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동해를 일본해로 불러도 ‘말도 못하는 정부’
360, 남도인들이 붙인 이름 독도(獨島)
“뻔히 보이는 영토마저 다시 뺏으려는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 거기에 편들기하는 미국의 파렴치, 벙어리가 된 이 정부의 태도가 도를 넘는다. ”
입력 : 2023. 08. 24(목) 12:48
거문도 오성일(울릉도 도감)묘 표지판-교지사본도 게시되어있다-이윤선촬영
거문도 오성일(울릉도 도감)묘지와 비석-이윤선 촬영
울릉도 도감 오성일 교지(울릉도박물관)
~간다 간다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향해보면/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생각 간절하네/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산천 돌아오면/에이야라 술비야/ 부모처자식 반가와라/에이야라 술비야~

거문도 술비소리 중 한 대목이다. 놋소리, 월래소리, 가래소리, 썰소리 등을 포함하여 거문도 뱃노래라 한다. 1972년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남도 민요 중에서 첫 번째로 지정한 의미가 있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술비소리를 거문도 뱃노래의 하나로 설명한다. 하지만 술배소리 혹은 술비소리는 남해안에서 서해안을 관통하는 노래이다. 조도에서 장산곶까지 조기잡이 노래로 많이 불리는 ‘술비소리’가 그것이다. 조도에서는 그물을 싣고 내릴 때 부르고 연평도에서는 조기를 건질 때 부른다. 술비는 술비통과 관련이 깊다. 줄다리기할 때 사용하는 굵은 줄을 꼬아 만드는 틀이 술비통이다. 세 개의 구멍이 뚫린 두꺼운 송판을 틀에 올린 것으로, 구멍을 통과한 세 가닥의 줄을 일정하게 꼬도록 고안되었다. 술비소리가 본래 굵은 줄을 꼬면서 부르는 노래라는 점에 포인트가 있다. 물론 술비의 본래적 의미는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하므로 차후 소개한다. 그것보다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거문도 뱃노래에 등장하는 울릉도이다. 각각 남해와 동해의 끝자락에 있는 섬이고 더군다나 풍선(風船) 시절의 노래라는 점에서 그렇다. 여수 『삼산면지』에 수록된 노랫말에는 “울릉도에 가서 보면, 좋은 나무 탐진 미역, 구석구석에 가득 찼네” 등의 가사도 보인다. 울릉도로 향하는 거문도 사람들의 마음, 울릉도의 풍부한 해산물, 오랫동안 울릉도에서 생활하면서 생각하는 고향, 이윽고 고향에 돌아온 심정 등이 드러나는 사설이다. 괜히 갖다 쓴 노랫말이 아니다.



울릉도 초대 도감(島監) 거문도 사람 오성일(吳性鎰)



