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일의 색채인문학>피카소, 전쟁의 참혹함 회색빛으로 표현
(247) 회색과 시대
박현일 문화예술 기획자·철학박사·미학전공
입력 : 2024. 05. 07(화) 18:27
●색채와 시대

봉건시대 포고 관리들은 문장(紋章)의 상징색을 9가지로 사용하였는데, 하얀색이나 은색은 신의와 순결을 상징한다.

과거 제정러시아 때 8가지 이념을 색으로 나누었는데, 별다른 사상적 경향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회색으로 분류되었다.

괴테(Gorthe, 1749년~1832년)의 비극 『파우스트(Faust)』에는 ‘근심’, ‘결핍’, ‘죄’, ‘곤경’, ‘4명의 회색 여자’가 등장한다. 게으른 대학생으로 나오는 바그너(Wagner)는 악마 메피스토(Mephisto)가 하는 색채의 풍부한 말을 즐겨 인용한다. “귀한 친구여,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생의 황금 나무는 초록이라네 라고.”

영국의 추리 소설가인 아가타 크리스티(Christie, 1891년~1976년)의 범죄소설에 등장하는 에르쿨 푸어로 탐정은 회색의 뇌세포에 의지하며 싸운다.

회색으로만 그려진 가장 유명한 그림은 피카소(Pablo Picasso)가 1937년에 그린 《게르니카(Guernica)》이다. 게르니카는 스페인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Francisco Franco, 1892년~1975년) 장군의 공중폭격 명령으로 주민 전체가 몰살당했다.

회색은 각진 물건의 색이고, 회색 물건은 거칠게 보인다. 외관을 무시하는 공장의 콘크리트 건물과 군대의 막사는 회색이지만 그러나 커다란 저택은 하얀색이다.

1930년 화가이자 색 이론가인 한스 아돌프 뷜러(Hans Adlof Buhler)는 신문을 읽는 독자들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오늘날 신문을 읽는 사람은 내부도 회색, 외부도 회색이다.”

우리나라의 꿈해몽에 있어서, 은색이 나타나는 꿈은 만족감이나 지성에 대한 자신을 나타내며, 어느 정도의 성공을 암시한다. 회색의 연상 작용은 외로움, 쓸쓸함, 고난의 상태, 은퇴, 슬픔, 겸손, 무관심, 권태감과 관련된 색이다. 이 색이 나타나는 꿈은 건강 운, 성공 운, 연애 운, 인기 운이 내려가고 있으며, 기관이나 사건의 현장 그리고 사업장을 암시한다.

●색채와 중세

회색 잎의 로즈메리(rosemary)는 슬픔의 상징으로 묘지에 많이 심는 꽃이며, 중세의 꽃말도 ‘배신당한 사랑’이다. 하얀색이나 검은색이 혼합된 색은 우울하게 보인다. 파르스름한 회색, 발그스름한 회색, 노르스름한 회색은 있지만 빛나는 회색은 없다. 색채심리에서 회색과 반대되는 노란색과 주황색은 빛과 삶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색이다.

가고일(Gargoyle)이라는 색은 중세건축에서 괴물 형상(가고일)의 빗물받이를 이미지시킨 어두운 회색을 말한다. 어둠의 세계에서, 빗물을 모으는 괴상한 물건은 악귀를 쫓아내는 기묘한 자태로 호위의 역학을 하고 있다. 괴물 형상은 고딕건축 지붕의 물받이로 입을 본떠 만들어졌다.

●색채와 종교

회색은 삶의 기쁨을 파괴하는 비참한 색이다. 기독교에서 회색은 최후의 심판을 상징한다. 가톨릭 사제는 화려했던 사육제가 끝나고 ‘재의 수요일’에 신자들의 이마에 재로 십자가를 그려주며 참회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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