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사도광산' 日 전범기업 상대 손배 일부 승소
접수 4년7개월 만에 1심 선고
유족 중 6명 승소·3명은 '기각'
입력 : 2024. 08. 27(화) 17:03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 강제동원 피해자 고(故) 이상업 선생이 생전 남긴 징용수기에 담긴 탄광 작업 자필 스케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본 전범기업에 강제 징용돼 탄광에서 고초를 겪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이 손배해상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

광주지법 제11민사부(재판장 유상호 부장판사)는 27일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9명이 미씨비시그룹 계열사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옛 미쓰비시광업 주식회사)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측 6명에 대해 일부 승소 판결했다. 나머지 원고 3명이 낸 청구에 대해서는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 미쓰비시 머티리얼에 “원고인 강제동원 피해 유족 9명 중 4명에게 각 1억원, 1명에게는 7647만원, 1명에게는 1666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나머지 원고의 청구는 기각한다”고 주문했다.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 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광업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 현지에는 27개 사업장을, 한반도 전역에 탄광 37곳과 군수공장을 운영했던 전범 기업이었다. 이들은 유네스코 산업유산으로 등재돼 공분을 산 군함도 하시마 탄광(2015년 등재), 사도광산(올해 등재)에서 조선인들을 강제노역시켰다.

현재는 고인이 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940년부터 1945년 사이 일제에 의해 끌려가거나 회유에 속아 일본 현지 미쓰비시광업이 운영하는 사업장(가미야마다·아케노베·오사리자와 탄광, 사키토 광업소) 등지에서 고된 노역을 했다.

이들은 모두 탄광에서 하루 2~3교대로 고달픈 육체노동을 하고 학대와 구타, 차별을 당했다. 매일 부실한 식사로 배고픔에 시달렸으며, 임금도 거의 받지 못하는 등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피해자 중 1명은 1945년 1월 탄광이 무너져 숨졌고 해방 이후 귀국한 동료가 유해를 수습, 고국 선산에 안장됐다. 생존 피해자들 상당수 역시 탄광 붕괴 사고 당시 허리·다리를 다치거나 우울증·신경 장애, 청력 상실 등의 후유증을 겪으며 광복 이후 귀국한 뒤 여생도 고통 속에서 보내다 사망했다.

이날 위자료 지급 판결을 받은 원고 이씨의 아버지였던 고(故) 이상업 선생(2017년 별세)은 가미야마다(上山田) 탄광에서 강제 노역할 당시 겪었던 징용수기를 직접 그린 연필 스케치와 함께 책으로 남겼다.

징용되던 당시 16살이었던 이씨는 지하 1000m 굴속에서 채굴 채탄작업 등 중노동을 하다 심폐증을 앓게 됐고, 1945년 8월엔 도망을 쳤다가 붙잡혀 다시 탄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이에 피해자 지원 단체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심의·결정통지서 심의 조서’ 등을 근거로 유족과 함께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020년 1월에 제기됐으나 소장부본 송달과 피고 측의 잦은 기일변경 등으로 공전하다 4년8개월만에 열렸다.

앞서 2018년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승소 판결 이후 광주에서는 피해자들의 집단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광주·전남지부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등의 지원으로 잇따라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 대부분 승소하고 있다.

현재 미쓰비시중공업·가와사키중공업·스미세키홀딩스 등 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은 항소심 재판 중이다.

이날 선고가 난 재판을 제외하면, 8개 일본 기업에 대한 8건의 손해배상 소송은 아직 심리 중이다.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 기업은 미쓰비시 머티리얼, 홋카이도탄광기선(도산 기업), 일본제철, 미쓰이 광산(현 니혼코크스공업), 히타치조선, 후지코시강재, 니시마츠건설 등이다.

이번 소송의 법률대리인 최정희 변호사는 선고 직후 “원고 대부분의 청구가 인용됐지만 기각된 원고 3명에 대해서는 강제동원 사실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다. 항소도 검토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은 피해자들이 ‘일본 제국 신민으로서 고생은 했지만, 불법으로 끌고 간 것이 아닌 합법적인 노동이었다’는 취지로 줄곧 주장하고만 있다”면서 “이번 소송은 원고가 사도광산 피해자는 아니지만, 대표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광업에 대한 사법적 단죄로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일제 패망 이후 해체됐던 미쓰비시 그룹은 1950년대 단계적으로 재결합했으며 옛 미쓰비시광업은 현재 미쓰비시 머터리얼 상사로 기업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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