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문화자치 시대의 역사, 국사의 하위 영역화 안돼
405.지역사회와 지역학
입력 : 2024. 07. 25(목) 18:43
전라도천년사 1권 총설 표지
“우리는 이 세대에 완전한 역사를 쓸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정보를 입수할 수 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으므로, 종래까지의 역사를 치워버릴 수 있고, 전진의 도정(道程)에서 우리가 도달한 지점을 보여줄 수 있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의 한 구절이다.
역사가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거나 추구할 수 있을까.아니, 그보다 먼저 문제 삼을 것은 도대체 역사란 무엇일까.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했고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으며 에드워드 카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역사는 늘 당대의 시대정신에 의해 재구성되어왔으며 부단한 투쟁과 응전과 대화를 통해 미래를 창조해 왔다.
나는 쓰여지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구술로서의 역사, 구비문학과 그 컨텍스트를 연구하는 민속학을 전공하였다. 설화(신화, 전설, 민담)와 소설, 판소리를 비롯한 노래 연구가 그 중심에 있고 그 안의 미학(美學)을 화두 삼아 연구에 정진해 왔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돌에 새긴 것처럼 분명하다고 해서 구비(口碑)라고 한다.
구승(口承), 구전(口傳), 구점(口占) 등이 모두 같은 말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인데도 얼마나 그 전승이 강고하기에 돌 비석에 비유했을.
문헌 이전에 구비(口碑)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헌 고증만을 최우선으로 치는 태도나 경향은 여전히 구비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흔한 말로 실증사학 중심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실증사학은 19세기 말부터 특히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라도리(白鳥庫吉), 이케우치(池內宏), 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부터 한국인 학자들이 등장해 실증사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병도, 김상기, 이상백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실증사학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학문하는 태도나 방법 등이 꾸준하고도 끊임없이 변해왔음을 확인한다.
구술사(口述史)의 등장과 시대적 의미
윤택림의 ‘역사와 기록연구를 위한 구술사 연구방법론(아르케)’에 의하면 구술사는 2000년대 들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2004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구술 아카이브를 위한 구술 채록이 시작되었으며 2010년경에 이르러 구술채록기관들은 거의 다 아카이브 구축을 동반한 구술 채록을 하게 되었다.
구술사가 역사학계의 당당한 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은 부동의 사실이다. 이것은 국가와 중앙에 종속된 지방사 연구에 대한 비판과도 궤를 같이 한다. 허영란은 ‘지방사를 넘어, 지역사로의 전환-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모색(지방사와 지방문화, 2017)’에서 지리지와 읍지 등 지방지 편찬의 역사가 강고한 지방사의 전통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질서에 대한 의문을 가질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진단한다.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하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의 역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서술해야 할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시점이 군부독재 종장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는 사실이 시사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번의 밀레니엄을 지나고도 스무 해를 훌쩍 넘긴 지금은 어떠한가? 역사, 좁게 말하면 역사서술에 대한 태도나 입장에 대해, 천년의 분기점이라고 하는 과도기적 경향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또 생각들을 재구성하였는가.
근자에 일어난 이른바 ‘전라도천년사’ 논쟁을 보며 드는 생각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여러 스승께 사숙(私淑)의 지혜를 구하곤 한다. 조동일은 ‘한국학의 진로(지식산업사, 2014)’에서 우리네 역사서술과 학문의 태도를 이렇게 비판한다.
“역사학은 인문학문이면서 사회학문이어서 양쪽을 포괄할 수 있다. 역사학이 통합학문의 관점을 갖춘 총체사로 나아가면 여러 학문이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당위론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학은 사실을 시대적으로 정리하는 실증사학에 머무르고 있다. 지방사를 국사의 하위 영역으로 여기기나 하고, 국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는 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역사의식을 상실한 채 미시적인 작업이나 하고 있다”
나는 최근 ‘바른역사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교사 양성 과정’에 강의를 하고 왔다.
‘문명전환기에 생각하는 기록된 역사와 구비(口碑)된 역사’가 내 강의 주제였다. 지역사와 지역학을 다시 구상하는 셈이랄까. 기왕의 강단 사학계가 강조해온 실증주의 사학을 뛰어넘고, 재야 학계의 선험주의적 주의 주장을 넘어, 지역 사람들의 마음과 그 마음이 지어낸 구조들에 대해 그 마음을 태동하게 했던 근원과 환경들에 대해, 나아가 그 마음들이 펼치고 있는 여기, 지금, 우리와 장차 펼쳐나갈 비전과 전망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했다. 지난해 본 지면(2023년 12월 26일)에는 ‘전라도천년사 논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전라도천년사 대책위원회’ 정도의 기구 마련을 제안한 바도 있다. 두 번의 밀레니엄을 지나고도 스무 해를 훌쩍 넘겨버렸다.
