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귄지고 오지고 멋지고 맛있는 거문도의 땅 이름들
367) 거문도 땅이름
대매질끝, 시네이끝, 반작끝, 배닫는끝, 배추바끝, 업데이끝, 충세이끝, 홍어머리끝, 간대끝, 엄나무끝, 이런 이름들을 들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모두 거문도의 땅 이름이다.
입력 : 2023. 10. 19(목) 14:14
거문도항 입구.
올해 글쓰기의 시작을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40주년 기념 기조발표로 시작했다. 우리나라 작은 섬들의 이름을 ‘한국의 지명총람’에 기대어 분석하여 씨줄 날줄로 엮어본 것이다. 안섬과 바깥섬의 ‘토폴로지(topology)라 표현했다. 본래 수학적 개념이지만 인문지형의 형질이나 지세를 설명하기 위해 내가 차용한 것이다. 길고 짧고 크고 작고 높고 낮거나 위아래 오른쪽 왼쪽의 대칭을 들어, 섬 이름을 정하고 마치 음양(陰陽)이나 천지(天地)처럼 쌍으로 겹으로 혹은 흥부네 아이들처럼 순서를 지어 명명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편의 발표로는 방대한 양이라 못다 한 이야기들이 많으므로 두고두고 더 밝히거나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남도인들의 변증법적 상상력, 주역에서 내가 끌어다 쓴 대대성(對待性)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글을 조금이라도 접해본 분들은 ‘아! 갱번!’ 하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주체와 타자, 랑그와 빠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에믹과 에틱의 의미들이 마치 내륙과 해양, 뭍과 물, 남자와 여자, 서양과 동양처럼 댓구되고 대칭되는 풍경으로 소환된다. 인문지세가 아니라 인문해세(人文海勢)적 기표(記標)와 기의(記意)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내외면의 표상, 안섬과 바깥섬의 행간을 소구하고 인유(引喩)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흔히 김춘수의 시 ‘꽃’을 빌어 이름짓기에 대한 의미를 톺아보곤 한다. 구체적 사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시인의 관념을 대변하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식 말이다. 명명(命名) 곧 이름짓기다. 이를 통해 대상과 시인과의 의미가 확인되고 주체적인 만남이 이뤄진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혹은 사건이든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어’ 비로소 그대가 된다.





크고 작고 높고 낮고, 달라지는 섬 이름

물결이 흘러 소용돌이치고, 사토(沙土)가 엉키고, 산석(山石)이 치솟는 것 또한 각각 그 형세가 있다. 사람이 살 수 있는(聚落) 바다 한가운데 땅을 주(洲)라 한다. 십주(十洲)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주(洲)보다 작지만 역시 거처할 수 있는 곳을 도(鳥)라 한다. 삼도(三島)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도(島)보다 작은 것을 서(嶼)라 한다. 서(嶼)보다 작지만 초목이 있는 것을 섬(苫)이라 한다. 섬과 서와 같으나 돌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초(焦)라 한다. 서긍이 천여 년 전에 ‘고려도경’을 통해 보고한 섬의 형세다. 우리가 한자어 도(島)를 차용한 이래, 섬의 형세를 어찌 인식하고 변별해왔는지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 중의 도(島)와 서(嶼) 언저리 어디쯤 서성이거나 아니면 횡단하는 일종의 토폴로지(topology)를 늘 주목한다. 한자 조어 도서(島嶼), 우리말로 크고 작은 섬이 그것이다. 서긍이 당시 묘사했던 섬들을 보면, 중국 장강 하구와 주산군도 인근 섬에서 시작하여, 초보산(招寶山), 호두산(虎頭山-대사산, 소사산), 심가문(沈家門), 매잠(梅岑, 매봉우리), 해려초(海驢焦, 강치/바다사자 바위) 등이 나타나고, 고려의 섬들로는, 협계산(가거도), 죽도(안마도), 고섬섬(위도), 군산도(선유도), 마도(안흥항), 자연도(영종도), 합굴(장봉도), 용굴(석모도) 등으로 나타난다. 무수히 나타나는 이 이름들이 낯설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어오는 이름도 있어 반갑다. 예컨대 여수 거문도의 옛 이름이 본래 삼도(三島)였다거나 진도(珍島)의 옛 이름이 옥주(沃州)라거나 따위가 그것이다. 이름짓기에 대한 전통적인 시선, 우리나라 삼면에 산재한 섬 이름들을 통해 이를 살펴볼 수 있다.



