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 사적지 제1호 전남대학교 정문 전·후
입력 : 2025. 06. 13(금) 11:40

5·18민중항쟁 사적지 제1호 전남대학교 정문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이자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 계엄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낸 중심에는 광주정신이 있었다.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최초 충돌이 발생해 5·18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곳이자, 1987년 6월 항쟁 또한 광주의 시발점이기도 한 전남대학교 정문. 광주광역시는 5·18민중항쟁의 발상지인 전남대학교 정문을 1999년 사적지 제1호로 지정했고, 전남대는 2016년 ‘민주공원’을 마련했다. 현재는 전남대학교 교내 5km에 이르는 민주길 코스로 ‘정의의 길, 평화의 길, 인권의 길’을 조성하고 5·18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출발하는 오월 길 여행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의 전남대학교 정문은 80년 5·18당시의 정문이 아니다. 역사적인 정문 조형물은 사라지고 새롭게 모양이 바뀌었다. 또한 80년 당시 정문 앞에는 서방천이 흐르고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복개되었다.
1987년 6월 16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등이 삭발과 혈서를 쓴 후 금남로로 진출하려다 정문에서 전경에 가로막혀 시위를 펼치고 있는 장면(사진 위)과 현재 전남대 정문 모습. 글·사진=김양배 기자
1980년 5월 18일 오전 10시경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서 학생들이 학교 출입을 막는 계엄군에 항의하면서 최초 충돌이 발생해 5·18광주민중항쟁이 시작된 곳이자, 1987년 6월 항쟁 또한 광주의 시발점이기도 한 전남대학교 정문. 광주광역시는 5·18민중항쟁의 발상지인 전남대학교 정문을 1999년 사적지 제1호로 지정했고, 전남대는 2016년 ‘민주공원’을 마련했다. 현재는 전남대학교 교내 5km에 이르는 민주길 코스로 ‘정의의 길, 평화의 길, 인권의 길’을 조성하고 5·18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출발하는 오월 길 여행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아쉽게도 지금의 전남대학교 정문은 80년 5·18당시의 정문이 아니다. 역사적인 정문 조형물은 사라지고 새롭게 모양이 바뀌었다. 또한 80년 당시 정문 앞에는 서방천이 흐르고 다리가 놓여 있었으나 지금은 복개되었다.
1987년 6월 16일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등이 삭발과 혈서를 쓴 후 금남로로 진출하려다 정문에서 전경에 가로막혀 시위를 펼치고 있는 장면(사진 위)과 현재 전남대 정문 모습. 글·사진=김양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