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오디세이>‘돈이 세상을 바꾼다’…물질만능주의 시대의 도래
<세빌리아 이발사>
작곡가 롯시니의 ‘오페라 부파’ 명작
프랑스 희곡작가 보마르셰 원작 작품
‘자본주의로의 변화’ 사회적 단상 묘사
평민 계급 이발사의 신분 상승 담아내
작곡가 롯시니의 ‘오페라 부파’ 명작
프랑스 희곡작가 보마르셰 원작 작품
‘자본주의로의 변화’ 사회적 단상 묘사
평민 계급 이발사의 신분 상승 담아내
입력 : 2024. 06. 06(목) 16:50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1막 만물박사의 노래를 부르는 피가로.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2024~2025시즌
유럽에서 탄생한 오페라는 18세기 이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오락거리로 등극했다. 오페라의 성장은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무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부르주아 계급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특권계층이라 할 수 있는 봉건세력의 쇠퇴와 함께 자본축적을 통해 성장한 시민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바뀌었으며, 이로 인해 오페라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시민이 되었고 오페라에서 표방하는 주제 역시 이러한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들로 넘쳐났다.
오페라는 탄생부터 여전히 사랑이 주제로 해피엔딩과 주인공의 죽음을 결말로 하는 비극적 결말 중심의 이분적 전개로 진행되었지만, 탐욕과 사리사욕의 매개체인 돈은 대본 이곳저곳에 등장하며, 자본주의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고 있었다.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처리해주는 만물박사 ‘피가로’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극중 인물로 그가 주인공인 롯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의 오페라 부파 <세빌리아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1816>는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사회상의 단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피가로의 어원이 당시 유럽에서 쓰이던 손동작 욕설을 뜻하는 문구에 들어있는 단어 ‘피그(figue)’에서 왔다는 설도 있으나, 매력 있고 재치 있는 불량배 악당을 지칭하는 스페인어 ‘picaro’에서 유래된 것이 좀 더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불한당이라는 의미를 가진 피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 스페인 세비야를 배경으로 하는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이며 주인공인 피가로의 직업은 이발사다.
<세빌리아 이발사>에서 피가로의 등장과 함께 부르는 우리 귀에 익숙한 아리아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나는 이 마을의 만물박사)’에서 이발사인 자신이 머리 손질이나 면도뿐만 아니라 수의사, 나아가 의사, 중매 역할 등 마을의 모든 잡다한 일을 해결하는 만물박사이자 해결사라고 떠드는 내용이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모습을 훔쳐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주인공 로지나의 미모에 반해 이곳 세비야 한 마을까지 흘러온 알마비바 백작이다. 하지만 불행하게 욕심 많은 후견인인 바르톨로가 그녀의 재산을 노리고 그녀와의 결혼하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고 있어서 애를 태우는 중이다. 백작은 재치꾼인 피가로를 금화로 매수하고 로지나와 자신과의 결혼을 성사시킬 것을 약속받는다. 결국 피가로의 재간으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진다.
이 오페라에서 돈의 위력이 곳곳에서 발휘되었다. 먼저 위에서 언급했듯이 피가로는 자신에게 금화가 쥐어지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것이라며, 백작을 유혹하고 백작은 그에게 돈주머니를 쥐여 주며 “돈의 위력을 기대해 볼까?”하며 응대한다. 또한 돈의 위력은 후견인 바르톨로와 한 패거리인 음악 교사 바질리오와 공증인까지 매수해 백작의 편에서 로지나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한다. 후견인 늙은 바르톨로가 꾸미는 로지나와의 결혼 역시, 그녀를 사랑하기보다는 그녀의 유산을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작품은 돈의 유혹뿐만 아니라 수많은 권모술수가 등장한다. 피가로의 재치로 바르톨로를 골탕 먹이고, 백작과 로지나의 만남을 주선한다거나, 음악 교사 바질리오가 백작에 관한 비방을 만들어 소문을 내고 그 소문은 일파만파 부풀려져 그를 파멸시킬 것이라 한다. 이런 로비와 음모, 권모술수가 판치는 이 작품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이를 재미와 감동으로 승화시키는 음악이며, 관객들은 해학적 음악과 연출에 시종일관 웃음이 가득 띤 미소를 지운다. 이러한 권모술수와 이에 이용되는 재화가 작품 안에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 주지만 <세빌리아 이발사>는 오로지 순수한 사랑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백작과 로지나의 결혼으로 귀결된다. 수단으로 쓰이는 돈이 상황을 극복하는 수단으로 쓰이지만, 이러한 미화 역시 당시 물질만능주의 세상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가며 무엇보다 재화가 제일인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는 프랑스 희곡 작가 보마르쉐(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1799)의 ‘세비야의 이발사, Le Barbier de Seville, 1775’를 기초로 스테르비니(Cesare Sterbini, 1784~1831)의 대본으로 완성되었다. 원작인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가 나오기 30년 전 1785년 8월 19일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됐다. 이날 공연에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로지나 역을 루이 16세의 남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피가로 역을 맡았다. 이 공연이 끝나고 불과 4년 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왕비의 목이 잘려 나가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로 볼 수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 ‘피가로의 결혼, 1784’은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붙인 작품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이발사 피가로의 계급은 평민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 봉건 귀족의 하인이던 이발사가 자영업자로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등장한 모습은 무너지는 계급 사회를 비추고 있다. 피가로는 귀족에게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스스럼없이 요구하고, 귀족보다 뛰어난 재치와 재간으로 당당히 모든 일을 해결하는 모습은 당시 시민들에게 크나큰 호응을 안겨주었다. 작곡가 롯시니는 관객들의 니즈를 정확히 간파하는 흥행사의 기질이 있었다. 과거 권력자인 왕과 귀족 교황 등의 요구로 의식과 유흥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하인이던 작곡가들과 달리 롯시니는 엄연한 프리랜서 작곡가였으며 이러한 삶이 작곡가의 삶이 투영된 오페라라 할 수 있다. <세빌리아 이발사>는 당시 유럽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롯시니가 큰 부를 축적한 계기가 되었다.
