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천 개의 갱번에 비친 그대를 찾아 나서는 달밤의 세레나데
365)월인천강(月印千江)
월인(月印) 곧 진경산수의 낙관처럼 심중에 박힌 천 개의 달은 맥락이 같다. 천 개의 강에 스민 그대, 천 개의 물에 비친 그 마음 말이다. 술래는 술래 찾기의 술래, 즉 천 개의 강에 비친 그대 찾기이다.
월인(月印) 곧 진경산수의 낙관처럼 심중에 박힌 천 개의 달은 맥락이 같다. 천 개의 강에 스민 그대, 천 개의 물에 비친 그 마음 말이다. 술래는 술래 찾기의 술래, 즉 천 개의 강에 비친 그대 찾기이다.
입력 : 2023. 10. 05(목) 12:41
2023. 9. 22. 진도쏠비치 강강술래. 강정학
중국 청해성 용척촌 상손가 발굴 무희들이 그려진 채색토기 |
시대를 건너뛰어 조선으로 날아간다. 세종대왕은 그의 부인 소헌왕후의 죽음을 슬퍼하여 손수 월인천강지곡을 지었다. 월인천강(月印千江)은 월조천강(月照千江)과 같은 말이다. 천 개의 강에 달이 비치니 달이 천 개가 되었다.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라는 불교 게송(偈頌)에서 가져온 말이다. 본래는 천 개의 강에 달이 비친다고 달이 천 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곧 본질과 그림자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는 것인데, 부처가 백억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늘에 뜬 달이 천 개의 강에 비칠 때 강물 위의 달은 모두 하나같이 달을 품고 있지만, 그 비추는 모습은 천 가지 혹은 만 가지다. 하지만 달이라는 주체는 오로지 하나이다. 인간 마음이 우주 근원의 전일체(全一體)이지만 각기 다른 그릇에 담겨 개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풍경이랄 수 있다. 청해성 일대의 채도무분에 그려진 댕기 머리 아가씨들과 세종의 천강에 비친 월인(月印) 곧 진경산수의 낙관처럼 심중에 박힌 천 개의 달은 맥락이 같다. 천 개의 강에 스민 그대, 천 개의 물에 비친 그 마음 말이다. 강강술래의 강강은 틀림없이 강강(江江), 즉 수많은 강이라는 뜻에서 온 말이며 술래는 술래 찾기의 술래, 즉 천 개의 강에 비친 그대 찾기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강강술래를 짝짓기로 해석한 내 논문들을 찾아보면 도움이 된다.
천 개의 강에 스민 그대, 천 개의 물에 비친 마음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노던 달아/ 저기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달을 노래한 전형적인 전래동요이자 강강술래의 첫마디부터 등장하는 노랫말이다. 달타령이라는 가요로도 불려진다. 왜 이태백이 등장하는 것일까? 중국의 장강 동정호(洞庭湖)에서 술 마시고 놀다가 물에 비친 달을 잡기 위해 빠져 죽었다는 전설 때문일 것이다. 물론 사실과는 다른 설화적 장치다. 보편적으로 강강술래는 이런 노랫말로 시작한다. “달에 달에 방연줄은/ 단양넘에 손주는데/ 우리님은 어디가고/날손줄줄 모르는가/ 달떠온다 달떠온다/ 동해동천 달떠온다/ 저야달이 뉘달인가/ 방호방네 달이라네~” 여지없이 보름밤 보름달을 노래하고 있다. 마음에 숨겨둔 님을 노래하고 있다. 이태백의 자리에 우리 님을 넣었고 방호방네를 넣었다. 세종대왕이 소헌왕후를 잃고 부처의 생애를 빌어 사랑을 담아내고자 했던 월인천강처럼, 천 개의 강에 비친 천 개의 그대를 노래하는 중이다. 중국에서 발견된 채도무분의 무희 그림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월인천강의 컨셉이 아니었다면 굳이 그릇의 안쪽에 그것도 대칭을 이루어 무희들을 그릴 이유도 없고, 댕기 머리와 치마를 날리게 그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더 주목할 것은 대칭의 손잡음이다. 단순히 손을 잡고 원형을 그리며 도는 놀이가 아니라 서로 밀고 당기는 풍경 말이다. 복대칭 혹은 다중의 손잡음을 통해 밀고 당기는 행위가 예사롭지 않다. 나는 일찍이 이를 겨루기와 어루기라는 맥락으로 풀어 논문을 썼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율곡 이이를 비롯해 수기(水器)이론으로 풀어낸 이들의 시선과 만난다. 월인천강지곡은 부처님의 일생을 찬미한 노래이지만 문학적 장치는 사뭇 다르다. 강가, 물가에 서면 안다. 그림자일지언정 마주하고자 하는 사랑과 그리움이 마치 만조기의 갱번처럼 가득 차고 넘치는 것을.
