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16) 단순함의 미학
최소한의 형태로 본질을 담아내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 대두…포스트모더니즘 시원 ||감정, 메시지 등 제거…벽돌, 형광등 등 대량생산 사물 사용
입력 : 2020. 11. 29(일) 14:47

코로나-19가 불러온 생활의 변화들은 지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공간과 정리에 대한 관심이 커졌단다. 쓸모없는 물건들은 치우고 구매를 절제하는 미니멀라이프 또한 각광받고 있다. 일상을 간소화하고 소유에 가치를 두지 않는 소박한 삶의 태도는 절제력 없이는 수행하기 어려울 듯하다. 미술에서도 불필요한 요소를 없애고 사물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사조가 있다. 정제된 기하학적 형상의 절제미와 단순함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미니멀리즘이다.

1960년대 초 미국 미술계는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환점에 있었다.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시킨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의 형식주의 모더니즘 담론이 도전 받던 시기였다. 반격은 미니멀리즘 작가들이 주도했다. 미니멀리즘은 추상표현주의의 원천인 독창성, 감성 등을 배제하면서 견고했던 작가성의 신화를 파괴하고 나섰다. 제작이 아닌 '결정'이나 '제거'로 작가의 역할을 최소화했다. 개성과 메시지, 묘사 등 예술적 내용들을 축소해나가면서 사물의 정수에만 몰두해나간 것이다.

이처럼 작가에 의해 '결정'된 벽돌, 시멘트 블록, 합판, 금속판, 형광등 등 대량생산된 산업자재와 일상용품들은 극히 최소화한 구성과 배열로 놓이게 됐다.

미니멀리즘 창시자 도널드 저드(Donald Judd)는 "사람들이 미술에서 꼭 필요한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는 요소들을 제거한 것"이라고 미니멀리즘에 대해 정의한다.

저드는 공업 재료들을 전시 공간에 배치하면서 3차원적 작품 실험을 시도한다. 대표작 '무제'는 높이와 너비 각각 1미터, 1. 5미터 가량의 유광 구리 상자이다. 위 부분이 뚫린 붉은 구리 상자는 과연 무엇을 의도한 걸까?

작가는 오롯이 대상 자체만을 감상하고 그것의 미학적·물리적 특징만을 보길 바랐다. 타이틀도 '무제'이듯 머리 아프게 해석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저드는 회화도 조각도 아닌 그의 작품을 '특수한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1960년대 초까지 견고했던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와해시키면서 매체 간 상호 작용을 유도한 것이다.

칼 안드레(Carl Andre)는 벽돌, 시멘트 블록, 금속판 등을 단순하고 반복된 배열로 지면에 조합했다. 120개 벽돌이 두 층의 직사각형 형태로 쌓여 있는 대표작 '등가Ⅷ'는 장식적이고 외적인 것들을 없앰으로써 오히려 정밀하고 순수한 대상만 남아 공간을 나지막하게 점유한다. '등가Ⅷ'는 1972년 테이트갤러리에서 구입했는데 당시 "기금을 벽돌로 낭비하느냐"는 논란은 미술계의 유명한 '일화'로 꼽힌다.

댄 플래빈(Dan Flavin)도 미니멀리즘의 전략인 탈 개성과 대량생산을 활용한다. 주로 형광등을 표현 수단으로 삼았는데 밝게 빛나는 직선적인 형광등은 공간과 공명한다. 작가의 줄어든 개입만큼 관람객에게 할당된 사유를 위한 여백과 감흥은 최대치로 끌어올려진다.

미니멀리즘 이론가이자 작가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는 "형태의 단순함이 반드시 경험의 단순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듯이 미니멀리즘의 간결한 형태 안에는 무궁무진한 예술의 가능성이 담겨져 있다.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작가 중심에서 관람자로의 전환은 롤랑바르트(Roland Barthes)가 주창한 '저자의 죽음' 등 추후 전개될 포스트모더니즘 주요 화두로 작용한다. 회화의 캔버스와 조각의 좌대에서 벗어나 전시장 바닥에 무심한 듯 놓인 미니멀리즘 작품들 사이로 관람객은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미니멀리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원을 연 사조로 평가받는다.

"적을수록 풍부하다"라는 미니멀리즘 테제는 오늘날 우리가 새겨야할 덕목일 것이다. 근본적인 형상으로 축소해 나간 결과 최소한의 것만 필연적으로 남은 미니멀리즘적 금욕주의는 예술적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얽히고설킨 욕망과 관계항을 쳐내는 과정 속에서 내면은 오히려 충만해지며, 비울수록 채워지는 게 인생의 비밀이자 역설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도널드 저드 작, '무제', 1972.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도널드 저드 작, '무제', 1980.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칼 안드레 작, '등가Ⅷ', 1966.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댄 플래빈 작, 'V. 타틀린을 위한 기념비', 1966-1969.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솔 르윗 작, 'Five Open Geometric Structures', 1979. 출처= 테이트 모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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