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모두의 연대로 슬픔 나눠서 내일의 희망과 치유로"
●제주항공 참사 자원봉사자 허강숙·김영민씨
전국서 구호품과 봉사자 잇따라
세대·지역 초월 한마음 한뜻으로
생업 뒤로하고 안타까워 무안行
안전사회 건설 이어가겠다 다짐
"참사 재발 안돼…잊지 않을 것"
전국서 구호품과 봉사자 잇따라
세대·지역 초월 한마음 한뜻으로
생업 뒤로하고 안타까워 무안行
안전사회 건설 이어가겠다 다짐
"참사 재발 안돼…잊지 않을 것"
입력 : 2025. 01. 20(월) 18:52
허강숙 전 전남자원봉사센터장
지난 3일 무안 망운면 무안국제공항에서 전남자원봉사센터 자원봉사자들이 구호품 배분 등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윤준명 기자 |
●허강숙 전(前) 전남자원봉사센터장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자원봉사자들과 구호품을 보내준 국민들 덕에 사고 수습이 비교적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무안을 향했던 전 국민의 나눔과 연대 정신에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허강숙 전 전남자원봉사센터장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이후, 많은 국민들의 도움 덕분에 사고 수습과 지원이 빠르게 이뤄졌다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지난해 12월31일자로 전남자원봉사센터장 임기를 마칠 예정이었던 그는 임기만료를 이틀 앞두고 참사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재난 시 전남도의 ‘통합자원봉사지원단장’ 역할을 수행하는 센터장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음을 느꼈던 그는 임기 만료 이후에는 개인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임시 센터장 역할을 수행하며 현장을 신속하게 지휘했다.
허 전 센터장은 “사고 당일에만 전남 각지에서 자원봉사자 222명이 각자 일정을 제쳐두고 현장에 달려왔고, 구호품은 전국에서 쏟아졌다”며 “이틀째부터는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며 지원을 이어가는 등 사고 발생 초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들의 헌신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자원봉사자들은 지역과 세대를 초월해 한마음으로 무안을 향했다. 이들은 국가적 비극에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고자 하는 진심을 담아 유가족과 시민들을 위한 지원 활동에 온 힘을 쏟았다.
허 전 센터장은 “최연소 봉사자는 수원에서 온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었다. 어린아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맡은 역할을 성실히 해내고 돌아갔다”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께서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느냐’며 적극적으로 센터를 찾아오셨다. 무안공항을 향한 온정의 손길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전남자원봉사센터와 봉사자들은 공항과 무안스포츠파크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시민들의 추모를 돕고, 유가족들을 위한 물품 지원 및 심리적 지원을 제공했다. 또 유가족들이 임시 쉘터로 사용하던 공항의 환경 정화와 함께 이들의 식사를 지원하고, 쏟아지는 구호품을 정리하는 등 전반의 업무를 수행했다.
허 전 센터장은 “센터와 봉사자들은 20여일의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생업을 뒤로 한 채 유가족들과 추모객들을 돕기 위해 헌신했다”며 “산더미처럼 쌓인 구호품을 분배하고, 화장실 청소와 공항 내부 환경 정리도 도맡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참혹한 사고와 애타는 수습 과정 동안 유가족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자원봉사자들 역시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일도 잦았다.
허 전 센터장은 “가깝게 지내던 한 봉사자는 며칠째 넋을 잃은 채 눈물을 흘릴 정도로 힘들어했다.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봉사자 중 심한 재난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이 많았다”며 “이들이 적절한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심리 치유센터와 연계해 주기도 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사고 이후 무안공항에 머물며 함께 슬픔을 나누던 자원봉사자들에게 많은 유가족들이 깊은 감사를 전해왔다면서, 이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도 전했다.
허 전 센터장은 “유가족들이 공항 추모의 계단에 붙인 쪽지에는 ‘덕분에 빠르게 치유되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감사의 편지가 많았다. 일부 유가족은 위로의 편지를 자원봉사자들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직접 고맙다고 전해주는 분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슬픔에 잠겨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도 봉사자들을 배려해 준 유가족들께 감사하고, 더 많은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치유에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희생자분들도 분명 가족들이 행복하게 지내시기를 바랄 것이다. 마음을 잘 추스르시기를 바란다”고 위로의 말을 전했다.
자원봉사자 김영민(42)씨. |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무작정 무안으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는 김영민(42)씨는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틀 차인 지난해 12월31일부터 이달 18일 합동추모식에 이르기까지 약 3주간 무안국제공항을 지켰다. 전통주 제조(양조) 관련 프리랜서(개인사업자)로 활동하는 그는 당초 노모와 연말 여행을 계획하고 일정을 비워뒀으나, 갑작스러운 대형 참사 소식에 모친께 양해를 구하고 급히 현장으로 내달렸다. 김씨는 10여년 전 진도에서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사고 수습을 돕기 위해 장기간 봉사활동에 나선 바 있다. 그는 이번에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마땅한 책임을 다하자는 신념 하나로 생업을 뒤로 한 채 무안행을 택했다.
김씨는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하자는 생각에서 꾸준히 봉사를 이어오고 있다”며 “재난을 겪은 우리 이웃들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고, 여력이 될 때 함께 힘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측에서 제공한 사무실 공간에서 자원봉사자들은 돌아가며 쪽잠을 자며 생활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매일 고강도의 업무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다고 잘라 말하면서도, 대형 참사가 숱하게 반복되는 것에 대해 무기력함과 분노를 느꼈다고 밝혔다.
김씨는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육체적으로 크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며 “다만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유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며 왜 세월호·이태원 참사에 이어 이런 참사가 반복되는지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더 컸다”고 토로했다.
이어 “재난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예전의 트라우마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할 수 있는 건 그저 곁에서 조용히 봉사하는 것뿐이라 무기력함도 느꼈다”며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는 사회를 보며, 우리가 점점 참사에 익숙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그는 20여일간 유가족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큰 비통함과 괴로움을 느낌과 동시에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다른 유가족들이 울음소리를 듣고 더 슬퍼할까 싶어 새벽에 분향소 밖에서 눈물을 삼키는 유가족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며 “세월호·이태원 참사의 유족들이 ‘잊지 말아달라’는 말씀을 많이 했는데 우리의 노력이 게을렀다는 생각이 들어 유가족들께 죄송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참사로 모인 자원봉사자들의 경험과 느낀 점을 담은 백서를 작성하는 등 안전한 사회를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김씨는 “잇따르는 참사를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더 많은 학습과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며 “자원봉사 과정에서 느낀 점, 안전 사회에 대한 물음들을 엮어 백서를 만들고, 이를 각종 단체에 배부할 계획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사 직후 자신과 같이 전국에서 달려온 많은 이들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청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그는 “최근 사회가 대내외적 어려움 등으로 차갑고 메말라 있다고 느꼈지만, 이번 참사에 전국에서 몰려드는 청년들을 지켜보며, 이들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감사함을 느꼈다”며 “기성세대로 접어드는 나 스스로도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나이 들겠노라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무안국제공항에서 진행된 합동추모식에서 자원봉사자 대표를 맡기도 한 그는 추모사를 통해 무안에 모인 연대의 힘이 치유와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영민씨는 추모사에서 “이 자리에 함께한 모두가 사랑의 연대로 슬픔을 함께 나누며 더 밝는 내일의 희망과 치유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터져나오는 눈물을 삼켰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