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CEO·우승희>응원봉과 K팝으로 성장하는 민주주의
우승희 영암군수
입력 : 2024. 12. 26(목) 17:01
2024년 12월 겨울을,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간 변곡점으로 기록할 것이다. ‘다시 만난 세계’ ‘삐딱하게’ ‘좋지 아니한가’ ‘아파트’ ‘탄핵 캐롤’ 등 K팝이 거리를 가득 채워서 그렇다. 촛불을 대신한 응원봉이 세대 통합의 빛으로 거리를 환히 밝혀서 그렇다.

한밤중 비상계엄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가결로 1막을 내렸다. 의결정족수 미달로 1차 탄핵소추안 투표 불성립, 2차 탄핵소추안 발의와 찬성 204표 가결로 2막이 정리됐다. 비상계엄에서 탄핵안 가결까지 11일간은 국민 승리의 시간이었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헌법이 규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상황이 정리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은 두 가지다. 1979년과 2024년 비상계엄의 차이를 만든 상황변수이기도 하다. 바로 ‘1987년 개헌’과 ‘1995년 지방자치 시행’이다.

1987년 개헌은 1979년 비상계엄 이후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과 1987년 5·10민주항쟁을 딛고 이뤄졌다. 새 헌법은 대통령의 비상조치권과 국회해산권을 삭제했다.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하면서도 국정감사권과 비상계엄 해제 요구 등 국회의 권한을 강화했다. 헌법재판소도 신설해 사법권의 독립을 더 두텁게 보장했다. 헌법의 대통령 탄핵 절차는 군부독재를 극복한 역사적 교훈을 제도화한 결과물이었다.

비상계엄과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의 안정적 리더십도 도드라졌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면서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지도자를 보며 국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1995년 전면 시행된 지방자치는 주민의 삶을 지방정부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내년이면 시행 30년이 되는 지방자치 덕분에 중앙정부의 혼란에도 지방정부는 주민의 일상을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있었다.

반면, 지난 2년 반 동안 지방정부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중앙정부의 부자감세와 세수펑크는 고스란히 지방교부세 감소로 이어졌고, 지방정부의 살림살이가 위기에 놓였다. 보조금 혁신과 고통 분담으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었고, 시민의 삶은 날로 팍팍해져만 가고 있다. 지방에서라도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오늘도 전국 지자체들은 국·도비 공모사업과 고향사랑기부제 등에 사활을 걸고 재정확보를 위해 발버둥 치는 중이다.

1980~90년대 돌과 최루탄이 차지했던 거리는, 2016년 촛불이 채웠고, 2024년 응원봉으로 빛나고 있다. 짱돌과 촛불, 응원봉으로 바뀐 거리의 모습은 진화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물리적 실체다.

군부독재의 권위주의 시대에는 폭력적 방법 외에는 의사 표현을 할 방법이 없었다. 맨주먹으로 항거했던 시민과 열사들의 피와 눈물로 우리 민주주의는 제도화됐다. 선거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의 반복된 과정에서 성장했고, 노무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더 단단해졌다.

윤석열 탄핵소추안 의결 과정에 거리로 나온 2030 세대는, 거기서 더 진화한 민주주의를 창조해 냈다. 한 번도 빼앗겨 본 적 없는 일상을 위협당한 세대들의 거리 행은 자연스러웠고, 폭력적 언어와 물리력이 아니어도 시민이 뜻을 모으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줬다. 문화제에 함께하고 발언하는 시민들의 눈빛에는 희망이 넘실댔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들은 응원봉, K팝 등 자기 일상의 한 부문을 직접 민주주의의 장인 집회장으로 옮겨왔다. 일상의 기반이 무너졌을 때 제 질서를 다시 찾기 위해 나서는 시민의식이, 일상과 민주주의의 이상적 접점을 찾아내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딱딱하고 재미없고 지루한 가치가 아니었다. 내가 부르는 노래의 선율과 내가 흔드는 응원봉 물결이 장관을 이루는 재미있는 콘서트장이었다. 부담감 하나 없이 나를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옹립해 주는 흥미진진한 축제장이었다. 여기에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차와 음식으로 대신하는 선결제, 권력에 순응하지 않는 풍자와 해학의 골계미가 더해지자, 민주주의는 새로운 문화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시민의 일상은 민주주의가 됐고, 민주주의의 본령이 시민의 일상을 지키는 일임이 더 또렷해졌다. 1987년 이후 제도화된 형식적 민주주의는, 2024년 시민의 일상을 껴안으며 실질적 민주주의의 완성을 향해 성큼 나아가는 중이다. 세계 언론이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 평가가 대체로 이와 대동소이하다.

헌법재판소가 신속한 탄핵 인용 결정으로 시민의 일상을 든든하게 지지해 주길 기대한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이 탄핵으로 3막을 내리고, 새로운 대한민국의 탄탄대로를 열어야 한다. 상처 입은 한국 민주주의와 국민의 자존심을 하루빨리 회복하는 지름길이 파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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