거문도 등대 전경.
거문도의 멋지고 귄진 땅 이름

대매질끝, 시네이끝, 반작끝, 배닫는끝, 배추바끝, 업데이끝, 충세이끝, 홍어머리끝, 간대끝, 엄나무끝, 이런 이름들을 들으면 어떤 풍경이 떠오르는가? 모두 거문도의 땅 이름이다. 땅의 끝자락에 그네들의 경험과 인식과 마음들을 담아 붙인 이름이다. 벼랑과 절벽 등 대개 섬 해안이 위험하기에 붙인 이름도 있다. 솔순이빠진굴, 연지빠진굴, 개빠진통, 선도빠진굴, 창순이빠진굴, 소빠진굴, 우수빠진굴 등 누군가 빠져 죽었거나 위험을 경고할 만한 장소를 적시하여 붙인 이름이다. 예컨대 김송순씨가 빠져 죽은 곳을 ‘솔순이빠진굴’이라 하고 창순이라는 사람이 빠져 죽은 곳을 ‘창순이빠진굴’이라 한다. 흥미로운 이름이기도 하지만 경고의 실제 기능을 하는 이름이다. ‘연지빠진굴’은 덕촌 마을의 서쪽 ‘지풍개’와 ‘신추’ 사이의 굴을 말한다. 행실 나쁜 계모가 연지라는 의붓딸을 절벽 아래로 떠밀어 죽인 자리라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땅 이름이 모두 전설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기점의 이름은 역사적 인물이나 민담의 주인공 혹은 지형지세와 풍경을 넘어 철학이나 관념적 캐릭터를 차용해 이름짓기를 한다. 고라짐, 신너리, 후리나리, 물리꼴팽전, 구먹등, 새끼미, 샛텀블, 간데머들, 불탄봉, 기와집몰랑, 샅통석, 숯구통, 체바통, 쇠마우개, 뽈쥐구덕, 잔가심너리, 무구남등, 모락달, 넓덕데이, 돌팽이, 갓찜통안, 와달, 통시붙들, 이런 이름들은 어떠한가? 이 멋지고 귄진 이름들 말이다. 본래 이름짓기를 했던 사람들이나 시기로부터 많이 변천하여 와전된 경향이 있기에 그 의미를 도식적으로 해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한자투의 설명이나 인위적인 조어(造語)방식의 설명으로는 그 내력을 톺아보기 어렵다. 일부 일본말의 잔재가 남아있기도 하지만 거의 전부가 지역말의 가장 밑바닥에서 길어 올린 이름들이지 않은가? 배락바, 배추바, 선바구, 칼등바, 큰평바, 흔독, 몰등바, 좆바, 코바, 이 정도 열거하면 대충 짐작할 것이다. 특정한 위치의 바위 이름이다. ‘신지끼여’는 거문도의 인어 신지끼가 자주 출몰한다는 암초를 말한다. 지난 칼럼에서 거문도의 인어 신지끼를 자세히 소개하였으므로 참고 바란다. 대개 흰색 도깨비 같은 출현물로 해석하는데 나는 이를 ‘신(神)지기’의 의미로 해석한 바 있다. 산지기, 묘지기 등의 ‘지킴이’ 용례가 있다. 무진개음산, 우무여, 박너리, 안너리, 귀트롱웃물통, 거문도 사람들의 역사와 생활과 경험과 무엇보다 그 마음들이 지극하게 스며든 용례는 몇 날 며칠을 풀어 얘기해도 모자랄 것이다. 지면상 백도에 붙인 갖은 전설과 이름의 내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한다. 우리의 땅이름, 우리말의 멋을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거문도 서도리 돌담길.
남도인문학팁

우리말의 멋과 맛, 거문도의 귄진 땅이름에 기대어



어디 거문도뿐이랴, 우리나라 섬에 남은 땅 이름들을 보면 나는 울컥 울음부터 앞선다.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름이 갖는 오밀조밀한 내력을 톺아 알기 때문이다. 남도말로 오지고 귄진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징한 이름이기도 하고 때로는 서러운 이름이기도 하다. 일찍이 한국문학통사를 썼던 조동일은 서양 문학과 우리 문학을 비교하며 서양은 체언형(體言形)에, 우리를 용언형(用言形)에 비유하여 용언형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체언은 명사, 대명사, 수사 등 대상을 보다 명료하게 규정짓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용언은 동사, 형용사 등 풀어 설명하거나 진행하는 과정을 드러내는 생각에 가깝다. 서양학에 경도된 학자들은 이 점 때문에 우리나라에 노벨문학상이 나오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예컨대 거문도 땅이름을 어찌 번역할 것인가? 하지만 나는 조동일의 주장에 동의한다. 거문도, 흑산도, 어청도, 울릉도, 그리고 수많은 섬들, 채 사라지지 않은 땅이름들을 다시 불러내고 이미 사라진 이름들을 찾아낼 일이다. 이게 어디 섬만의 문제겠는가? 우리가 정작 살려야 할 것은 귄지고 오지고 멋지고 맛있는, 하지만 그 안에 그윽하고 지극한 마음들이 켜켜이 담긴 우리말의 아름다움이지 않겠는가.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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