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우리가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네들의 혼 말
393)그림이 된 남도말, ‘전라도말그림’
‘와보랑께’, ‘엄니 보고 싶어’, ‘거시기랑 머시기랑’ ‘오메 징한 거’ 포스트잇을 보니 알겠다. 전라도 말을 그림으로 그려둔 것이다. … 포스터에 내세운 그림을 보니 ‘이리 뽀작 와바야’
입력 : 2024. 05. 06(월) 16:12
2024. 4. 15.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김성우 화백의 신문자도-이윤선 촬영 (1)
2024. 4. 15.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김성우 화백의 신문자도-이윤선 촬영 (2)
2024. 4. 15.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김성우 화백의 신문자도-이윤선 촬영 (3)
2024. 4. 15.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김성우 화백의 신문자도-이윤선 촬영 (4)
2024. 4. 15.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김성우 화백의 신문자도-이윤선 촬영 (5)
김성우 관장이 내게 묻는다. 무슨 글자인지 맞춰 보세요. 일종의 문자 찾기 수수께끼이다. 직선과 곡선이 서로 엉키며 독특한 화면을 구성하고 있다. 겹치고 나눠진 원들이 떼굴떼굴 굴러 네모진 칸 안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이내 직사각형의 긴 상자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어떤 도형 안에는 새들이 앉아있기도 하고 넓은 면으로 초승달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로 그은듯한 직선들이 교직되는가 하면 붓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듯 삐뚤삐뚤 흐트러지기도 한다. 점과 선과 면들이 마치 씨실 날실의 베틀처럼 직조되는 공간마다 빨갛고 파랗고 혹은 희고 검은 색들이 빼곡하게 채워진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면이 다시 선이 되고 거슬러 올라 점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오방(五方)의 색 중에서도 정색인 원색을 그대로 드러내는가 하면 간색인 혼합색들이 균형을 이루며 배치된다. 농악의 삼색띠를 두르듯 삼원색이 두드러지는가 하면 전립과 쾌자와 고깔과 용기(龍旗)의 색들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한다. 그림인지 글자인지 알 수가 없다. 아니, 그림이기도 하고 글자이기도 하다. 다행스럽게 그림의 오른편에 포스트잇을 붙여두어 무슨 글자인지 적어두었다. ‘와보랑께’, ‘엄니 보고 싶어’, ‘거시기랑 머시기랑’ ‘오메 징한 거’ 포스트잇을 보니 알겠다. 전라도 말을 그림으로 그려둔 것이다. 마치 아이들 놀이하듯 글자를 알아맞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인전 포스터에는 ‘그림이 된 사투리’, ‘사투리 그림전’이라 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그림으로 그렸다는 뜻이다. 포스터에 내세운 그림을 보니 ‘이리 뽀작 와바야’이다. 그렇다. 뽀짝 다가서야 보인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 장르에 이름을 붙여봤다. 픽토그램(pictogram) ‘전라도말그림’.



