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단편 '파란만장' 내 모든 작품 중 가장 자부심 있어"
입력 : 2025. 05. 04(일) 14:00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넷째 날인 3일 ‘J스페셜클래스’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왼쪽)과 박찬경 감독이 관객의 질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파란만장’은 제가 여태까지 만든 영화와 TV 시리즈 모두를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고 자부심 있는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여러분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건 축복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지난 3일 메가박스 전주 객사에서 열린 ‘J스페셜 클래스’ 행사에서 단편 ‘파란만장’(2011)에 대한 애정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박 감독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올해의 프로그래머로 선정된 이정현의 초대를 받아 동생인 미술가 박찬경 작가와 함께 이 행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이 공동 연출한 첫 작품인 ‘파란만장’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만을 이용해 촬영한 영화다. KT가 아이폰4를 홍보하기 위해 박 감독에게 연출을 제안한 것이 시작이었지만, 제6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단편 황금곰상을 받을 정도로 작품성을 갖췄다. 낚시하다 익사한 남자(오광록 분)와 그의 혼을 불러내려는 무당(이정현)의 이야기를 그렸다.

박 감독은 “촬영감독 외에도 여러 명의 스태프가 모두 다른 각도에서 촬영했다. 그러다 단 1초라도 건질 영상이 있으면 정말 고마웠다”며 “아주 적은 돈으로 멀티 카메라를 운영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파란만장’은 이정현에게도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그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다 1999년 가수로 데뷔한 이후 강렬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한동안 제대로 된 시나리오를 받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다 박 감독의 제안을 받고 ‘파란만장’에서 주연하며 장장 11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다.

이정현은 “제가 영화계에서 잊혀갈 때 다시 돌아오게 해준 고맙고 소중한 작품”이라며 “많은 감독님이 ‘파란만장’을 보고서 저를 다시 찾아줬다. 두 번째 영화 인생을 열어준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무당 역에는 문소리가 캐스팅된 상태였다. 그러나 촬영을 몇 시간 앞두고 문소리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박 감독은 급히 그를 대체할 배우를 구해야 했다.

“무당과 남자가 진흙탕에서 뒹구는 장면을 찍기로 한 날인데, 소리 씨한테서 전화를 받고서 ‘이 영화는 끝났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발버둥이라도 쳐보자는 마음으로 연기와 노래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봤죠. 그때 얼마 전에 만난 정현 씨가 딱 떠올랐어요.”

최민식에게서 이정현의 휴대전화 번호를 건네받은 박 감독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출연을 제안했다.

이정현은 곧바로 “시나리오는 차에서 읽을 테니 일단 출발하겠다”며 촬영장으로 향했다고 한다.

그는 “체감온도 영하 15도의 추운 날씨에 물에 들어갔는데 물이 뜨겁게 느껴졌다”며 “물에서 나올 땐 감기도 싹 나아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고 웃었다.

박 감독은 “진흙탕에서 엎어지고 구르다 다칠 뻔하고, 감기까지 걸렸는데도 신들린 연기를 보여줬다”며 “하늘이 점지해준 배우다.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고 떠올렸다.

그는 이날 상영된 또 다른 작품인 ‘복수는 나의 것’(2001) 뒷이야기도 관객에게 들려줬다. 중소기업 사장 동진(송강호)과 그의 딸을 납치해 숨지게 한 류(신하균)가 엮이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으로, 박찬욱 표 ‘아트 영화’의 시작을 알린 영화다.

박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르기 훨씬 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파격적인 소재와 스토리 탓에 어느 곳에서도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JSA’를 만들게 됐고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니 이후에는 제게 아무거나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어요. 어떤 시나리오를 써도 다 투자가 되는 상황이었죠. ‘이때 아니면 언제 하랴’는 생각에 빨리 꺼내서 영화로 만들게 됐습니다.”

이 영화는 ‘올드보이’(2002), ‘친절한 금자씨’(2005)와 함께 이른바 ‘복수 3부작’으로 불리지만, 박 감독은 처음부터 3부작을 염두에 두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복수는 나의 것’이 흥행에 실패하고 그다음 영화로 ‘올드보이’를 하게 됐는데 기자들이 빈정대는 말투로 그렇게 참패해 놓고 왜 또 복수극을 하느냐고 물었다. 저도 심통이 나서 ‘복수극을 두 편 만드는 게 뭐가 이상하냐. 나는 10편도 만들 수 있고 3부작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며 “결국 그 말에 책임지려고 ‘친절한 금자씨’까지 찍게 됐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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