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탄공장 ‘남선연탄’을 추억하며
은암미술관 기획전 ‘낭만 소환 안내서’
70년 역사 지난 3월 폐업 이후
가난했던 시절 국민연료 ‘연탄’
도시화 버려진 공간·시대 포착
목탄·폐골판지 회화, 아카이브
입력 : 2024. 06. 11(화) 17:28
은암미술관 기획전 ‘낭만 소환 안내서’에서 볼 수 있는 남선연탄 아카이브 사진. 은암미술관 제공
지역 유일의 연탄공장이었던 ‘남선연탄’은 지난 3월 70년 역사를 뒤로한 채 폐업했다. 남선연탄은 1954년 남구 송하동에서 문을 연 향토기업으로 1980년대 한해 1억5000만장까지 판매 기록을 세우며 호황을 누리었지만, 시대가 변하고 연탄 사용량이 감소하면서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은암미술관은 가난한 시절 지역민들의 아랫목을 데웠던 남선연탄을 소재로 한 기획전 ‘낭만 소환 안내서’를 오는 20일까지 열고 있다. 그 시절 국민연료였던 연탄을 소환해 지금은 사라져버린 시대의 풍경을 추억한다.

남선연탄의 폐업에서 출발한 이번 전시에는 나효지, 박래균, 양나희, 이설, 최옥수, 황재형 총 6인의 작가가 참여한다. 이들은 도시화 이후 남겨진 공간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포착한다. 렌즈를 통해 기록한 옛 도시 풍경과 목탄과 폐골판지 등의 재료를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회화까지 추억에 젖는다. 전시는 ㈜남선과 협력해 준비한 남선연탄 아카이브까지 이어진다.

양나희 작 샤이닝. 은암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는 두 개 파트로 구성된다. 제1전시장에서 펼쳐지는 ‘흐름과 흐름 사이’는 과거의 흔적이 소멸하고 새로운 무언가가 생성되는 두 흐름 사이 남겨진 공간을 다루는 작가 3명의 작품을 소개한다. 먼저 양나희 작가는 폐골판지와 종이 상자를 소재로 도시 풍경 속 저물어가는 장소를 기록한다. 어둠이 가라앉은 골목의 풍경을 담은 ‘샤이닝(2024)’, 과거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을 표현한 연작 ‘삶, 풍경(2015)’ 등은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며 사라져가는 지금, 무엇을 잊고 잃어버리는지 깨닫게 한다. 화폭 위에 일일이 건물의 형상을 따 오려 얹은 골판지 회화는 그 시절 풍경이 입체화되는 묘한 감상을 이끈다.

이설 작가는 사라져가는 공간을 탐구하며 그 안에 깃든 감정과 변화의 흔적을 포착한다. 그의 작품에는 그 공간만이 가진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사각지대 자리(2022’), ‘cut_out 4-1(2022)’ 등 작품 속 사물을 잘라내는 ‘컷-아웃’ 기법은 관람자의 상상력을 자극함과 동시에 오래되어 망각하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나효지 작가는 폐허에 주목한다. 그는 작품을 통해 폐허의 생성 과정과 폐허가 지닌 공간적인 힘을 풀어낸다. ‘건물도감(2020-2022)’ 연작은 쓸모를 다하고 남겨진 건물이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하는 과정을 뿌리의 생성을 통해 표현한다. 공허한 폐허 건물에 식물의 뿌리가 뒤엉켜 그려진 흑백의 스케치가 묘한 긴장감을 준다.

제2전시장에서 열리는 ‘기록으로 남은 시간’에서는 지나간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을 선보인다. 새로운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으로 진행된 도시화는 과거를 너무 쉽게 지우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과거로부터 전해진 현재에 살며, 현재는 또 하나의 과거가 되어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박래균 작 연탄을 나르는 사람들. 은암미술관 제공
탄광촌 주민의 삶을 화폭에 옮긴 황재형 화백의 회화, 1990년대 화순 갱에서 작업하던 이들과 농촌의 풍경을 뷰파인더에 담아낸 최옥수 작가의 사진, 자신의 몸을 바쳐가며 온기를 내뿜고 사그라지는 연탄에 본인의 모습을 포착한 전직 소방관 박래균 작가의 동화적 그림, 긴 여정을 마친 남선연탄의 발자취를 담아낸 남선연탄 아카이브까지. 이제는 사라져버린 한 시대의 풍경을 돌아본다. 특히 아카이브 파트에서 거뭇한 자국이 그대로 묻어있는 목장갑, 작업용 신발 등과 함께 찬란했던 전성시대를 가늠케 하는 1980년대 정부의 표창, 이제는 하나의 그림 작품이 된 남선연탄의 대형 조감도까지 눈길을 끈다.

전시 연계 시민 참여 프로그램으로 ‘연탄 화분 그리기’도 진행된다. 프로그램은 오는 14일과 15일 예정돼 있으며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할 수 있다.

은암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과거를 상징하는 물건인 연탄을 주제로 이를 둘러싼 시간의 흐름 속 소실되거나 남겨진 흔적, 이에 담긴 추억을 ‘낭만’으로 규정해 소환시킨다”며 “낭만 소환 안내서를 통해 한 시대의 사람과 풍경, 우리 일상에 곁을 내줬던 것을 사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은암미술관은 광주 동구 대의동에 있다. 전시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가능하다. 매주 일요일은 휴관.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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