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문수>수도권의 빌딩숲을 벗어나, 농어민 곁으로
김문수 전남도의회 농수산위원회 위원장
입력 : 2025. 06. 02(월) 17:37
필자는 전라남도 신안에서 나고 자랐다. 삶의 터전인 바다와 논·밭이 오늘날 내 정치적 신념의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지금, 내 고향은 인구소멸이라는 조용한 위기 속에 놓여 있다. 1970년대 17만 명을 넘었던 신안 인구는 현재 4만 명도 되지 않는다. 학교는 줄고, 일손은 부족하며, 청년들은 떠난다. 하지만 이 문제는 신안만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농어촌 전체가 직면한 현실이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농어민을 대표하는 농협·수협 중앙회는 왜 서울 한복판에 있어야 하는가?”

이에, 전남도의회에서는 지난 제390회 임시회에서 ‘농협·수협중앙회 전남이전’을 대선 공약으로 채택해 줄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는 단순한 이전을 넘어 지역에 실질적인 경제적·행정적 중심축을 이전하는 국가균형발전의 초석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농어민 없는 도심 속에서 농어민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수도권 고층 빌딩 안 회의실에서 과연 트랙터 한 대로 생계를 이어가는 농부의 삶을, 어선 한 척으로 온 가족을 부양하는 어민의 현실을 제대로 논의할 수 있을까? 농어민과 동떨어진 자리에서 농어민을 이야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괴리는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쌀값 폭락 사태에서 드러난 가격 대응 실패, 수산물 판로 부진으로 인한 어민 고통, 기후위기 속 농어촌 현장 변화를 신속 반영한 정책 미비 등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언제나 ‘현장과의 거리’였다. 중앙의 시선으로는 현장의 진짜 문제를 포착할 수 없다. 현장에서 현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남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농어민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전국 수산물 생산량의 약 60%’, ‘농산물 수확량 전국 1위’, ‘농어민 인구 비중 전국 최고’.

숫자만 보아도, 농협과 수협의 중심이 되어야 할 지역은 분명 전남이다. 전남은 이미 나주 혁신도시를 중심으로 에너지·농생명 중심 클러스터가 조성되어 있다. 농협이 강조하는 농촌융복합산업이나 6차 산업, 디지털농업 등도 전남이 선도하고 있는 분야이다. 뿐만 아니라 여수·목포·완도 등 해양수산 거점 도시들이 탄탄히 뿌리내리고 있어 수산기반도 충분하다.

이제는 수도권 중심의 낡은 시스템을 벗어 넘어야 할 때이다. 지방이 중심이 되어야 농어촌이 산다. 단지 사무실 주소를 옮기는 것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농어민 곁에서, 농어민의 숨결을 느끼며 그들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일이야말로 진정한 지방분권 실현이며, 국가균형발전의 실질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정부는 제2차 공공기관 이전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소멸은 어느 지역 어느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의 총체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이전이 ‘불편’을 의미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책임’과 ‘균형’을 의미해야 한다.

전남도에서도 농협과 수협 본사의 유치를 위한 행정적,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 또한 전라남도의회 의원으로서 이 논의가 선언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할 것이다.

농어민의 중심에 전남이 있어야 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농협과 수협은 농어민 곁으로 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은 대한민국 농수산업의 중심 전남이어야 한다. 농어민이 살아야 지역이 살고,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이 작은 균형의 이동이, 우리 농어촌과 국가의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발언대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