지난 천년에 대한 성찰과 다가오는 천년에 대한 비전을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앞을 가로막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천년의 분기점에 태어나 생을 마감하는 운명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멀리는 세계사적으로 가까이는 분단 한국의 미래를 성찰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들을 고안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도 하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천착해온 남도의 ‘귄’과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들이 우리 공동체에 어떤 유익함이 있으며 혹은 피드백되었는가. 조동일의 지적처럼 장차 나는 어떤 학문의 태도를 극복하고 다음 학문의 태도를 재구성하고 있는가? 중앙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지역사에 이르고, 실증사학의 단계를 넘어 구술사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회가 소나기 품은 장마 구름처럼 무겁다.
남도인문학팁
지역사와 지역학의 선두에 나설 ‘누군가’들을 기다리며나는 지난해 여러 학자들과 힘을 합해 출판한 ‘문화자치시대의 한국 지역학(이윤선 외, 다할미디어, 2022)’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역의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는 것이요, 서울에 대응되는 부속으로서의 지방이 아니라, 호혜 평등한 지역대 지역에 대한 것이며, 오히려 특징에 따라 각양의 지역이 중심이 되는 그런 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틀리다고 하는 틀림의 차원이 아니라, 다만 이것과 저것이 다를 뿐이라는 문화 다양성 시대의 화두를 발설했다고나 할까.
나의 역사관 나아가 세계관은 분명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역사에 기대어 있다. 비유컨대 한국의 갯벌에 자글자글한 물비늘 같고, 개땅쇠였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네들의 부르트고 오그라진 피부, 그 숨결들을 기록하는 일, 애오라지 그 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해왔다. 구술사를 포섭하고 실증사를 횡단하는 새로운 지역사 쓰기를 시도할 사람들 어디 없을까. 이른바 강단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뛰어넘고 선험주의적 재야사학계의 주의 주장도 뛰어넘는 새로운 지역사 쓰기를 시도할 이들 말이다. 이러한 시도가 두 천년의 분기점에 새 역사 서술의 첫발을 내딛는 선구적 작업이 되지 않겠는가. 시대의 질곡을 뚫고 앞서갈 ‘누군가’들을 한없이 기다린다. 한 송이 국화꽃은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가 있어야 활짝 피는 법이다.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까치, 2015)’의 한 구절이다.
역사가 완벽한 객관성을 담보하거나 추구할 수 있을까.아니, 그보다 먼저 문제 삼을 것은 도대체 역사란 무엇일까.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 했고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고 했으며 에드워드 카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 없는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 없는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역사는 늘 당대의 시대정신에 의해 재구성되어왔으며 부단한 투쟁과 응전과 대화를 통해 미래를 창조해 왔다.
나는 쓰여지지 않았지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구술로서의 역사, 구비문학과 그 컨텍스트를 연구하는 민속학을 전공하였다. 설화(신화, 전설, 민담)와 소설, 판소리를 비롯한 노래 연구가 그 중심에 있고 그 안의 미학(美學)을 화두 삼아 연구에 정진해 왔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지만 돌에 새긴 것처럼 분명하다고 해서 구비(口碑)라고 한다.
구승(口承), 구전(口傳), 구점(口占) 등이 모두 같은 말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것인데도 얼마나 그 전승이 강고하기에 돌 비석에 비유했을.
문헌 이전에 구비(口碑)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문헌 고증만을 최우선으로 치는 태도나 경향은 여전히 구비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것이 사실이다. 흔한 말로 실증사학 중심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실증사학은 19세기 말부터 특히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시라도리(白鳥庫吉), 이케우치(池內宏), 이마니시류(今西龍) 등이 대표적이다.
1930년대부터 한국인 학자들이 등장해 실증사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이병도, 김상기, 이상백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실증사학의 비중이 크게 줄어들었다. 시대가 변하고 역사가 변하고 학문하는 태도나 방법 등이 꾸준하고도 끊임없이 변해왔음을 확인한다.
구술사(口述史)의 등장과 시대적 의미
윤택림의 ‘역사와 기록연구를 위한 구술사 연구방법론(아르케)’에 의하면 구술사는 2000년대 들어 하나의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2004년부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구술 아카이브를 위한 구술 채록이 시작되었으며 2010년경에 이르러 구술채록기관들은 거의 다 아카이브 구축을 동반한 구술 채록을 하게 되었다.
구술사가 역사학계의 당당한 한 분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점은 부동의 사실이다. 이것은 국가와 중앙에 종속된 지방사 연구에 대한 비판과도 궤를 같이 한다. 허영란은 ‘지방사를 넘어, 지역사로의 전환-한국 근대 지역사 연구의 현황과 모색(지방사와 지방문화, 2017)’에서 지리지와 읍지 등 지방지 편찬의 역사가 강고한 지방사의 전통을 구축해왔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질서에 대한 의문을 가질 여지가 별로 없었다고 진단한다.
