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한가위의 정취
이용환 논설실장
입력 : 2024. 09. 12(목) 17:59
이용환 논설실장
“대추 밤을 돈사야 추석을 차렸다/이십 리를 걸어 열하룻장을 보러 떠나는 새벽/막내딸 이쁜이는 대추를 안 준다고 울었다.” 시인 노천명이 ‘장날’을 발표한 것은 1938년. 차가운 성격에 고집까지 센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어릴 적 고향이나 토속적인 문화 등은 끔찍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이 시에서도 그는 새벽에 집을 나서야 추석 대목 장을 볼 수 있는 궁벽한 시골 마을, 넉넉치 않은 살림이지만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대추나 밤을 팔러 나가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미당 서정주도 여유로움과 정겨움이 넘치는 추석을 좋아했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휘영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서정주 추석 전날…)에도 전쟁 이후 모두가 힘들 때, 가족이 모여 햅쌀로 송편을 빚는 추석의 정취가 가득 담겨있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식구들이 둘러 앉아 푸른 풋콩을 넣어 빚어낸 송편, 그 모습을 보고 뒷산의 노루까지 좋아라 웃는다는 그의 시상도 어제처럼 선명하다.

옛 조상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고 했다. 하늘은 맑고 높으며, 들판에는 풍요로운 결실이 넘실대는 절기에 대한 찬사다. 풍성한 계절을 빗대 ‘옷은 시집 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라는 속담도 전해온다. 추석날 펼쳐졌던 민속놀이도 풍년을 자축하는 행사들이었다. 농사일로 바빴던 일가친척이 만나 하루를 즐기며 정을 나누고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는 의미도 컸다. 지금도 많은 가정에서 추석이 되면 갓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는 차례를 지낸다.

추석이 나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추석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다. 이른 곳은 13일부터 연휴가 시작될 터다.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데다 두 달여 지속되는 폭염 등으로 예전과 같은 정겨움은 많이 사라진 듯 하다. 정치와 경제, 사회 안팎까지 국내·외 상황도 어수선하다. 그래도 추석은 휘영청 밝은 보름달 아래 오랜만에 만난 가족·친지들과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햅쌀이 영글고 머루나 다래 같은 자연이 준 선물도 산야에 풍성할 것이다. 꽃가지 마저 휘게 할 밝은 보름달, 그 달빛 아래 힘들고 주름진 일상은 잠시 묻어두고 모두를 ‘좋아라 깔깔 웃게 만드는’ 한가위의 정취를 만끽할 일이다. 이용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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