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마당판에 소환시킨 진솔한 노동 현장과 지역의 무대
427. 갯돌, 몸으로 비틀어 노래한 남도의 역사
입력 : 2024. 12. 26(목) 17:05
극단 ‘갯돌’의 ‘묻지마라 갑자생’ 공연 장면.
어느 자리에서 목포대 강봉룡 교수가 ‘역사도 문학이다’라고 언명한 데 대해 나는 이렇게 호응했다. ‘문학도 역사다.’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답한다. ‘갯돌도 역사다. 피 터지는 목청으로, 울부짖는 몸부림으로, 마치 해마다 당산목에 새로 감기는 왼새끼줄처럼 비틀고 꼬아서 맨땅에 써 온 남도의 역사다.’ 10여년 전 마당극패 ‘갯돌 30년사’의 헌사(獻辭)를 이렇게 시작했더랬다. 그로부터 다시 한 순(旬)을 넘긴 모양이다. 지난해 ‘갯돌 40년 대본집’이 출판돼 나왔다. 대전의 ‘우금치’, 광주의 ‘신명’, 부산의 ‘자갈치’, 진주의 ‘큰들’ 등 전국의 마당패들과 자웅을 겨루는, 아니 그 중의 핵심이자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이자 한국의 마당극사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쾌거다. 지난날 내가 드렸던 헌사를 다시 가져와 출판을 기념하고 함께 기뻐한다. 역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실증을 기록한 사서, 그것은 부분일 뿐이다. 쓰여지지 아니한 역사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살다 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중들의 구술사를 주목하는 이유, 마치 ‘갱번’의 자갈밭, 무수히 쌓여있는 갯돌들에 다름 아닌 민중 스스로의 역사를 이런저런 형식들로 복원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들은 때때로 지각 있는 시인들의 붓끝에 오르기도 하고, 입담 좋은 소설가의 펜 끝에 실리기도 했다. 그러나 소수의 환기일 뿐,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소환의 명을 따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이들의 절절한 궤적들, 그 몸부림들을 누가 주목해 왔는가? 이 무수한 ‘갯돌’들의 역사를 노동의 현장에, 지역의 무대에, 크고 작은 마당판에 소환시켜 온 이들이 많았다. 지난 반세기, 노동의 현장으로, 마당판으로, 무대로, 까맣게 잊힌 이들을 다시 세상으로 호출해 낸 이들 말이다. 민족극의 이름으로, 탈춤패의 이름으로, 그리고 풍물패의 이름으로 전국의 마당을 들썩거렸던 이들. 그러나 지금 그 명맥을 잇는 이들이 많지 않다. 시대가 그들을 그 자리에 붙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중 가장 가열차게 그리고 소신 있게 지역을 지켜온 이들의 이름을 대라면 단연 ‘갯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갯돌이 무대로 소환시킨 역사적 인물들과 노동의 현장, 당면한 생태환경에로의 호명은 단지 역사적 사실 혹은 진실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잊힌 이들을 온몸으로 불러내는 데는 종합극으로서의 다양한 장르들, 실험들이 이뤄졌다. 화려하거나 현란하지는 않았다. 목청이 세련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진솔했다. 현학적이지 않아 함께 하기도 수월했다. 익살스럽게 갯돌밭의 ‘짱돌’을 누군가를 향해 날리기도 했다. 남도 사람들은 이 짱돌에 맞아 머리를 움켜쥐는 수구들의 ‘엉거주춤’을 보면서 울고 웃었다. 그렇게 남도 사람들과 함께 우리 시대를 견인해 온 것이 갯돌의 역사이자 작품들이다.

