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상 수상>‘인간의 폭력성’·‘역사적 트라우마’ 정면으로 맞서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은 누구
1970년 광주 출생 문학인 집안
부친 한승원 작가, 형제도 등단
‘소년이 온다’ 광주의 아픔 직시
보수정권 블랙리스트 포함 고난
광주비엔날레 협업 등 인연 계속
입력 : 2024. 10. 13(일) 17:28
지난 2005년 문학사상사 주관으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상문학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인 한강 씨가 작가인 아버지 한승원 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문학사상사 제공
2024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작품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의식은 ‘인간의 폭력성’이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이 배경이 된 ‘소년이 온다’와 제주4·3사건이 배경이 된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적 트라우마를 은유하며 ‘인간의 폭력성’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문학이 삶에 제기하는 근본적인 물음들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노벨상을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인간 삶의 유약함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시적인 산문”이라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를 밝혔다.

한강 작가는 1970년 11월 27일 광주 북구에서 아버지 한승원 씨와 어머니 임강오 씨 사이에서 2남 1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한승원 작가는 장편소설 ‘아제아제바라아제’ 등을 펴낸 유명 작가다. 오빠 한규호는 소설가, 동화작가이고 동생 한강인은 소설가, 만화가로 문학인 집안이다. 한강 작가는 아버지 한승원 작가와 함께 ‘이상문학상’과 ‘김동리문학상’을 2대가 모두 수상하는 이색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어린시절 한강 작가의 모습. 부친 한승원 작가 제공
한강 작가는 아홉 살 때 가족과 함께 광주에서 서울로 이주했다. 풍문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1993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출판사인 샘터사에서 근무했다. 1993년 ‘문학과사회’에 시 ‘서울의 겨울’ 외 4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이 출간된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등단 이후 꾸준하게 작품을 집필하고 있다.

노벨문학상에 앞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의 맨부커 상(인터내셔널 부분)을 안겨준 한강의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2007년 발표됐다. 어느날 괴기스러운 고깃덩어리에 둘러싼 꿈을 꾸고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영혜’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강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 첫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다”며 언급한 소설 ‘소년이 온다’는 고향 광주의 고통과 아픔을 보듬은 소설로 2014년 발간됐다. 이 역시 2017년 이탈리아 말라파르테 문학상을 받았다. 5·18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을 지켰던 형, 누나들은 계엄군의 고문으로 비극적인 생애를 맞는다.

한강 작가는 소설 집필 당시 방대한 분량의 구술 사료집을 정독하는 등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바탕으로 밀도 있는 문장을 구현했다. 이 작품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포함되기도 했다. 문체부가 주최하는 2014년 세종도서 사업에서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의 이유로 최종 탈락한 사실도 회자된다.

‘소년이 온다’는 5·18 관련 전시에서 큐레이팅의 모티브가 되는 등 광주 문화예술계에 재창작의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재)광주비엔날레가 2022년 베니스에서 개최한 5·18민주화운동 특별전 ‘꽃 핀 쪽으로(to where the flowers are blooming)’는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6장 제목 ‘꽃 핀 쪽으로’에서 차용된 것이다. 한강 작가는 최근 개막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 전시의 3개 섹션 소제목 ‘부딪침 소리’, ‘겹침 소리’, ‘처음 소리’를 작명하면서 광주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가장 최신작으로 제주4·3사건이 모티브가 된 ‘작별하지 않는다’는 영상 작업을 위해 제주도를 찾은 ‘인선’이 민간인 학살과 얽힌 친구 ‘경하’의 가족사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으로 2023년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받으며 한국인 최초 기록을 썼다. 무엇보다 ‘5월 광주’에 이어 ‘제주 4·3’에도 한강의 문장을 통해서만 표현될 수 있는 영역이 완성됐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국내 작가로 최초이고,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최초다. 노벨상 전체로 보면,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 한국인 수상자다. 한강 작가가 등단한 지 30년만의 쾌거로 이로써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한강 작가는 출판사를 통해 “수상 소식을 알리는 연락을 처음 받고는 놀랐고, 전화를 끊고 나자 천천히 현실감과 감동이 느껴졌다”며 “수상자로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하다.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 마음 깊이 감사하다”고 전했다.
2016년 광주비엔날레 포럼에 참석 중인 한강 작가. (재)광주비엔날레 제공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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