장소를 특정하기 위해서는 적외선 장비를 탑재한 드론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뢰제거 작업에는 훈련된 로봇이나 특수 장비가 투입되어야 한다. 우리는 올해부터 지뢰제거용 로봇 생산을 시작하여 2027년부터 본격적으로 전력화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생산한 지뢰제거용 로봇이 우크라이나 등의 전후복구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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