강진 병영의 작은 미술관에서 만난 개미진 전라도말



점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 선들이 마을 뒷산의 능선이 되며 면들이 하나둘 마을의 집들을 이루어 따뜻한 색감으로 채워진다. 작은 선들이 서로 겹쳐 마당의 멍석이 되기도 하고 뒤안(뒤꼍)의 꽃이 되기도 한다. 이내 우리는 펼쳐진 멍석에 앉아 상현의 달을 구경하기도 하고 뒤안에 쪼그려 앉아 맺히는 꽃봉오리를 쳐다보기도 한다. 점, 선, 면이 단면으로 교직하여 마을을 직조하고 입체적으로 교직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오방의 색감들을 즐겨 사용하였으니 민화(民畵)에 가깝다. 하지만 길상화나 겨레화라고 하기는 어렵다. 전라도말을 대상으로 삼았으니 문자도(文字圖)에 가깝다. 그럼에도 효, 제, 충, 신, 예, 의, 염, 치 여덟 글자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전통의 효제도와는 결이 다르다. 현대적 감각의 추상화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의 그림마다 강진 병영골의 이야기가 깊고 아스라하게 스며들었다. 글자를 쓰는 것을 서예(書藝)라 하고 글자와 그림을 아울러 일러 서화(書?)라 한다. 글자를 염두에 둔 그림이니 일종의 서예에 가깝다. 하지만 글씨를 붓으로 쓰는 예술이라는 어의(語義)를 가로질러 현대미술의 마당에 든 그림이다. 서예의 발전 과정으로 보면 최초의 문자로 등장하는 갑골문(甲骨文)의 형태를 닮았다. 사전에서는 갑골문을 이렇게 설명한다. “고대 중국에서 거북의 등딱지나 짐승의 뼈에 새긴 상형문자, 한자의 가장 오래된 형태를 보여주는 것으로, 주로 점복(占卜)을 기록하는 데 사용하였다.” 그래서 귀갑수골문이라고도 한다. 선이 가늘고 크기가 다양하며 긴 직사각형이 많다. 금문과 전서, 예서, 초서, 행서, 해서로 발전되어온 서예의 역사를 상기한다. 전통적인 민화의 문자도를 효제문자도, 효제도, 팔자도, 꽃글씨 등으로 호명하는 이유가 있다. 효열, 충신, 예의 등 유교 이념을 강조하고 교육하기 위한 목적이 그것이다. 주로 궁중이나 상류층 가정에서 장식용 그림으로 쓰이다가 19세기 들어서야 민간에서 유행하게 된 그림이다. 형식과 소재가 다양해져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그 영역이 확대되었다. 김성우 관장의 예술에 이름을 붙이자면, 단순하게는 ‘전라도말그림’, 기능적으로는 민화 문자도를 새롭게 재구성한 픽토그램 ‘신문자도(新文字圖)’라 할 수 있다. 심지영은 ?문자와 그림 사이-조선시대의 문자도?(인문과학 제116집)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사 김정희의 작품을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문인화에서 읽히는 것(lisible)과 보이는 것(veisble)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즉, 읽을 수 있는 내용과 보여지는 현실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데, 글의 내용과 글씨체, 그림체가 일치하는 것이 그 핵심이라 하겠다. 문자와 그림이 서로 힘의 관계 속에 놓여 있는데, 이 힘의 관계 속에는 문자가 그림을 가두느냐, 그림이 문자의 힘을 누르고 독자적인 능력을 갖느냐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위에서 말한 작품은 저 유명한 ‘세한도(歲寒圖)’와 ‘불이선란’이다. 그림과 글자의 관계를 상호 대립적인 혹은 대칭적인 구조로 이해하고 있다. 김성우의 예술은 문자를 가둔 그림인가, 문자를 초월한 그림인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림과 글자의 구분이 모호하다. 글월 문(文) 자체가 무늬 문(紋)을 함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자와 그림 사이의 힘이 대립적이지 않다. 엽동주, 진제스민, 김주연이 공동으로 쓴 ?서예와 서예 작품의 관계에 관한 연구?(한국공간디자인학회논문집 제19권)에서 이렇게 말한다. “서예 작품은 문자를 통한 기본적 정보 전달의 역할 뿐만 아니라 예술가의 감정과 심미적 이념을 담고 있는 매체로서, 서예가의 재능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 전통과 사회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이는 서예 작품의 미학적 가치가 글자의 가독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선의 미감, 구조의 조화, 먹물의 변화, 독특한 형식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성우의 작품이 그러하다. 전라도 병영의 문화 전통과 시대를 반영하고 병영 사람 곧 남도사람의 DNA를 한껏 담은 감정과 심미적 예술 감각을 반영하고 있는 그림이다. 남도의 고대를 화폭에 깔고 남도의 말을 그림으로 그렸기에 그렇다. 시가와 산문과 글씨와 그림이 아울러 들어 있으니 가히 시문서화(詩文書?)다.



남도인문학팁

강진 병영 와보랑께박물관

강진군 병영면 도룡리에 위치한 와보랑께박물관은 관장 김성우씨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 미술관이다. 박물관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그림 외에 전통 생활 민구들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생활 민구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무엇보다 김성우 관장의 글자그림이 백미다.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건물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수천 점은 되어 보이는 듯한 그림들이 쌓여있다.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전남대 예술대학장과 에뽀크 이사장을 역임한 고 김종일 화백의 결을 이었다. 일종의 추상화 계열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공직생활을 역임한 김씨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보다 당신이 사랑하는 병영 사람들, 나아가 전라도말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이 그림들이 하나의 노래라면, 이 안에 든 선율과 장단을 살펴 어떤 노래라고 말할 수 있겠나? 전통적인 민요의 선율보다는 창가(唱歌) 이후 서구적인 선율을 가미한 동요랄까. 아니, 무엇보다 삼색띠를 둘러맨 농악대들의 한바탕 굿판 음악 아닐까? 부엌에 들어 ‘정지굿’ 마루에 들어 ‘마랫굿’, 마당에 들어 ‘마당굿’들이 펼쳐지는 한바탕의 ‘매구굿’ 말이다. 말과 문자와 도상을 가로질러 현대적 변주를 하고있는 아름다운 세계가 병영의 작은 마을에 움자리를 튼지 오래다. 전라도 사람들의 심성에 녹아들어 있지만, 이제는 화석화된 전라도말, 이를 도상으로 옮긴 김성우 관장 덕분에 우리는 잃어버린 남도의 노스텔지어를 새삼 환기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말,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아버지와 어머니네들의 혼 말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전남도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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