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에세이·최성주>과거 극복하고 미래 나아갈 한일 관계 열어야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94)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앞둔 한일 관계
입력 : 2024. 12. 03(화) 17:53
최성주 원자력대학원 교수·전 주폴란드 대사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과 일본은 삼국시대 이래 오랫동안 다양한 교류와 협력의 역사를 써오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인접한 국가들은 대체로 굴곡진 과거를 경험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선린(善隣)’을 행동에 옮기기가 어렵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유럽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폴란드와 러시아 등 인접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전쟁과 평화의 시대를 거쳤다. 이 중, 프랑스와 독일은 20세기 들어 두 차례나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하게 무력 충돌한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예외가 아니어서, 명암(明暗)의 역사가 교차하면서 현재에 이른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와 인권이라는 4대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핵심 가치의 공유는 중요한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서도 유사한 입장(like·minded) 하에 보조를 맞춰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한일은 공히 미국의 동맹국이다. 따라서, 한일 간의 긴밀한 협력은 한·미·일 3각 협력과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기본축이다. 다시 말해, 한일 관계의 악화는 한미 동맹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계속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전략도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간의 안보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한·미·일은 최근 러시아·북한의 군사적 밀착 심화 및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관련 중·러의 안보리 거부권 행사 등 북한·중국·러시아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면서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지난 6월 푸틴 대통령의 방북 계기에 체결된 러·북 준(準)군사 동맹조약에 따라, 북한이 러시아를 돕기 위해 1만 명이 넘는 대규모의 지상군을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와 유럽 안보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우리가 한·미·일 안보 협력, 나아가서 한·NATO 협력을 보다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이와 아울러, 장차 중국과의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한일 공조는 필요하다. 즉, 한·미·일 간의 긴밀한 3각 협력은 중국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한일 협력을 지속 심화해야 하지만, 양국 간에는 과거사 문제로 인해 잠재적인 긴장 요인들이 상존한다. 그런데, 진정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한일 관계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일본 내의 혐한(嫌韓)과 한국 내의 ‘반일 몰이’가 그 실례다.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면, 193개 유엔 회원국 중 과거에 식민지배를 당하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다. 아시아의 일본과 태국, 그리고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 정도다. 중남미 국가들의 경우, 100%가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및 프랑스 등 유럽 열강의 식민지였다. 다만, 아시아 국가 중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사실상의 제국주의 세력으로 등장하면서, 한국 및 대만 등 이웃 국가들을 식민 지배했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엄중한 안보환경은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력을 절실히 요구한다. 이에 비추어, 우리는 무엇보다도 과거를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바꿔야 한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과거와 현재가 다투면, 미래를 잃게 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한국과 일본이 과거 문제로 대결할수록, 양국이 함께 설계할 공동의 미래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베트남 등 식민 지배를 당한 절대다수의 국가들은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실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일 관계의 미래를 위해 정부 관료와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 일반국민들이 함께 교류와 협력 확대에 나서야 한다. 양국의 청년세대가 과거사에 크게 얽매이지 않고 실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스럽다. 1998년,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 총리는 역사적인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는 과거를 극복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려는 용감한 결단이었고, 그 이후 양국 관계를 다방면에서 건설적으로 확대하는 계기가 조성되었다.

마침, 내년은 한일 양국이 1965년에 국교를 정상화한 지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따라서, 2025년을 양국 관계가 일대 도약하는 원년(元年)으로 삼아야 한다. 20세기 들어 두 차례나 세계대전에 휩쓸린 프랑스와 독일(당시 서독)이 1963년 드골 대통령과 아데나워 총리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 ‘엘리제 조약’을 체결한 이후, 과거의 고통을 딛고 미래로 함께 나아가고 있는 점을 교훈삼아야 한다. 한국과 일본의 화해와 협력은 지역을 넘어, 세계평화에도 실질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내년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한일이 역사적 대화합(大和合)을 이루도록 여야가 초당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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