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사마르칸트의 힘
이용환 논설실장
입력 : 2024. 06. 13(목) 18:33
이용환 논설실장
“위대한 신이시여. 나에게 복수의 힘을 주소서.” 서기 1218년.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이 서쪽으로 국경을 맞댄 호라즘 왕국에 사절단을 파견했다. 호라즘은 오늘날 우즈베키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대부분을 차지하고 실크로드를 장악한 거대한 이슬람 왕국이었다. 낙타 500마리와 상인 500여 명으로 구성된 몽골의 사절단이 호라즘의 수도 사마르칸트에 도착한 그날, 재물에 눈이 어두웠던 호라즘은 그들을 모두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칭기즈칸은 분노했다.

‘언덕에 올라 땅에 얼굴을 묻고 사흘 밤낮을 울며 신께 복수를 갈구했다’는 칭기즈칸은 이듬해 군대를 이끌고 호라즘을 점령한 뒤 벽돌 한 장까지 ‘다 갈아 엎는’ 철저한 파괴를 단행했다. 주거 지역의 집들은 모두 무너지고 사방에 시체가 나뒹굴었다. 호라즘에서 죽은 사람만 100만여 명.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켰던 호라즘의 역사와 문화도 켜켜이 쌓인 모래에 뒤덮여 광활한 벌판으로 변했다. 지금도 호라즘은 땅 위는 들판이지만, 땅 밑에는 보물과 비밀이 엄청나게 숨겨져 있다고 한다.

이곳 호라즘의 수도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10세기 전성기를 구가했던 사마르칸트는 당시 웅장한 탑과 돔, 아치문에 둘러싸인 강력한 제국이었다. 섬세한 모자이크와 오색찬란한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자산도 풍부했다. 냇물과 초목, 동물 조각상이 어우러진 정원들도 화려했다고 한다. 10세기 페르시아 작가 이스타크리는 사마르칸트를 둘러 본 뒤 “8일 동안 걸었지만 훼손되지 않은 녹지와 정원이 이어졌다. 중간 중간 밭 너머에 양 떼를 위한 목초지가 있었고 마을과 정착지에는 요새가 있었다. 모든 가정에도 정원과 저수조, 흐르는 물이 있었다.”고 썼다.

중앙아시아를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투르크메니스탄과 카자흐스탄을 거쳐 13일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했다. 15일에는 ‘지구의 여왕’으로 불리는 우즈베키스탄의 옛 도시 사마르칸트를 찾는다고 한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중세와 21세기가 혼재하는 사마르칸트는 ‘꿈과 역사의 도시’다. 폭력의 한 가운데서 용서와 화해, 공존을 추구했던 것도 사마르칸트를 지탱했던 힘이었다. ‘늑대와 양이 평화롭게 같은 시냇물을 마실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는 사마르칸트. 어렵게 찾아간 그곳에서 윤 대통령이 ‘찢기고 분열된 대한민국, 어처구니없는 정쟁으로 혼돈에 빠진 우리 사회’를 다독여 줄 화해와 공존의 가치를 배워오면 좋겠다. 이용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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