거문도 서도리 뒷산 서편 능선에 꽤 큰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울릉도 초대 도감 오성일(吳性鎰)의 묘’이다. 앞쪽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성일 도감은 거문도 출신으로 고종황제에 의해 광서(청나라 연호) 16년(1890) 울릉도 도감으로 임명되었다. 울릉도 도감에 임명된 것은 우리 지역 선조들의 활발한 해상활동과 울릉도를 개척한 귀중한 증거로 볼 수 있으며, 임명장 교지(敎旨)는 현존하는 유일본으로 사료적 가치가 높다. 오도감은 퇴임 후 고향에 돌아와 고향발전을 위해 헌신했던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도감(島監)’이라니 좀 낯설다. 사전에서는 울릉도를 다스리던 벼슬 또는 그런 벼슬아치로 풀이한다. 1882년 울릉도 재개척이 시작된 이후 울릉도를 대표할 도감을 두었고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군수(郡守)로 개칭했다. 오성일의 교지에는 광서16년 즉 1890년 임명으로 나온다. 거문도 사람이 울릉도의 초대 도감이 된 까닭이 무엇일까? 거문도 뱃노래 가사가 이를 말해준다. 김수희는 「개척령기 울릉도와 독도로 건너간 거문도 사람들」(한일관계사연구, 38집, 2011)이란 글에서 이 풍경을 자세히 보고한다. 1882년 이규원이 9일간 답사하는 동안 울릉도에 와 있는 본국인 141명을 만났다. 전라도가 115명, 강원도가 14명, 경상도 10명, 경기 1명 등이었다. 이중 거문도 3단체 61명, 초도 2단체 33명, 낙안 21명 등이었다. 절대다수가 전라도 사람들, 그중의 다수가 거문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해안 사람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기에 흥양(고흥)삼도둔별장(興陽三島屯別將)으로 촌장과 같은 마을 지도자였던 오성일이 울릉도 도감(島監)으로 발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강탈과 조선의 우왕좌왕한 정책으로 남도인들의 울릉도 재개척은 큰 성과 없이 끝나버렸다. 김수희는 이렇게 설명한다. “전라도인들이 울릉도에 건너가서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전복과 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독도가 보이는 울릉도에서 매년 계절적 어업에 종사하였으며, 울릉도와 독도를 생산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울릉도 개척령이 반포되자, 울릉도를 개척하는 데에 큰 공적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조선 침략 정책과 이에 대항하여 조선 정부가 시행한 여러 가지 법적 규제로 결국은 배제되고 말았다.” 이후의 국권침탈과 절치부심했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대로다. 다시 주목하는 것은, 울릉도 초대 도감 오성일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라고나 할까. 유사 이래 동해를 지금껏 누비고 다녔던 사실관계 외에, 독도(獨島)라는 남도식 이름에 관해서다. 숱한 연구자들이 독도에 대한 지명 유래를 인용하거나 견주어 살폈다. 남도사람들의 이름짓기 곧 ‘도팍섬’이라는 의미에서 ‘독도(石島)’라 했다는 설이 알려진 지 오래다. 그러하니 철 지난 독도의 유래를 소환하는 게 궁상스럽다. 며칠 전 미국에서 일방적으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한다고 했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주강현이 SNS에 밝힌 바에 따르면, 독도와 일본해 표기가 직접 관련은 없어도 장차 다케시마라는 요구가 있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한다. 이 지경을 당하고 보니 지금의 한미일 공조가 망조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 황당한 것은 동해를 일본해로 불러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정부의 태도이다. 안으로는 국민 갈등 밖으로는 나라간 갈등을 유발하는 끊임없는 편가르기, 이를 통해 우리가 얻는 이익이 무엇일까. 북중러 삼국 동맹을 부추겨 한반도의 긴장을 높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양도 육지와 마찬가지로 국토요 영토다. 하다못해 동해/일본해 병기 관행이라도 유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장차 전개될 한미일 우호선린과 윈윈을 위해서라도 이런 방식은 옳지 못하다. 머잖아 정권이 바뀌거나 중러 무역이 활발해지면 불필요한 에너지를 또 낭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여론이 악화되어 오히려 대일 우호선린을 망가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차제에 남북한 공조를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짚고 나갈 필요가 있겠다. 일본은 물론 자가당착 근시안의 대통령과 정부를 크게 꾸짖고 미국에게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것이 우리의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남도인문학팁

남도사람들이 붙인 이름 도팍섬 독도

서종학의 「독도(獨島), 석도(石島)의 지명 표기에 관연 연구」(어문연구 36-3, 2008)를 인용해둔다. 매년 울릉도로 건너간 전라도 어민들의 생활권역 내에 독도가 있었기에, 자신들의 언어로 ‘돌’을 ‘독’으로 발음하여 ‘돌섬’, ‘독섬’이라 했다. 독도가 처음 기록된 심흥택(울릉도 군수, 1906) 보고서는 고문서의 첩정(牒呈)에 해당하는 문서였으므로 음차자(音借字)하여 ‘독도(獨島)’로 기록하였고, 칙령 41호는 고문서의 교서(敎書)에 해당하는 문서였으므로 훈차자(訓借字)하여 ‘석도(石島)’라 하였다. 이때문인지 저들의 주장은 1903년경 일본인으로부터 어업을 전수받고 조선인들이 독도를 인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김수희는 아무리 늦게 잡아도 이보다 최소한 100여 년 전부터 울릉도로 도항하여 벌인(거문도 및 남도사람들)의 어로 활동을 배제한 연구결과라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반박할 필요도 없다. 흐린 날이어도 독도와 울릉도는 서로 선명하게 보이는 사진들이 공개되고 있으며 맑은 날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울릉도를 주름잡던 남도사람들이 빤히 보이는 독섬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었겠나? 나라를 강탈한 죄만 물어도 이루 셀 수가 없는데, 뻔히 보이는 영토마저 다시 뺏으려는 일본 정부의 후안무치, 거기에 편들기하는 미국의 파렴치, 벙어리가 된 이 정부의 태도가 도를 넘는다. 장차 확장되어야 할 대일 선린을 오히려 해치는 일이다. 오성일의 메시지를 다시 새기는 까닭이 여기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동해와 독도 우리나라 만세.



이윤선<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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