민족과 국가를 중심으로 결집하되 내부의 다양한 목소리를 무시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적 분위기가 컸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의 역사를 어떻게 연구하고 서술해야 할지에 대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시점이 군부독재 종장으로 치달았던 1980년대 초중반이었다는 사실이 시사적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두 번의 밀레니엄을 지나고도 스무 해를 훌쩍 넘긴 지금은 어떠한가? 역사, 좁게 말하면 역사서술에 대한 태도나 입장에 대해, 천년의 분기점이라고 하는 과도기적 경향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성찰하고 반성하고 또 생각들을 재구성하였는가.
근자에 일어난 이른바 ‘전라도천년사’ 논쟁을 보며 드는 생각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럴 때마다 여러 스승께 사숙(私淑)의 지혜를 구하곤 한다. 조동일은 ‘한국학의 진로(지식산업사, 2014)’에서 우리네 역사서술과 학문의 태도를 이렇게 비판한다.
“역사학은 인문학문이면서 사회학문이어서 양쪽을 포괄할 수 있다. 역사학이 통합학문의 관점을 갖춘 총체사로 나아가면 여러 학문이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이것은 아직 당위론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학은 사실을 시대적으로 정리하는 실증사학에 머무르고 있다. 지방사를 국사의 하위 영역으로 여기기나 하고, 국사를 넘어서는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는 길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역사의식을 상실한 채 미시적인 작업이나 하고 있다”
나는 최근 ‘바른역사시민연대’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역사교과서 교사 양성 과정’에 강의를 하고 왔다.
‘문명전환기에 생각하는 기록된 역사와 구비(口碑)된 역사’가 내 강의 주제였다. 지역사와 지역학을 다시 구상하는 셈이랄까. 기왕의 강단 사학계가 강조해온 실증주의 사학을 뛰어넘고, 재야 학계의 선험주의적 주의 주장을 넘어, 지역 사람들의 마음과 그 마음이 지어낸 구조들에 대해 그 마음을 태동하게 했던 근원과 환경들에 대해, 나아가 그 마음들이 펼치고 있는 여기, 지금, 우리와 장차 펼쳐나갈 비전과 전망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했다. 지난해 본 지면(2023년 12월 26일)에는 ‘전라도천년사 논쟁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전라도천년사 대책위원회’ 정도의 기구 마련을 제안한 바도 있다. 두 번의 밀레니엄을 지나고도 스무 해를 훌쩍 넘겨버렸다.
지난 천년에 대한 성찰과 다가오는 천년에 대한 비전을 허투루 넘겨버리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앞을 가로막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두 천년의 분기점에 태어나 생을 마감하는 운명을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멀리는 세계사적으로 가까이는 분단 한국의 미래를 성찰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들을 고안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기도 하다.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천착해온 남도의 ‘귄’과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연구들이 우리 공동체에 어떤 유익함이 있으며 혹은 피드백되었는가. 조동일의 지적처럼 장차 나는 어떤 학문의 태도를 극복하고 다음 학문의 태도를 재구성하고 있는가? 중앙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지역사에 이르고, 실증사학의 단계를 넘어 구술사의 징검다리를 건너는 소회가 소나기 품은 장마 구름처럼 무겁다.
남도인문학팁
지역사와 지역학의 선두에 나설 ‘누군가’들을 기다리며나는 지난해 여러 학자들과 힘을 합해 출판한 ‘문화자치시대의 한국 지역학(이윤선 외, 다할미디어, 2022)’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역의 틀림이 아니라 다름을 말하는 것이요, 서울에 대응되는 부속으로서의 지방이 아니라, 호혜 평등한 지역대 지역에 대한 것이며, 오히려 특징에 따라 각양의 지역이 중심이 되는 그런 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것과 저것이 틀리다고 하는 틀림의 차원이 아니라, 다만 이것과 저것이 다를 뿐이라는 문화 다양성 시대의 화두를 발설했다고나 할까.
나의 역사관 나아가 세계관은 분명하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역사에 기대어 있다. 비유컨대 한국의 갯벌에 자글자글한 물비늘 같고, 개땅쇠였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네들의 부르트고 오그라진 피부, 그 숨결들을 기록하는 일, 애오라지 그 안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생각해왔다. 구술사를 포섭하고 실증사를 횡단하는 새로운 지역사 쓰기를 시도할 사람들 어디 없을까. 이른바 강단 사학계의 실증사학을 뛰어넘고 선험주의적 재야사학계의 주의 주장도 뛰어넘는 새로운 지역사 쓰기를 시도할 이들 말이다. 이러한 시도가 두 천년의 분기점에 새 역사 서술의 첫발을 내딛는 선구적 작업이 되지 않겠는가. 시대의 질곡을 뚫고 앞서갈 ‘누군가’들을 한없이 기다린다. 한 송이 국화꽃은 봄부터 울어대는 소쩍새가 있어야 활짝 피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