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큐레이터 노트 63>고향을 잃은 자들의 잃어버린 땅을 찾아서
●이선 이강하미술관 학예실장
입력 : 2025. 04. 13(일) 17:45

모나 하툼 작 ‘포위 공격’ 이선 제공
무언가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개인을 넘어 국가적인 문제로 발현됐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서로의 영토를 두고 벌인 전쟁의 역사로 이어졌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과 잃어버린 땅, 고향을 되찾고자 하는 인간의 상처와 흔적들은 잔혹하지만, 예술가에게 처절하고 아름다운 영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모나 하툼(Mona Hatoum)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레바논으로 망명한 팔레스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툼은, 1975년 런던 여행 중에 발생한 레바논 내전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베이루트 공항이 9개월간 폐쇄돼 여행이 돌연 이주가 된 것이다. 난데없이 가족들과 생이별했던 그의 나이는 당시 고작 23세였다. 추운 날씨와 스스로 독립해야만 했던 환경 탓에 당시에는 불운으로 여겼던 경험은 후에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을 위한 배경이자 재산이 된다. 생존을 위해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1981년 런던의 슬레이드스쿨오브 파인아트를 졸업한다. 1988년부터는 영국의 현대미술씬의 퍼포먼스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1994년 퐁피두센터 전시를 거치면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게 된다. 1995년 터너상 후보자가 됐고, 2015년 다시 퐁피두로 돌아가서 회고전을 가졌다. 작가는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정치적 갈등, 세계적 불평등, 소외감과 관련된 인간의 투쟁을 탐구하는 역동적인 예술 활동을 발전시켰다. 지난 44년간의 작품을 돌아보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던 이주민, 여성, 약자로서의 외침을 담은 개인전과 작업 초기 급진적인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품, 큰 스케일의 설치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1982년 대표 작품 ‘Under Siege’(포위 공격)은 진흙으로 채워진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안에 들어간 작가가 나체로 7시간 동안 계속 몸을 움직이며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공간에는 혁명음악이 3개 언어(팔레스타인어, 프랑스어, 영어)로 흘러나온다. 네모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진흙으로 뒤덮여 끊임없이 싸우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관객들은 밖에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작업을 상연하고 일주일 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공격해 민간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하툼은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이론적 틀을 통해 다방면의 주제들을 탐구했다. 그의 작업은 신체에 대한 설명, 정치에 대한 논평, 가정 세계의 위험과 한계를 탐구하는 젠더와 차이에 논평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조각과 설치 작업은 효과를 완성하기 위해 관람객이 주변 공간에 거주해야 하므로 공간 개념을 통해서도 작업을 해석할 수 있다. 작업에는 항상 여러 가지 해석이 뒤따르는 데 심리적,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고자 했던 신체적 반응은 다양한 관람객에게 독특하고 개별적인 반응을 보장했다. 하툼의 초기 작품은 주로 관객과 직접적인 신체적 대결을 통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퍼포먼스 작품으로 구성됐다. 그는 이 기법을 자신의 몸을 사용해 직접적인 진술을 하는 수단으로 사용했으며, 퍼포먼스는 종종 그의 배경과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작품에서 제도적 권력 구조에 내재된 폭력과 관련해 개인의 취약성을 다뤘다. 그의 주요 작품의 주제는 인간의 신체였으며, 때로는 자신의 몸과 가족의 몸을 사용하기도 했다.
