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조사위, 발포명령자·암매장 진상 끝내 못 밝혀
●종합보고서 발간 대국민보고회
헬기사격·민간인 피해 등 규명
무기고 탈취·장갑차 사망 ‘정정’
"아쉬움 있지만 진상규명 토대"
헬기사격·민간인 피해 등 규명
무기고 탈취·장갑차 사망 ‘정정’
"아쉬움 있지만 진상규명 토대"
입력 : 2024. 06. 24(월) 18:11
전남도청 앞 분수대. 5·18 기념재단 제공. 나경택 촬영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사격이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조위)는 앞서 수차례 비판받은 시민군의 무기고 첫 탈취 시점에 대해 5월21일 오전 9시가 아닌 오후 1시30분으로 정정했고, 63대 소속 권모 일병의 사망사건과 관련해선 계엄군 장갑차에 의한 사망으로 기술했다. 하지만 최우선 규명 과제였던 계엄군 발포 최종 명령권자, 행방불명자 주검 암매장 의혹 등의 진상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24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서울 중구 5·18조사위 대강당에서 ‘종합보고서 발간 기념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활동 보고와 과제, 대정부 권고사항 등 4년6개월간의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과 국회에 종합보고서를 전달했다.
앞서 2019년 12월 설립된 조사위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최초의 기구로서 기록을 국가보고서로 남기고 화해와 재발을 방지한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이날 조사위는 헬기사격과 민간인 피해, 피해자 탄압 등 지난 4년간 새롭게 규명한 사실을 종합했다. 지난 44년간 논란의 중심이었던 헬기사격에 대해 ‘사격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500MD는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사격이 있었다고 봤고 UH-1H와 전일빌딩 탄흔의 연관성도 인정했다.
계엄군 총격에 의한 최초의 사망자는 민주화운동 이틀째인 5월19일 야간에 광주양조장 공터에서 숨진 고 김안부씨로 특정했다. 당초 김안부씨는 1995년 검찰수사에서 5월24일 타박사로 보고된 바 있으나, 이번 결과를 통해 최소 24시간 이전에 총격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5·18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이어진 피해자 탄압에 대해서도 밝혔다. 전두환씨가 전남도지사에게 망월동 묘지 이전 검토를 지시하고 505보안부대와 전남도 등 군·관·민 합동으로 공작활동을 추진한 사실도 공적 기록물로 남아 있다. 특히 5·18단체를 와해·분열시키고 비리를 조작해 관계자를 매도하는 등 순화공작을 지속해서 추진했던 점도 확인됐다.
이밖에 총상으로 숨진 사망자 135명 중 95%가 상체 부위에 피격된 것으로 파악돼 당시 계엄군의 사격이 상해를 목적으로 한 직접 지향 사격이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민간인 학살에 직접 관여한 작전부대에 대해서는 제3·7·11공수여단, 제20사단, 제31사단 등으로 특정했다.
지만원씨 등이 주장해온 ‘북한군 개입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했다.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가 전혀 없으며 5·18 당시 경찰이 남파간첩 이창용을 검거한 후 ‘광주 시위를 무장폭력 시위로 확산시키려는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무근이라 표했다.
반면 진조위는 최대 핵심과제였던 집단 발포 책임자에 대한 규명은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진조위는 “전두환이 당시 진압작전 계획의 수립과 실행을 비롯한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고 밝혔음에도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어 “현장 계엄군을 통한 진술조사를 토대로 발포 과정을 상향식으로 조사해 탄약 배분, 저격병 배치 등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그러나 그에 관련된 발포 경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진조위는 전두환씨, 노태우씨 조사 도중 이들의 가족에 대해 대면 조사조차 실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선태 진조위 위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방문 조사를 통보했으나, 대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노재현)에게 조사 의사를 밝혔으나 거부해 끝내 조사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암매장에 대해서는 “SNP방법에 의한 확인결과가 기존의 유전자 검사기법인 STR 조사를 통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특별기구를 설치해 항구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5·18 피해 당사자에 대해서는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를 폐지해 언제라도 피해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심의를 상설하라”며 “피해자 실태조사를 정례화해 의료와 생계지원 등 효과적인 시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군에 있어서는 국가공권력과 군의 책임을 주요 내용으로 군사 정훈교육 자료와 프로그램을 개발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조사위는 “신군부가 계엄법을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토대로 계엄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계엄의 발동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2019년 12월 26일 출범한 조사위는 지난해 12월 26일까지 조사 활동을 마친 뒤 대정부 권고사항을 포함한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조사위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또 자료집과 함께 책으로 발간해 전국 도서관과 학교, 단체 등에 9월 배포할 예정이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일부 계엄군과 경찰의 용기있는 증언에 감사하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처음과 끝을 가늠하면서 태산처럼 자리잡은 의혹과 쟁점들을 하나씩 넘어서고자 온 힘을 다했다. 어느 산 하나 어느 언덕 하나 우회할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국가기구로서 원칙과 근거에 의한 조사를 노력해왔고 근본이 무너지지 않도록 경계했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다”며 “이번 조사위 결과 중 성과는 성과대로 과오는 과오대로 여전히 계속할 진상규명의 토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조위)는 앞서 수차례 비판받은 시민군의 무기고 첫 탈취 시점에 대해 5월21일 오전 9시가 아닌 오후 1시30분으로 정정했고, 63대 소속 권모 일병의 사망사건과 관련해선 계엄군 장갑차에 의한 사망으로 기술했다. 하지만 최우선 규명 과제였던 계엄군 발포 최종 명령권자, 행방불명자 주검 암매장 의혹 등의 진상은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24일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서울 중구 5·18조사위 대강당에서 ‘종합보고서 발간 기념 대국민 보고회’를 열고 활동 보고와 과제, 대정부 권고사항 등 4년6개월간의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실과 국회에 종합보고서를 전달했다.