‘달강달강’에서 ‘월인천강’까지
‘달강달강’은 부모 혹은 조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앞뒤로 밀고 당기며 부르는 음영 가요다. 아이는 걸음걸이도 하기 전에 부모와 손을 잡음으로써 탯줄을 끊은 독립체로서의 자신을 발견한다. 생애 최초의 손잡음 놀이가 달강달강이다. 토르게와 에로스, 아니 아가페적 사랑이 겹겹이 투사되는 놀이다. 나는 강강술래의 가장 원초적인 단계를 달강달강으로 생각해 왔다. 생애 최초의 강강술래, 이 놀이가 점점 확대되어 채도무분의 무희들처럼 복수와 다중의 손잡음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매화 열매 떨어지니/ 그 열매 일곱갤세/ 나를 찾는 임자는/ 좋은 날을 놓치지마오/ 매화 열매 떨어지니/ 그 열매 세 개일세/ 나를 찾는 임자는/ 좋은 때를 놓치지 마소/ 매화 열매 떨어지니/ 대광주리에 담았네/ 나를 찾는 임자는/ 말 났을 때를 놓치지 마소서” 저 유명한 『시경』의 국풍 소남편에 들어있는 노래 표유매( 摽有梅)다. 오늘날로 치면 강강술래 메김소리와 같은 민요다. 젊은 남녀가 강가에 나가 놀다가 남자가 자기 패옥(佩玉)을 여자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던 풍경을 노래했다. 고대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근대기까지도 신안군 비금도 등지에서는 한해의 강강술래놀이를 위해 준비하는 것들이 많았다. 어떤 처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총각의 이름을 곱게 수놓은 손수건을 준비한다. 느린 노래로 시작한 처녀들의 강강술래가 점차 고조를 띨 무렵 총각들이 하나둘 손을 잡고 끼어들기 시작하는데, 이때 마음에 두었던 총각에게 그 손수건을 살짝 쥐어 준다. 이로써 만남이 성사되며 에로스적 사랑이 시작되는 것은 적어도 동아시아문화권의 보편적 전통이다.
남도인문학팁
팔월 보름의 강강술래
지난 9월 진도에 있는 쏠비치 야외광장에서 유네스코 지정 해남진도 강강술래 공연이 있었다. 경향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여들어 장관을 이루었다. 강강술래의 힘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느낀 하루였다. 바닷물로 가득 찬 쏠비치 해안의 물결과 삐죽삐죽한 건물 북쪽으로 첨찰산의 기운이 감돌아드니, 마치 광장 안의 모두가 채도무분의 그릇 안에 들어있는 듯했다. 우리나라와 일본, 오키나와, 중국, 베트남을 포함한 동아시아에는 유사한 원무 혹은 윤무들이 전승되어오고 있다. 예컨대 중국 포의족 타오위에(跳月)는 미혼남녀들이 대가(對歌)를 통해 서로의 연정을 확인하고 선물을 주고받으며 혼인에 이르는 풍속이다. 공통적인 것은 여성들이 느린 노래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어떤 것에 대한-마음에 드는 이성에 대한-유인 혹은 견인하는 행위다. 시간이 무르익으면 총각들이 끼어들어 손을 잡기 시작한다. 이윽고 역동적이고 격렬한 뜀뛰기가 진행된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나는 20여 년 전에 비금도의 강강술래를 ‘뜀뛰기 강강술래’라 이름지어 정착시켰다. Moon on the Water! 그리움의 대상을 투사하는 고전적인 방식 중 대표적인 것이 물에 뜬 달에 그 대상을 오버랩시키는 방식이다. 남도의 강강술래는 천 개의 갱번에 비친 어떤 그대를 그리워하며 찾아 나서는 달밤의 세레나데다.
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