극단 ‘갯돌’의 ‘묻지마라 갑자생’ 공연 장면.
마당극패 ‘갯돌’의 노래와 몸짓들

장르적 맥락을 크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 민족극이니 마당극이니 소리극이니 하는 분류들은 식자들의 논쟁일 뿐이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따위도 비슷한 장르라 이를 수 있다. 장르적 변별보다는 때때로 눈물 흘리며 지켜왔을 마당 자체가 중요하다. 우리가 갯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예를 들어 마당극을 지켜왔기 때문이 아니라, 지역과 노동의 현장을 지켜왔기 때문이다. 극단 ‘갯돌’에게 수많은 남도의 ‘갯돌들’이 더불어 감사하고 행복해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갯돌의 몸짓은 굳이 장르적 분별이 유효하지 않다. 이름 그대로 갯돌들 곧 민중들의 역사가 장르이다.’ 갯돌이 온몸을 비틀어 써 온 남도의 역사 곧 공연작품은 다양한 관심사들로 묶일 수 있다. 노동 현장을 고발하고 항거하는 이야기들은 갯돌이 연행하는 몸부림의 근간을 이뤘다. 초기 몇 작품만 언급해 둔다. 서남해를 중심으로 하는 쟁의와 항거에 주목한 것이 나락놀이(공동창작, 김빌립 연출)다. 1923년 암태도 소작쟁의를 대상으로 했다. 일제와 지주, 소작농과 소작료의 문제들이 질펀한 마당극 형식으로 다뤄졌다. 어부놀이(공동창작, 김빌립 연출)도 선주와 어부들의 갈등을 다뤘다는 점에서 노동 현장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진도북춤, 상여소리, 혼건짐굿 등 남도의 민속예술이 버무려져 있다. 음매야(공동창작, 김빌립 연출)도 소값 폭락과 피해보상, 농가 부채 탕감 등 농촌경제 현실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노동의 현장에 대한 관심은 성적 소수자의 문제 제기로 확대됐다. 우리들의 둥지를 찾아서(정경이 극작, 손재오 연출)가 1990년대 공장노동자들의 애환을 다루었다는 점, 여성 노동자들이 자본과 자본가의 성폭력에 항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산강이(고은정 극작, 손재오 연출)도 일본에 강제 징용된 우토로 마을 이야기를 통해 가진자로서의 닛산자동차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문순득 표류기(고은정 극작, 손재오 연출)가 이룬 성과가 크다. 홍어장수 문순득의 표류기, 약 200년 전 육지로 홍어를 팔러 가던 중 두 번의 풍랑을 만나 일본, 필리핀, 마카오 등 3년2개월에 걸쳐 세계를 돌아야 했던 홍어 장수 문순득의 파란만장한 표류기를 국내 최초 공연으로 재조명했다. 이를 계기로 동아시아 평화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갯돌이 풀어 쓴 몸짓들은 좌나 우의 한 날갯짓이 아니다. 남도인들이 가진 평화와 평등, 조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갯돌의 몸짓에 담아냈다. 그 평화와 평등을 위해서 던지는 돌팔매질에서 이제 극적으로 성장한 국면들을 맞이한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아직 한쪽 날개로만 날려 하는 자들은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온몸으로 날면서 던지는 갯돌의 돌팔매에 다시 머리 깨지지 않으려면 말이다. 대본집 출판을 기뻐하고 축하며 거듭 바란다. 40년 전 시작했던 순수한 돌팔매질로부터 이제는 세계무대에 평화를 담는 창대한 미래를 펼치기를.

극단 ‘갯돌’의 대본집 표지.
남도인문학팁

마당극패 갯돌 연행 40년을 기록하다

3권으로 출판된 ‘극단 갯돌 40주년 기념 대본집’에는 1981년 마당극 나락놀이(정명여고 강당)을 시작으로 2020년 총체극 버스(목포유달예술타운)까지 총 70편의 대본이 실려있다. 갯돌은 이를 3시기로 나누어 살피고 있다. 1집(1981~1997)은 목포에서 최초로 지역문화운동을 표방하고 민족극 운동을 시작한 ‘민예’시기이다. 농어민을 소재로 한 마당극을 비롯해 오월 항쟁극, 노동극, 도시 빈민극 등 민중들의 현실을 고발하고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작품들이다. 2집(1998~2010)은 로컬의 시대를 예감하고 지역의 자연, 역사, 인물, 문화 등을 소재로 작품화한 시기이다. 공동체, 생명, 소통, 상생 등 현대적 이념을 소재와 주제 삼아 남도의 속살 깊은 이야기들을 끌어냈다. 3집(2011~2020)은 지역의 역사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한 작품에 집중한 시기다. 목포, 함평, 무안, 영광, 신안 등 서남해 지역의 민중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갯돌 40주년 대본집은 희곡이라는 한국의 문학사로 봐서도 금자탑을 이룬 성과다. 문학뿐이겠는가. 민중들의 몸짓을 날것으로 연행해 왔다는 점에서 남도미학의 큰 장르로 해석할 만하다. 장차 기회를 보아 관련한 남도미학에 대해 발설하겠다. 공자님 이르기를 40년이면 불혹(不惑)이라 했다. 세운 소망이 흔들림 없다는 뜻이다. 극단 ‘갯돌’이 세운 뜻은 사실 ‘우금치’, ‘큰들’, ‘신명’, ‘자갈치’들의 마당극이 세운 뜻이기도 하다. 이 뜻을 빼어나게 했으니 거듭 칭찬해도 과하지 않다. 3집 이후에도 왕성한 작품으로 활동하고 있으므로 그 장래가 밝다. 표제는 죽전 송홍범이 썼고 표지그림은 김봉준이 그렸다. 2023년 초판 미래디자인 출판, 한국의 마당극을 공부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대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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