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희생자 경찰 계좌조회 논란…유족 '분노'
경찰 “역장 수사 위해 지하철 이용 확인”
지역 유가족 “범죄자 취급당한 기분“
입력 : 2023. 03. 21(화) 18:33
지난달 7일과 10일 광주 지역 이태원 참사 유가족 유모씨가 은행으로부터 받은 금용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서. 독자 제공
최근 경찰이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금융거래내역을 조회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여파가 지역까지 번지고 있다. 광주·전남 유가족들은 반복되는 정부의 ‘2차 가해’를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20일 언론을 통해 경찰이 이태원 참사 사상자 450명의 금융거래내역을 조회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유가족들은 참사가 발생한 지 넉 달이 지난 시점인 지난 2월, 은행으로부터 희생자의 인적사항과 거래내역 등을 서울경찰에 제공했다는 ‘금융거래정보 제공사실 통보서’가 날아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태원역장 수사 목적으로 희생자들의 대중교통 이용 내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지난 1월 영장을 발부받아 참사 희생자 158명, 생존자 292명 등 총 450명의 교통카드 사용 내역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경찰의 해명에도 유가족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사전 안내 및 동의가 없었을뿐더러, 경찰의 설명과 달리 희생자의 통장거래내역까지 제공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지역 유가족 유모씨 또한 지난달 7일과 10일 두 차례 각기 다른 은행에서 통보서를 받았다. 경찰은 유씨 딸의 인적사항 및 보유카드, 카드거래내역 등을 조회했다.

유씨는 통보서 내용 중 ‘사용목적: 영장’이라는 대목에서 울분을 터뜨렸다.

유씨는 “통보서가 우편함에 덩그러니 꽂혀있었는데, 내용을 확인해보니 어이가 없게도 우리 딸에게 나온 ‘영장’이었다. 희생자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씨는 ‘역장 수사 목적’이라는 경찰에 해명에도 의문을 표했다. 유씨는 “희생자들이 지하철만을 이용해 이태원을 간 것도 아니고, 당시 (이태원에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렸는데, 희생·피해자 450명의 이용 내역이 과연 역장의 유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타당한 근거 자료가 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유씨는 참사 발생 직후 장례식장에서 경찰·검찰 관계자들이 ‘마약 의혹’을 제기하며 부검 의사를 밝혔던 사실을 언급하며, 정부의 반복되는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유씨는 “(경찰이) 거래내역을 조회한 것이 혹여 ‘마약 의혹’때문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의도가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참사 희생자들에게 ‘프레임’을 씌우는 결과를 낳을까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로 동생 박시연씨를 떠나보낸 박도현씨 역시 유씨와 비슷한 시기 통보서가 발송됐다는 안내 전화를 받았다.

박씨는 해당 서류가 아무도 살지 않은 동생의 집으로 배송됐을뿐더러, 그 사실을 유족이 아닌 동생의 휴대폰으로 통보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박씨는 "동생 핸드폰으로 우체국에서 '금융관련 서류가 배송됐다'는 전화가 왔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은 동생의 집에 우편이 발송된 것이다. 결국 우편물은 반송됐고 아직까지 우리 가족은 그 서류를 직접 받아보지 못했다"며 "어떻게 유족도 아닌 현재 존재 여부조차 불분명한 망자의 집과 휴대폰으로 이런 사실을 통보할 수 있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박씨는 "유가족의 입장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발송 방법이 매우 기분 나쁘고 화가 났다. 만약 동생의 전화를 없앴다면 서류가 온 사실마저도 알지 못했을 거다"며 "고의이든 아니든, 정부는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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