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23) 동시대 미술의 바로미터 광주비엔날레
‘중심의 이동’…26년 간 아시아만의 정체성 구축||서구 중심 담론 지각 변동…아시아권 작가 배출 의미||도시 활성화 장치…제13회 광주비엔날레 4월 1일 개막||예술의 대안적 가치 탐색의 다층적 공론장
입력 : 2021. 03. 28(일) 14:56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 모습.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아시아 최대 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 개막이 목전으로 다가왔다. 애초 지난해 9월 열릴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여파로 공동체의 안전과 회복에 동참하고자 두 차례 연기를 했던 터이다.

올해로 26돌 맞은 광주비엔날레는 동시대 미술의 동향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측정하는 바로미터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모더니즘 시기 흐름을 주도했던 사조의 쇠락과 함께 영향력을 행사했던 미술관이 변화와 위기를 겪는 동안 비엔날레라는 미술 제도가 1990년대 이후 담론을 생산 및 확대하는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1995년 세계화의 기류 속에서 광주비엔날레 태동 즈음 아시아 미술의 부상이 감지되었다. 아시아 작가 16인이 참여한 퐁피두센터의 '대지의 마법사'(1989년)전을 비롯해서 후 한 루(Hou Hanru)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공동 기획한 '움직이는 도시'(1997년)전 등 아시아 미술을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이 열리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광주비엔날레 창설 이후 상하이, 타이페이, 후쿠오카, 요코하마, 광저우, 베이징 등 아시아 전역에서 비엔날레가 모습을 드러낸다. 광주비엔날레를 벤치마킹해 각 도시마다 문화·예술적 교류가 이뤄지는 매개 장치로 비엔날레를 활용하면서 도시의 가능성을 문화예술 영역에서 찾고자 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라는 플랫폼을 통해 아시아 미술은 더욱 조명 받게 된다. 아시아권 작가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창구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제1회와 제9회 참여했던 태국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의 경우 자국 고유 매개체를 활용한 독창적인 작업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제5회 참여 작가 쑨 위엔(Sun Yuan)과 펑 위(Peng Yu)는 이듬해 열린 베니스비엔날레 중국관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헨리 도노(Heri Dono)와 마누엘 오캄포(Manuel Ocampo)는 각각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국가관 참여 작가가 되는 등 광주비엔날레를 거쳐 간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특히 인도네시아 컬렉티브 루앙루파(Ruang Rupa)의 경우 60여 년 넘게 이어져 온 카셀도큐멘타 역사상 최초로 2022년 총감독으로 선정되면서 아시아 미술의 지각변동을 시사한 바 있다.

이처럼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문화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첫 발을 내딛은 광주비엔날레는 아시아권 작가 발굴 전략으로 제3세계만의 차별화된 담론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1990년대 이후 동시대 미술은 공동체의 일상적 삶, 도시 역사와 문화 생태 환경 속에서 함께 호흡하고 있다. 미술관이 아닌 시민 사회의 노정 속으로 들어가는 전시 구현과 실행 전략을 구사하는데 광주비엔날레에서도 두드러진다.

광주비엔날레는 5·18민주화운동에서 확장하여 세계 전역에서 일어났던 시민운동 등 역사적인 사건들을 예술의 맥락으로 끌어들인다. 개최지 광주가 지닌 근현대사적 흔적들을 재발견하는 집합체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임민욱 작가의 국가 권력에 희생당한 인간 회복에 대한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를 비롯해 5·18 당시 격문과 투사회보를 만들어서 배포했던 녹두서점에 주목해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치작품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 등 매 대회마다 광주정신의 시각화는 지속되어왔다.

오늘날 비엔날레가 중요한 이유는 전 지구화 시대 기술의 발달로 소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각 도시마다 생산되는 화두들이 무역로처럼 급속히 전파되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특히 광주비엔날레는 여타 비엔날레와 달리 시대정신과 마주하는 창설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이는 정체성이자 존재 가치라 할 수 있다.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견고한 구조와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고 타자를 중심화하는 차별화된 메시지를 발신하는 예술 행동들이 광주비엔날레에서 실천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그 여느 때보다 힘겨운 시절에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광주비엔날레도 코로나19 '한파'를 견뎌내고 어김없이 예술의 대안적 가치를 탐색하는 다층적 공론장을 펼쳐내 보인다. 마치 팬데믹을 예견한 것처럼 인류 공동체의 지혜와 집단지성의 힘을 응집하면서 연대와 치유의 손짓을 건넨다.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정신을 새롭게 일으키고자 바우하우스가 창립되었듯이 예술의 본질은 사회와 인간을 회복시키는 열린 사유와 지각의 새로운 시공간과 조응하게 해주는 것 일터. 4월 1일 39일 간의 여정을 시작하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에서 지친 일상을 벗어나 예술적 상상력과 감흥으로 삶의 리듬을 조율하면서 '영혼'의 떨림과 울림 아래 봄을 맞이하길 기대해본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시 관람 모습.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2014년 제10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임민욱 작가의 퍼포먼스 '내비게이션 아이디'.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2016년 제1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도라 가르시아의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

4월 1일 개막을 앞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전경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편집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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