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AI시대 휴머니즘과 생태 전시·연구 보루 ‘민속’
371) 가칭 <국립남도민속박물관>
낙안읍성의 전통적 토대와 순천만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훈련 노하우가 축적된 순천은 한반도에 마련될 가칭<국립남도민속박물관>의 최고 적지이자 풍부한 생태적 경험을 농축시킨 보고다.
입력 : 2023. 11. 16(목) 13:18
순천만 정원박람회순천시 제공
2023. 11. 12. 국립민속박물관 지역관 건립 학술포럼 국회의원회관 제공
<국립민속박물관>(줄여서 ‘민박’)은 송석하(1904~1948)에 의해 설립된 <국립민족박물관> (1945. 11. 8)을 효시로 삼는다. 임재해는 「조선민속학회 창립의 산파 송석하와 한국 민속학의 길」(한국민속학 57, 2013)이란 글에서 송석하의 업적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조선어학회>와 같은 맥락에서 <조선민속학회>를 설립하는데 산파 역할을 한 인물이라는 점, 사재를 털어 학회지 『조선민속학』을 간행한 업적 등을 평가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학자들과 어울렸다는 점을 들어 식민주의 공범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민속학 및 인류학 전공의 여러 학자들이 가열찬 논쟁을 벌인 바도 있다. 이 문제는 따로 비판하기로 한다. 다만 식민지배를 받은 제3세계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민속학회를 설립한 측면은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 주목한다. 특히 해방 직후부터 한국 동란까지(1945~1950) 송석하 소장 민속자료를 중심으로 설립 운영한 것이 <국립민족박물관>의 시초라는 점 언급해둔다. 1949년에는 문교부장관 소속으로 직제를 마련하게 된다. 1950년 송석하 타계 이후로는 <국립박물관 남산분관>으로 재편한다. 1966년 10월에는 외국인 관광 수요 충족을 목적으로 경복궁 내 수정전에 <한국민속관>을 개관하여 1975년까지 운영한다. 1975년에 문화재관리국 산하로 편제된다. <한국민속박물관>이란 이름으로 1979년까지 운영한다. 경복궁 향원정 뒤편 국립현대미술관(1998년 철거) 건물이다. 수집과 보존에 관심을 기울였던 시기로 평가된다. 1979년에 와서야 지금의 이름인 <국립민속박물관>으로 개칭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산하로 편제되어 조사연구를 비로소 수행하기 시작한 시기다. 1992년에는 문화부 직속기관으로 편제되어 중앙박물관과 대등한 관계 설정을 하게 된다. 민속문화 및 민족문화를 더불어 다루게 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1993년 2월 현재의 위치인 경복궁 내 선원전 터에 자리를 잡는다. 2003년에는 어린이박물관을 개설하였고 2009년 폐지와 개편을 통해 어린이박물관과로 운영한다. 2021년에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에 수장고를 설립 운영 중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줄여서 ‘박미법’) 10조 1항, “민속자료의 수집, 보존, 전시와 이의 체계적인 조사연구”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역사와 지역관 논의



