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유럽 밖 세계…美 서부영화 탄생 ‘촉매제’
<푸치니 서거 100주년-⑥서부의 아가씨>
미국 연극 여주인공에 매료 오페라 제작
뉴욕 메트로폴리탄 초연때 55번 커튼콜
서부 개척시대, ‘미지의 세계’ 동경 묘사
기존 청순가련 벗어난 강한 여인상 표방
입력 : 2024. 03. 28(목) 17:47
교수형을 앞둔 존슨을 살리기 위해 찾아온 미니가 총을 쏘는 장면.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 2018년 시즌
20세기 초반 세계 영화계를 휩쓸었던 서부극,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8년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를 패러디한 한국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역시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 등 한국 최고의 배우가 출연해 절찬리에 상영하였다. 또한 스타워즈, 매드맥스 등의 영화가 서부극의 범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이를 보면 권선징악을 다루는 서부극은 현대인에게도 인기 있는 장르임이 분명하다. 서부극의 기원은 19세기 중엽에 출현한 미국의 싸구려 소설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미국에서 문명사회를 열며 주류라 여겼던 동부인들에게는 다소 야만적이고 미개한 땅인 미국 서부의 이야기라 여기지만, 그곳에서 활약하는 영웅인 버팔로 빌과 와일드 빌 히콕의 이야기는 일종의 영웅담으로서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연극으로 상연되기도 했다.

존슨 역을 열연하는 테너 요하네스 카우프만. 출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2018년 시즌
미지의 땅, 서부는 금광이 발견되면서 골드러쉬가 이루어졌다. 가난한 농부, 노동자뿐만 아니라 상인, 정치인, 의사 등 일확천금을 꿈꾸는 세계인들이 모여들었다. 서부 개척시대라 불리며 아메리카 대륙이 들썩이던 이때 푸치니는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는 1907년, <마농 레스꼬>와 <나비부인>을 공연하러 뉴욕에 방문하였고, 때마침 미국 작가 데이비드 벨라스코의 신작 연극 <황금시대 서부의 아가씨-The Girl of the Golden West, 1905)>를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미니라는 여주인공에 매료되어 오페라로 제작을 결심했다고 한다.

<나비부인> 이후 새로운 소재를 찾기에 급급했던 푸치니에게 희극 <황금시대 서부의 아가씨>는 축복이었다. 푸치니는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La fanciulla del West, 1910>를 ‘토레 델 라고’ 호수를 내려다보며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푸치니는 아내 엘비라가 저지른 세기의 스캔들 ‘도리아 스캔들’로 사생활 논란에 휩싸여 있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그의 <서부의 아가씨>를 향한 그의 열정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서부의아가씨> 원작자 벨라스코, 세기의 지휘자 토스카니니, 작곡가 푸치니가 함께 한 사진. 출처 뉴욕메트폴리탄 오페라극장
푸치니의 <서부의 아가씨>는 이국풍의 오페라로 두 번째 유럽 밖의 세계를 소재로 다룬 작품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초연 당시 작곡자 푸치니가 쉰다섯 번이나 커튼콜을 받을 정도로 미국인들의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도 미국에서 유럽보다 더 많이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미국을 위해 푸치니가 작품을 썼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다.

19세기 황량한 미국 서부의 삶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 모두는 사랑에 굶주려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여주인공 미니는 ‘청순가련’의 여인을 주인공으로 삼았던 푸치니의 이전 캐릭터와는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는데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거칠고 황량한 이곳에서 홀로 거친 광부들을 상대하고 있으며,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여인상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소녀다운 감성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연인 앞에서는 수줍어하는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1910년 초연 포스터.
<서부의 아가씨>의 시작은 미니가 운영하는 캘리포니아 금광 지대의 술집 ‘폴카’이다. 술집 벽에는 산적 라메레스의 현상금 포스터가 걸려있으며 광부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한쪽 구석에서는 보안관 잭 랜스가 혼자 카드놀이를 하고 있다. 그리고 광부들은 요사이 출몰하는 산적 라메레스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곳 사내들에게 여주인 미니는 성경을 읽어주고 이들이 캐온 금을 보관해주며 이들에게 신임을 받고 있다. 보안관 랜스를 비롯한 이곳의 사내들은 미니를 유혹하려 애써 보지만 그녀에게 이들은 외로움을 달래려 이 술집을 찾아온 손님일 뿐이다.

