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나라 망신
한규빈 취재2부 기자
입력 : 2024. 10. 07(월) 15:32
한규빈 기자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광주시체육회가 관리하고 있는 광주월드컵경기장의 잔디 때문이다.

기자는 최근 일본에 다녀왔다. 현장에서 가와사키 프론탈레-알비렉스 니가타(J1리그)와 시미즈 에스펄스-요코하마 FC(J2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광주FC(ACLE) 등 세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잔디였다. 가와사키 토도로키 스타디움과 도쿄 국립경기장은 킥오프에 앞서 양탄자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 만큼 최상의 컨디션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광주월드컵경기장은 이 두 곳에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지난달 17일 요코하마 F. 마리노스와 2024-2025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리그 스테이지 1차전을 앞두고 여기저기 흙이 노출되고 영양제가 포함된 색모래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일정 마지막 날 찾은 도쿄의 한 중고 유니폼 샵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점원이 기자가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길래 ‘광주에서 왔다’고 답하자 ‘나는 요코하마 F. 마리노스의 팬이다. 광주FC는 정말 강한 팀이다’라고 칭찬해 뿌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내 ‘우리 닛산 스타디움은 J리그에서 잔디가 가장 좋지 못한데 광주월드컵경기장은 정말 심각하지 않냐’는 질문을 꺼냈다. 잔디 상태는 물론이고 대형 콘서트가 개최됐다는 등 관련 사정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고, 차마 답을 할 수 없었다. 광주시체육회는 대형 콘서트 개최 후 잔디 복구에 미온적이었다. 영양제 살포와 잔디 파종, 배토 작업 등을 실시했고 AFC 실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뒤늦게 롤 잔디 전면 보식을 약속했으나 이마저도 예산 문제로 부분적으로 이뤄졌다.

트럭 시위를 진행하는 등 광주FC 팬들의 성토에 구단주인 강기정 광주시장까지 직접 광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아 ‘경기하기에 이상이 없다’고 공언했으나 첫 경기를 지켜본 AFC의 판단은 ‘경기 개최 불가’였다.

결국 광주FC는 오는 22일 예정된 조호르 다룰 탁짐 FC와 ACLE 리그 스테이지 3차전을 경기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사실상 중립 경기로 치르게 됐다. 광주시체육회의 관리 실패가 일본은 물론 말레이시아에까지 망신살을 뻗친 셈이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광주시체육회는 여전히 문제의식이 없다. 광주시체육회의 한 간부는 대체 구장 개최 결정 후에도 “관리에 최선을 다했고 문제가 없었다. 전국적인 이상 기온이 원인”이라며 반성하지 않았다.

특히 “문수월드컵경기장 잔디가 더 안 좋았다. 울산HDFC 때문에 우리까지 머리채를 잡힌 모양새가 돼 억울할 따름”이라고 항변했다. 과연 그는 잔디에 대한 부끄러움은 광주FC 팬들과 관계자, 광주시민들의 몫이라는 것을 알까.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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