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KIA 우승한 날 밤에
박성원 편집국장
입력 : 2024. 10. 30(수) 14:17
박성원 국장
KIA 타이거즈가 삼성 라이온즈를 누르고 12번째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28일, 지인들과 야구 중계를 지켜보고 우승의 기쁨을 나누다 보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다. 시내버스 운행은 종료됐고 택시 잡기도 어려워 모두 귀가를 서둘러야 할 시간이지만, 광주의 밤 풍경은 평소와는 달랐다. 주점 등지에서 경기를 지켜보다 나온 듯, KIA 유니폼을 입은 이들은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 야구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충장로 이곳 저곳 둘러보다 어렵게 잡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중 광천터미널 주변에서 대규모 차량 행렬과 인파를 목격했다. 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5차전과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본 이들의 늦은 귀갓길이었다. 택시 잡기를 포기한 채 걸어서 집으로 향하는 이들의 손에는 KIA 깃발과 응원막대가 들려 있었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우승의 여운을 좀 더 오래 만끽하려는 듯 행인들의 발걸음에는 여유가 넘쳤다.

이젠 익숙해질 법도 한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임에도, 이날 밤 광주가 남다른 감동과 흥분에 휩싸인 건 1987년 이후 37년 만에 안방에서 맞이한 우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를 중계한 MBC스포츠플러스 한명재 캐스터는 KIA의 우승 순간 “1987년 이후 지난 37년간 이곳 광주에서는 그 누구도 듣지 못했던 이야기, KIA 타이거즈가 2024년 정상에 오릅니다”라며 지역민의 마음을 대변했다. KBS 김진웅 캐스터 역시 “7년 만에 한반도를 뒤덮는 호랑이 물결, 37년 만에 내 고향에서 느끼는 영광의 숨결”이라는 말로 그간 숱한 우승에도 정작 광주 안방에서는 우승 헹가래를 치지 못했던 아쉬움을 짚었다.

과거 해태 시절부터 타이거즈의 우승은 지역민에게 단순한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지금까지 늘 타이거즈와 희로애락을 같이해왔기 때문이다. 5·18의 아픔을 겪었던 광주 시민은 80~90년대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 정치적 홀대를 타이거즈 야구를 통해 위로받고 대리만족했다.

‘80년 광주’의 생채기를 어루만지고 울분을 달래주었던 ‘전통의 명가’ 타이거즈가 돌아왔다. 선수들의 빼어난 플레이와 팬들의 뜨거운 응원으로 한국시리즈 ‘V12’의 위업을 이룬 이날 밤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날’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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