<국립민속박물관>을 옮기는 논의는 경복궁 복원 계획으로 인해 촉발되었다. 현재의 경복궁 선원전 터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민속학술단체연합회(한국민속학회, 판소리학회 등 8개의 학회가 모여 만든 법인) 이사장을 할 적에 마침 이 논의가 가열되어 본의 아닌 설왕설래를 한 바 있다. 현재 세종시로 이전하는 안이 확정된 듯하다. 당시에도 내 주장은 현재의 국립미술관처럼 인근 혹은 경복궁 내에 이른바 지역관으로서의 ‘서울관’을 존치하는 것이었다. 경복궁 복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민중이 주인 된 세상, 민주화의 패러다임을 반영하는 정책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경복궁은 경복궁대로 가치가 있으며 민중의 생활문화를 집적하고 연구, 전시, 체험하는 민속관 또한 시대 정신을 담아낸다는 가치가 있다. 이외에 안동과 순천에 분관을 개설하는 것으로 논의가 집중된 바 있다. 왜 안동과 순천이 낙점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내가 소상히 아는 바가 없어 언급할 정보는 없다. 다만 작년에 이어 올해 2회째 국회에서 민박 이전과 분관에 대한 학술회의가 열렸고, 이런저런 일에 관여했다는 핑계로 내가 발표하였기에 그 대강을 간추려두려 할 따름이다. 2022년에는 강정원(서울대)이 기조발표를, 나경수(전남대), 배영동(안동대), 김태식(연합뉴스)이 발표를 하였으며, 2023년 11월에는 천진기(전 국립민박 관장)가 기조발표를, 영남권 대표로 배영동(안동대), 호남권 대표로 내가, 트랜드 변화 관련으로 정낙현(안동대)가 발표를 하였다. 모두 민속문화와 민속학의 의미를 크게 내세우거나 강조하는 논의였으며 지방분권 시대의 분관에 의미를 두는 발표와 토론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확인한 것은 ‘분관’이 아니라 ‘지역관’이라는 호명이다. 이것이 어디 박물관 논의에만 해당되겠는가. 예컨대 서울도 하나의 지역이라는 관점이 대두된 것이 오래이지 않은가. 이와 관련해서는 이윤선 외, 『문화분권시대의 한국 지역학』(다할미디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나아가 역사 고고 중심의 국립중앙박물관 산하 박물관이 전국 14곳(1곳은 건설 중), 국립미술관 분관이 4곳, 국립국악원 분관이 4곳(1곳은 설계중)임에 비해 민박은 파주 수장고를 제외하면 본관격인 현 민박 하나 덜렁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생활문화 중심의 지역관 설립이 당연하다는 취지를 환기해둔다. 2022년 강정원의 경우, 영남권 1곳, 호남권 1곳, 강원 충청권 1곳 정도는 최소한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3년 천진기의 경우, 한 지역 동사무소 하나 짓는 예산 정도를 국가가 마련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2023년 11월 <민속소식>(민박)에서 류정아는 민속개념의 변화와 가치 확장이 민속박물관 변화의 열쇠라고 말했다. 2023년 현재 민박이 경복궁 선원전 구역으로 이전한 지 30주년 되는 해인데, 세종시로 이전해야 할 계획을 눈앞에 둔 지금, 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주장이다. 역사고고 박물관과는 다르게 민박은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다룬다는 점에서 특별한 존재이며 비교우위를 지닌다. 유물의 전시가 주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전시하고 체험하고 향유하는 시공이 주된 목표라는 의미다. 시대 또한 그런 방향으로 흘러왔고 기왕의 박물관 패러다임을 훨씬 넘어서는 공공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는 중이다.



남도인문학팁

가칭 <남도민속박물관>과 순천지역관의 의미

K-culture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라 시대의 패러다임을 견인하고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이 토대는 의심의 여지없이 정신문화의 뿌리에 있다. 특히 한국인의 결 고운 생활양식들이 주춧돌이 되고 있다. 지난 20여 년 논의만 하다가 지쳐버린 국립민속박물관 지역관이 그 보루가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나는 이번 국회에서 열린 발표에서 순천의 장점을 들어 국가적 큰 그림 속에서 이 계획들이 추진되고 실행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낙안읍성의 전통적 토대가 축적되어 있으며 특히 순천만을 중심으로 하는 생태훈련 노하우가 장차 전개될 미래지향 박물관의 밑거름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낙안의 전통, 순천만의 생태를 들어 <국립남도민속박물관>이란 이름을 제안한 것은 남도의 정점에 갯벌 곧 ‘갱번’이 있기 때문이다. 민박의 시작과 역사에 명백하게 드러나지만, 향후 설계될 박물관은 기왕의 전시, 연구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국가적 어젠다와 틀 속에서 마련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지역자치에 반하는 국립기관으로 설립할 이유가 없다. 이미 미국을 포함한 유럽 등지의 선진국에서 에코뮤지엄과 지붕 없는 박물관이 프로그래밍되고 실천되고 있다. 특히 다문화의 여러 나라 민속을 포괄하는 통합 생활문화를 연구, 전시, 체험하는 시공으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다할미디어)에서 나는 레퓨지움(빙하기때 생명이 살아남은 웅덩이)의 기능을 도깨비에 견주어 주장했다. AI시대 소외되고 파편화된 ‘핵개인’의 시대에 휴머니즘과 생태를 전시, 연구, 실행할 수 있는 보루 중 민속만 한 것이 없다. 이런 점에서 순천은 한반도에 마련될 가칭 <국립남도민속박물관>의 최고 적지이며 풍부한 생태적 경험을 농축시킨 보고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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