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이슈 122-1>다시 노란 물결… “그 날을 잊지 않겠습니다”
●세월호 10주기 ①남은 흔적들
진도 팽목항·목포신항 가보니
10주기 맞아 추모행렬 이어져
“기억하겠다는 약속 꼭 지킬 것”
녹슨 선체 앞 고개 숙여 추모
입력 : 2024. 04. 14(일) 18:29
진도 팽목항. 10년 전 진도 병풍도 인근 바다에서 단원고 학생 등 304명이 세월호 속에 갇혀 침몰했다. 아직도 5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을 기억하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추모객들이 노란 현수막이 휘날리는 팽목항을 찾아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를 마음속에 새기며 발길을 잇고 있다. 김양배 기자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어느덧 10년. 무심히 흘러간 시간 앞에 바다는 아무 말이 없었다. 팽목항에 선 시민들은 끝이 다 헤진 노란 리본을 만지며 조용히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 위에는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 따뜻한 봄 햇살이 내려앉았다.

지난 13일 진도 팽목항에는 전국 각지 추모객들이 모여들었다. 지나온 세월을 보여주듯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추모 리본과 깃발은 색이 바래 있었지만, 깃발에 새겨진 ‘잊지 않겠습니다’는 글씨만은 선명했다.

팽목항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점과 가장 가까운 항구다. 참사 당시 인양된 희생자들이 옮겨져 가족들과 처음 만난 곳이다. 지금은 노란 리본 조형물과 그림 타일 4656장을 이어 붙여 만든 ‘기억의 벽’ 등이 아이들의 자리를 대신 지키고 있다.

추모객들은 노란 리본 조형물 앞에 하얀 국화꽃을 놓았다. ‘기다림의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기도 했다. 이들은 매년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약속’때문이라고 했다.

매달 팽목항을 찾는다는 임정자(57)씨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 전 국민이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잊지 않겠다’는 망자와 약속이자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과의 약속이다”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계속 팽목항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평택에서 해군으로 근무 중이었다는 김다운(31)씨는 “사고 당시 매일 밤 일기장에 구조자 명단을 적어 놓았다. 구조자가 한 명이라도 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선체가 기울어졌을 때 어떻게 사람을 구조해야 하는지 시뮬레이션해 보기도 했다”며 “그때는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기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항구에는 분향소로 사용됐던 ‘팽목 기억관’과 가족 식당, 성당 등이 대표 추모 공간으로 남아 있다. 기억관에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과 추모 메시지를 적은 종이가 붙어 있었다. 방명록에는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하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겠다고 약속하마. 이제라도 편히 쉬었으면 좋겠다’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기억관을 둘러보던 남영희(62)씨는 “매번 ‘와야지’ 했지만 마음이 아파 차마 올 수 없었는데, 10주기를 맞아 왔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 사회가 변한 게 뭔가 생각해 보면 딱히 없다. 그 사실이 아이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같은 날 목포신항 세월호 거치소에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거치소를 두르는 철책에는 노란리본 수백 개가 묶여 있고 입구 주변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다섯 명 사진이 걸려 있었다. ‘왜 구하지 않았니?’ 299명의 사망자 얼굴 밑에 적힌 문구도 눈에 띄었다. 추모객들은 생각에 잠긴 듯 그 앞에서 한참 발길을 떼지 못했다.

세월호는 지나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목포신항에 우뚝 서있다. 뱃머리에 크게 적힌 ‘SEWOL’, 구조를 기다리며 작은 손으로 두드렸을 창, 인양 흔적으로 갈라진 틈. 절박했던 참사 당시 흔적들이 보였다. 주변에는 선체의 파편과 관련 유형물들이 쌓여 있었다.

이날 세월호 참관을 위해 모인 방문객들은 선체를 앞에 두고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익산에서 온 소상호·한준수(15)군은 “생각보다 배가 커서 놀랐다. 저 안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학교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 등을 통해 어떤 사건인지 배웠다.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늘 달고 다니며 추모하고 있다. 다시는 세월호 같은 사고가 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나다운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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