여느 음악가와 달리 음악과 투자를 통해 평생 즐기며 살 수 있는 재화를 모은 롯시니의 모습은 마치 시대의 조류를 잘 파악하고 한국의 대중음악을 세계 주류 대중예술 시장에 편입시킨 한류 선구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세빌리아 이발사>의 피가로, 그리고 작곡가 롯시니의 모습은 권위주의 시대에서 탈권위주의 시대로 변하는 사회양상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변화의 담론을 품은 오페라는 활자 대신 음악과 극을 통해 우리에게 해학으로,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서고 있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미식가 롯시니 : 워낙 독특한 유머로 사람들을 즐겁게 한 롯시니는 특히 미식가로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많이 남긴 작곡가였다. 37살에 오페라 작곡가를 은퇴하고 40여 년 남은 삶을 풍파 없이 편안하게 즐기면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는 저자의 시선에서 음악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그가 정말 사랑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음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롯시니의 음악계에서 빠른 은퇴 이유가 송로버섯을 찾기 위한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서라 전해지는데, 지금도 고가에 세 개 3대 요리로 꼽히는 송로버섯요리에 대한 애착이 특별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그가 일생에 세 번 울었다는 일화 중 한번이 뱃놀이에 싸 간 송로버섯 가득 채운 칠면조 요리가 강물에 풍덩 빠졌을 때였다고 하니 그만큼 송로버섯에 대한 그의 사랑을 알 수 있다.
◇명곡소개 : 바리톤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의 연주 / 오페라 중 1막의 피가로의 아리아 ‘La ran la le ra ... Largo al factotum della citta(나는 이마을의 만물박사)’ / 1993년 Warner Music Group Company 음반
오페라는 탄생부터 여전히 사랑이 주제로 해피엔딩과 주인공의 죽음을 결말로 하는 비극적 결말 중심의 이분적 전개로 진행되었지만, 탐욕과 사리사욕의 매개체인 돈은 대본 이곳저곳에 등장하며, 자본주의 사회로의 급격한 변화를 묘사하고 있었다. 돈이라면 무슨 일이든 처리해주는 만물박사 ‘피가로’는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극중 인물로 그가 주인공인 롯시니(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의 오페라 부파 <세빌리아 이발사-Il barbiere di Siviglia, 1816>는 자본주의로 변해가는 사회상의 단상을 잘 묘사한 작품이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 1막 술취한 군인으로 변장한 알마비바 백작으로 벌어진 소동에 도착한 군인들.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2017년 공연된 ‘세빌리아의 이발사’ 장면.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
‘세빌리아 이발사’에서 알마비바 백작을 열연하는 테너 후안 디에고 플로레스.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는 프랑스 희곡 작가 보마르쉐(Pierre-Augustin Caron de Beaumarchais, 1732~1799)의 ‘세비야의 이발사, Le Barbier de Seville, 1775’를 기초로 스테르비니(Cesare Sterbini, 1784~1831)의 대본으로 완성되었다. 원작인 보마르셰의 희곡 ‘세비야의 이발사’는 롯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 이발사>가 나오기 30년 전 1785년 8월 19일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됐다. 이날 공연에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로지나 역을 루이 16세의 남동생인 아르투아 백작이 피가로 역을 맡았다. 이 공연이 끝나고 불과 4년 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왕비의 목이 잘려 나가게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로 볼 수 있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속편 ‘피가로의 결혼, 1784’은 프랑스혁명에 불씨를 붙인 작품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세빌리아 이발사’ 공연 중 알마비바 백작(가운데)과 피가로(오른쪽). 출처 뉴욕메트로폴리탄오페라극장 2024~2025시즌 |
여느 음악가와 달리 음악과 투자를 통해 평생 즐기며 살 수 있는 재화를 모은 롯시니의 모습은 마치 시대의 조류를 잘 파악하고 한국의 대중음악을 세계 주류 대중예술 시장에 편입시킨 한류 선구자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세빌리아 이발사>의 피가로, 그리고 작곡가 롯시니의 모습은 권위주의 시대에서 탈권위주의 시대로 변하는 사회양상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변화의 담론을 품은 오페라는 활자 대신 음악과 극을 통해 우리에게 해학으로, 재미와 감동으로 다가서고 있다. 조선대 초빙교수·문화학박사
◇명곡소개 : 바리톤 토마스 햄슨(Thomas Hampson)의 연주 / 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