한편 지명수배된 라메레스는 딕 존슨이라는 가명으로 이 술집의 황금을 훔치기 위해 찾아온다. 그를 의심하는 보안관 랜스에게 존슨을 옹호해 주는 미니는 그와 함께 왈츠를 추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미니는 존슨이 산적인 줄 모르고 광부들의 모은 재산이 저 통 안에 들어있으며,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가 진지하게 이야기해준다. 미니의 진심 어린 이야기에 존슨은 자신의 약탈계획을 포기하고 미니는 존슨을 자기 오두막으로 초대한다.

초연 당시 미니 역에 소프라노 에미 데스킨(왼쪽)과 딕 존슨역에 세기의 테너 엔리코 카루소.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무대는 미니의 오두막집으로 바뀌고 찾아온 존슨과 미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존슨이 미니에 키스하려 하자 미니는 이를 무례하게 여기고 자신은 매춘부 니나와 같은 여성이 아니라며 그를 밀어내며 그에게 니나를 아느냐고 묻고, 존슨은 모른다고 답한다. 이때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놀란 미니는 존슨을 숨겨주고 보안관 랜스는 무장한 남자들과 함께 존슨을 찾으며 그가 바로 산적 라메레스이며 존슨의 애인 니나가 그 사실을 밝혔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미니는 존슨을 지켜주고 랜스 보안관 일행은 돌아간다. 일행이 돌아가고 미니는 존슨을 무섭게 다그치며 도둑은 용서해도 다른 여자의 남자라는 점은 용서할 수 없다며 쫓아낸다. 그러자 존슨은 도둑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진정으로 미니 당신을 사랑해서 함께 멀리 도망가서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위험을 무릅쓰고 미니의 집을 떠난다. 이어 들리는 총성에 놀라고 미니는 집 앞에 쓰러져 있는 존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끌고 들어와 지붕 밑 다락방에 숨긴다. 보안관 랜스가 다시 돌아와 존슨을 내놓으라고 하고 부정하는 미니, 하지만 그 순간, 두 사람은 천장에서 떨어지는 피를 보고 만다. 그리고 이미 출혈이 심해 존슨은 죽어가는 존슨을 두 사람이 보게 된다. 미니는 랜스에게 당신이 이기면 원하는 결혼에 응하고 존슨을 체포해 가라는 것과 만일 미니 자신이 이기면 존슨의 체포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카드 게임을 하자고 제의한다. 그리고 게임의 결과는 필사적으로 존슨을 살리기 위해 속임수를 쓴 미니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오페라 마지막 장면인 3막의 시작은 산속이다. 보안관 랜스가 도망친 존슨을 체포하기 위해 광부들에게 온 산을 뒤지게 하는 장면과 더불어 존슨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밧줄에 묶인 존슨에게 광부들은 욕과 폭행을 하고 더불어 그동안 주변에서 벌어졌던 각종 죄를 그에게 전가한다. 그리고 존슨이 자신들에게서 미니를 빼앗아갔다고 더욱 분개하며 존슨의 목에 밧줄을 걸어 교수형을 실행하려 한다. 이때 등장한 미니는 광부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고 진정으로 존슨의 처형하기를 바라냐고 물으며, 모두에게 진정한 사랑을 일깨워 준다. 광부들은 미니의 간절한 설득에 감동하고 존슨을 풀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존슨은 광부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미니와 함께 이들의 환송을 받으며 산 너머로 떠나가며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서부의 아가씨>에서 지금까지 봐왔던 푸치니 오페라에서 반복되던 공식인 여주인공의 죽음은 없다. 비극적인 결말, 가련한 여주인공의 죽음, 이런 요소는 사라지고 당시 서부 개척 시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을 묘사하듯, 존슨의 꿈은, 황금이 아닌 미니라는 여인을 통해 이루어졌다. 당시에는 서부영화가 나오기 전이었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서부의 아가씨> 대 성공은 후일 서부영화의 탄생에 촉매제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쉬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은 일확천금을 벌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하기를 소원했다. 마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 과거 열대 사막에서 일군으로,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피땀 흘려 돈을 벌어 가족과 행복한 삶을 꿈꾸며 귀환하길 원했듯이 당시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잘 있거라 캘리포니아여!”라는 마지막 대사를 읊길 원했을 것이다. 존슨은 금을 캐지 못하고 도적으로 성공해 많은 물질을 얻진 못했지만, 물질보다 소중한 연인 미니를 얻었다. 미니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하루하루가 서부에서 금을 캐듯 매일 쳇바퀴를 돌리는 삶을 영위하는 현대인에게 과연 미니는 누구일까? 현대인이 이룰 수 없는 영화 같은 장면, <서부의 아가씨>를 통해 진정한 사랑이 역경을 이겨내는 멋진 대 서사에 우리는 감동하고, 우리 삶의 참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된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최철의 오페라 오디세이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