1988년 밴쿠버의 레지던시 활동 결과물로 만들어진 ‘Measures of Distance’(거리측정)는 작가 작업의 초기 주제인 가족, 이주,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보여준다. 비디오 작품 자체는 15분 길이이며 하툼의 어머니가 샤워하는 친밀한 컬러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하툼은 내전 중 베이루트에 살았던 어머니가 런던에 사는 딸(하툼)에게 쓴 편지를 사진 위에 덧씌운다. 아랍어로, 손으로 쓴 편지는 비디오의 내레이션과 주제를 구성하며 갈등 시기에 편지를 보내는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아랍어와 영어로 편지를 소리 내어 읽는다. 작품은 1981년 베이루트에서 하툼과 그의 부모님 사이에 있었던 짧았던 가족 모임을 중심에 두고 주로 모녀 관계에 관한 어머니의 편지 안에서 아버지가 언급돼 있으므로 영상에서는 부녀 관계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부관계까지도 살펴보고 있다. 영상의 요소(편지-하툼의 어머니가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바람과 전쟁에 대해 언급한 부분)는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의 전쟁이 그의 가족의 정체성과 관계를 어떻게 마주했는지 탐구한다. 영상은 다큐멘터리나 저널리즘적인 의도도 없으며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낙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데, 편지의 내레이션은 어머니와 딸 사이의 거리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일상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다. 작가는 베이루트에서 어머니와 재회했을 때와 어머니가 샤워실에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을 때의 순간을 재현하려 한다. 팔레스타인 여성의 상징성을 담은 작품에서 하툼은 아랍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집는 동시에 어머니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고 있다. 전시 공간이었던 테이트 모던은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머니는 딸의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문제에서 벗어나 정체성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형태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배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작가는 “‘지리적 거리와 정서적 친밀함의 역설적인 상태’를 전달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자신의 망명과 분리감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2013년 제작된 작품 ‘분쟁 지역’ 또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대륙과 나라들에 위험구간을 표시한 설치 작품으로 시대가 변해도 되풀이되는 인간의 탐욕을 시각화한 시도를 구현했다. 금방이라도 타들어 가버릴 것 같은 붉은 빛의 지구 표면을 통해 작가는 경고한다. 세계 곳곳에 터지는 다툼이 더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열기를 더해가는 지구 온난화 현상처럼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전 지구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이처럼 전쟁과 인간의 취약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전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예술가는 생명을 짓밟는 땅에서 예술이 설 수 없음에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희망과 생명의 존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모나 하툼(Mona Hatoum)은 이스라엘 건국으로 인해 레바논으로 망명한 팔레스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하툼은, 1975년 런던 여행 중에 발생한 레바논 내전으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다. 베이루트 공항이 9개월간 폐쇄돼 여행이 돌연 이주가 된 것이다. 난데없이 가족들과 생이별했던 그의 나이는 당시 고작 23세였다. 추운 날씨와 스스로 독립해야만 했던 환경 탓에 당시에는 불운으로 여겼던 경험은 후에 자신의 독자적인 작업을 위한 배경이자 재산이 된다. 생존을 위해 온갖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1981년 런던의 슬레이드스쿨오브 파인아트를 졸업한다. 1988년부터는 영국의 현대미술씬의 퍼포먼스 작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1994년 퐁피두센터 전시를 거치면서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게 된다. 1995년 터너상 후보자가 됐고, 2015년 다시 퐁피두로 돌아가서 회고전을 가졌다. 작가는 광범위하게 여행하며 정치적 갈등, 세계적 불평등, 소외감과 관련된 인간의 투쟁을 탐구하는 역동적인 예술 활동을 발전시켰다. 지난 44년간의 작품을 돌아보면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열렸던 이주민, 여성, 약자로서의 외침을 담은 개인전과 작업 초기 급진적인 퍼포먼스와 비디오 작품, 큰 스케일의 설치 작업까지 다양한 작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1982년 대표 작품 ‘Under Siege’(포위 공격)은 진흙으로 채워진 투명한 플라스틱 박스 안에 들어간 작가가 나체로 7시간 동안 계속 몸을 움직이며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는 퍼포먼스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공간에는 혁명음악이 3개 언어(팔레스타인어, 프랑스어, 영어)로 흘러나온다. 네모 플라스틱 박스 안에서 진흙으로 뒤덮여 끊임없이 싸우는 팔레스타인 여성을 관객들은 밖에서 그저 바라볼 뿐이다. 이 작업을 상연하고 일주일 뒤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공격해 민간인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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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하툼 작 ‘Look No Body!’. 이선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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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하툼 작 ‘거리 측정’. 이선 제공 |
“어머니는 딸의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으며, 이는 식민주의와 가부장적 문제에서 벗어나 정체성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형태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배경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작가는 “‘지리적 거리와 정서적 친밀함의 역설적인 상태’를 전달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자신의 망명과 분리감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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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하툼 작 ‘분쟁 지역’. 이선 제공 |
이처럼 전쟁과 인간의 취약한 관계와 상황 속에서 예술은 무엇을 전할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예술가는 생명을 짓밟는 땅에서 예술이 설 수 없음에 절망하면서도 끊임없이 희망과 생명의 존엄을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