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백세미의 진가
김성수 논설위원
입력 : 2024. 06. 25(화) 17:43
김성수 논설위원
2019년 7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발동한 시기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인 3개 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했다.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국내에서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가속화됐고, 일본 관광 취소도 잇따랐다.

반일감정이 확산될 시기, 한 시골 농협에서 ‘위약금을 감수하고 일본관광을 취소한 분들께 보상하겠다’며 이벤트를 꺼내들었다.

이름하여 ‘일본 여행 취소시 국내쌀 증정 이벤트’다. 이벤트는 개시 반나절 만에 내놓은 10㎏들이 쌀 500명 분이 동이났다. 큰 관심에 추가 이벤트까지 나섰다.

곡성 석곡농협이 출시 3년차인 고품질쌀인 ‘백세미’를 전국에 알린 일화다. 불과 3000만원 예산으로 ‘10000% 홍보효과’를 거뒀다는 게 자체 분석이다. 일본 관광을 취소하는 분들에 대한 보상 차원도 있지만 백세미를 알리기 위한 탁월한 기획이었다. 고작 면단위 시골 농협이 보여줄 수 있는 전략이란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반일감정을 이용한 홍보전략은 ‘장사꾼’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농민의 생계인 ‘쌀’을 팔아보겠다는 석곡농협 한승준 조합장의 간절함이라면 이벤트의 명분과 당위성은 차고도 넘친다. 한승준 조합장은 백세미를 팔기위해 쌀 무게를 ‘8·15’ ‘3·1’로 하는 등 애국심 마케팅과 8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백세미남 대회, 독도 마케팅 등의 아이템을 쏟아냈다. 한 조합장의 세일즈는 ‘북극에서 냉장고를 사막에서 전기장판을 팔겠다’는 불굴의 의지가 담겨있다. 갈수록 쌀 소비가 줄고 있는 상황에 일반 쌀보다 석곡농협의 백세미는 곱절만큼 비싸다. 고품질 쌀로 농가소득을 올려보겠다는 전략은 사양 산업에 투자를 하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사실 백세미는 찰기가 있고, 밥에서 누룽지 향이 은은하게 나 밥맛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매출 14억7000만 원으로 시작해 2019년 20억5000만 원, 2020년 34억9000만 원, 2021년 38억3000만 원을 기록했다. 2022년 이후 2년 연속 완판(매출 45억 원 규모)도 기록 중이다. 백세미는 최근 ‘2024년 전남 10대 고품질 브랜드 쌀’에 선정됐다. 5년 연속 선정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조합장은 쌀 한 톨이라도 팔기 위해 백세미를 들고 전국 곳곳에서 세일즈를 하고 있다. 농가는 땀과 노력으로 고품질 쌀 생산에 혼신하고 있다. 우리 식탁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쌀이지만 석곡농협은 고품질 쌀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이게 바로 깡촌에 자리한 석곡농협이 자랑하는 ‘백세미의 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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