앞서 2019년 12월 설립된 조사위는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에 의한 최초의 기구로서 기록을 국가보고서로 남기고 화해와 재발을 방지한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이날 조사위는 헬기사격과 민간인 피해, 피해자 탄압 등 지난 4년간 새롭게 규명한 사실을 종합했다. 지난 44년간 논란의 중심이었던 헬기사격에 대해 ‘사격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밝혔다. 500MD는 위협사격 수준 이상의 사격이 있었다고 봤고 UH-1H와 전일빌딩 탄흔의 연관성도 인정했다.
계엄군 총격에 의한 최초의 사망자는 민주화운동 이틀째인 5월19일 야간에 광주양조장 공터에서 숨진 고 김안부씨로 특정했다. 당초 김안부씨는 1995년 검찰수사에서 5월24일 타박사로 보고된 바 있으나, 이번 결과를 통해 최소 24시간 이전에 총격이 있었음이 밝혀졌다.
5·18민주화운동 이후에도 이어진 피해자 탄압에 대해서도 밝혔다. 전두환씨가 전남도지사에게 망월동 묘지 이전 검토를 지시하고 505보안부대와 전남도 등 군·관·민 합동으로 공작활동을 추진한 사실도 공적 기록물로 남아 있다. 특히 5·18단체를 와해·분열시키고 비리를 조작해 관계자를 매도하는 등 순화공작을 지속해서 추진했던 점도 확인됐다.
이밖에 총상으로 숨진 사망자 135명 중 95%가 상체 부위에 피격된 것으로 파악돼 당시 계엄군의 사격이 상해를 목적으로 한 직접 지향 사격이었다는 점도 밝혀냈다. 민간인 학살에 직접 관여한 작전부대에 대해서는 제3·7·11공수여단, 제20사단, 제31사단 등으로 특정했다.
지만원씨 등이 주장해온 ‘북한군 개입설’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했다.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침투했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가 전혀 없으며 5·18 당시 경찰이 남파간첩 이창용을 검거한 후 ‘광주 시위를 무장폭력 시위로 확산시키려는 임무를 띠고 남파됐다’고 발표한 것은 사실무근이라 표했다.
반면 진조위는 최대 핵심과제였던 집단 발포 책임자에 대한 규명은 끝내 해결하지 못했다. 진조위는 “전두환이 당시 진압작전 계획의 수립과 실행을 비롯한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 과정의 중심에 있었다”고 밝혔음에도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이어 “현장 계엄군을 통한 진술조사를 토대로 발포 과정을 상향식으로 조사해 탄약 배분, 저격병 배치 등 의미 있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그러나 그에 관련된 발포 경위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특히 진조위는 전두환씨, 노태우씨 조사 도중 이들의 가족에 대해 대면 조사조차 실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송선태 진조위 위원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방문 조사를 통보했으나, 대문을 열어주지 않아 조사할 수 없었고, 노태우 전 대통령은 아들(노재현)에게 조사 의사를 밝혔으나 거부해 끝내 조사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암매장에 대해서는 “SNP방법에 의한 확인결과가 기존의 유전자 검사기법인 STR 조사를 통해 아닌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에 행방불명자와 암매장 의혹 사건에 대해서도 특별기구를 설치해 항구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5·18 피해 당사자에 대해서는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를 폐지해 언제라도 피해보상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심의를 상설하라”며 “피해자 실태조사를 정례화해 의료와 생계지원 등 효과적인 시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군에 있어서는 국가공권력과 군의 책임을 주요 내용으로 군사 정훈교육 자료와 프로그램을 개발해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조사위는 “신군부가 계엄법을 악용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을 토대로 계엄법과 시행령을 개정해 계엄의 발동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2019년 12월 26일 출범한 조사위는 지난해 12월 26일까지 조사 활동을 마친 뒤 대정부 권고사항을 포함한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조사위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또 자료집과 함께 책으로 발간해 전국 도서관과 학교, 단체 등에 9월 배포할 예정이다.
송선태 조사위원장은 “5·18민주화운동 진압작전에 투입됐던 일부 계엄군과 경찰의 용기있는 증언에 감사하다”며 “5·18민주화운동의 처음과 끝을 가늠하면서 태산처럼 자리잡은 의혹과 쟁점들을 하나씩 넘어서고자 온 힘을 다했다. 어느 산 하나 어느 언덕 하나 우회할 수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국가기구로서 원칙과 근거에 의한 조사를 노력해왔고 근본이 무너지지 않도록 경계했지만 아쉬움이 적지 않다”며 “이번 조사위 결과 중 성과는 성과대로 과오는 과오대로 여전히 계속할 진상규명의 토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전했다.
김은지 기자 eunji.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