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9> 여성 노동의 미학
쓸고 닦고 조리하고 꿰매다…예술이 되다 ||1970년대 수공예 매체 활용 여성주의적 작품 고정관념 저항||가사, 육아 등 사회적 가치 인정 위한 예술실천 눈길
입력 : 2020. 08. 02(일) 17:40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메인터넌스 아트 워크 설치 장면. Ronald Feldman Gallery 홈페이지

4월부터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병행되더니 벌써 여름방학이란다. 초등학생 아들은 '집콕' 생활에 매우 흡족해한다. 코로나-19 여파의 최대 수혜자는 아들이 아닐까한다. 아이를 돌봐주는 시댁이 있어 그나마 수월하게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 배로 늘어난 가사와 육아로 엄마들의 고충은 여느 때보다 최고치이다. 그런데 돌봄 노동은 삶을 유지하는 필수조건이건만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평가된 가사와 양육의 정당한 사회적 가치를 요구하는 여성 노동에 대한 예술적 개입이 시도되어왔다. 1970년대 페미니즘 미술의 맥락 속에서 여성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수공예를 비롯해서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집안일'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퍼포먼스, 영상, 회화 등의 다양한 매체가 확대·재생산되었다.

미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는 1969년 '메인터넌스 아트 선언문'(Maintenance Art Manifesto ·유지 관리 예술)을 발표하고 4년 뒤 유리 관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대부분 여성들이 그렇듯 유켈리스 또한 세 아이의 엄마와 예술가라는 상충되는 역할 속에서 갈등을 겪었던 것이다. 그녀는 주부로서 수행했던 일들을 미술관이라는 전문적이고 공적인 영역으로 가져왔다. 쓸고 닦는 동일한 활동이 집에서 하면 '가사일'이고, 미술관에서 하면 '예술'이 되는 것에 대한 실험적인 문제제기였다.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의 6분 9초 분량 비디오 작품 '부엌의 기호학'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작가가 다양한 조리 도구를 보여준다. 주방은 마치 실험실과 공장처럼 기계적이며 차갑다. 주방 용품을 설명하는 로슬러 또한 무표정하다. 흔히 대중매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은 아니다. 어찌 보면 이곳은 매일 그리고 당연시 가사 노동이 강요되는 현장인 것이다. 규율화된 생산 공간으로 묘사하면서 안락함과 행복 등 주방에 대한 스테레오타입을 해체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에도 공개 모집한 여성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로 재생산되는 등 성역할에 대한 비판적 예술 실천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은 쓸고 닦고 요리하는 사적 영역을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예술 실행으로 옮기면서 가사일의 가치 제고와 이분화된 역할의 고정관념 등을 환기시키고 있다.

여성의 전통적인 수공예 기법으로 간주되었던 바느질, 자수, 뜨개질 등을 예술의 영역으로 유입시킨 작가들도 있다. 미리엄 샤피로(Miriam Schapiro)는 수공예 작업에 콜라주와 포토몽타주 등 현대적 기법을 조합한 방식을'퍼마주'라고 명명하고, 여성들의 전통 매체가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편입되게끔 초석을 다졌다.

이를 활용 및 확장해서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수많은 여성들이 도예와 바느질에 힘을 보탠 기념비적 연회장 '디너 파티'를 선보인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상징하는 정삼각형 식탁에는 각각 13명 씩 역사적·전설적인 여성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었고 대리석 바닥 위에는 999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여성들의 서사를 기리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수 백 명이 자수 식탁보와 도자기 접시 등 공예적인 요소 제작에 참여했다. 무수히 오랜 세월 동안 식사 장만을 해왔지만, 정작 귀빈 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던 여성만을 위한 만찬이자, 여성들을 위한 오마주인 것이다.

이외에 뉴욕 할렘에서 태어난 아프리카계 미국인 페이스 링골드(Faith Ringgold)는 퀼팅 기술과 캔버스 회화를 결합한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다. 할렘의 유명한 재봉사였던 그녀 어머니와 '할렘의 에코' 이불 협업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불의 프레임 안 얼굴들은 할렘의 다양한 군상들이다. 특히 링골드의 4대조 할머니는 미국 남부 농장에서 퀼트를 만들었던 노예였는데 이러한 역사와 바느질 공예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품의 층위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온전한 일상의 생산과 재생산을 지속시켜주는 가사 노동은 삶을 창조하는 행위이다. 누군가가 직장에서 혹은 학교에서 생산 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들을 위한 '그림자 노동'이 존재함을 의미한다. 특히'82년생 김지영'들과 그 이전 세대까지 개별 주체들이 그렸을 꿈까지 켜켜이 축적되어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쓸고, 닦고, 꿰매고, 요리하고, 기르는, 우리들의 노동은 값지고 귀하다.

마사 로슬러 '부엌의 기호학' (1975) 마사 로슬러 홈페이지

주디 시카고 '디너 파티' (1974-1979) 주디 시카고 홈페이지

페이스 링골드 '할렘의 에코'(1980) 페이스 링골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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