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로에서 하나된 광주 시민들…5·18 44주년 전야행사
주먹밥 만들기 등 시민참여 부스 풍성
서울, 제주 등 각지서 모여 5·18 체험
풍물굿·광주선언 통해 연대 메시지도
헌법수록·진상규명·세계화 등 염원
입력 : 2024. 05. 17(금) 20:26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전야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풍물단이 ‘오월길맞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전야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광주은행 대학생 홍보단이 오월어머니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포스트잇에 적어 붙인 판넬을 전달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5·18로써 ‘하나’ 되는 기분입니다.”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오후. 5·18 기념행사의 ‘꽃’이라 불리는 전야행사가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펼쳐졌다. 1980년 5월을 재현하듯 금남로 한가운데 모인 수백 명의 광주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대동 세상’을 외치며 오월정신 계승을 다짐했다.

●‘금남로의 해방’ 시민부스 다채

이날 오전 11시부터 5·18민주광장과 금남로 1·2·3가에서는 시민들의 난장 ‘해방광주’가 열렸다. 시민참여 부스 22곳과 기획 전시, 버스킹 무대 등 다채로운 참여형 행사가 마련됐다. 특히 시민참여 부스는 국가폭력 트라우마 치료기관을 홍보하는 ‘오월심리치유이동센터’, 5·18 당시 나눔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헌혈 부스’, 5·18의 상징 ‘대동 주먹밥 나눔 부스’ 등 이 설치돼 의미를 더했다.

시민들은 차가 통제된 도로를 자유롭게 거닐며 오월어머니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고 나누거나, 오월 열사의 얼굴을 그리는 등 다양한 부스에 참여했다.

어린아이부터 휠체어를 탄 백발의 노인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난장을 즐기는 모습은 시대를 뛰어넘은 ‘공동체 정신’을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눈에 띄었다.

아들 정우현(7)군과 부스에서 5·18 슬로건 제작 체험에 참여하고 있던 강성미(41)씨는 “영화나 드라마 소재로 5·18이 많이 다뤄졌지만 아직도 5·18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왜곡되지 않은 역사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게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며 “아들도 직접 전야제를 경험하면서 5·18 역사를 배우고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금남로를 찾은 표재웅(36)씨는 “직접 5·18을 겪지는 않았지만, 광주 토박이로서 5·18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매우 크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5·18 당시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참혹했는지, 그리고 항쟁에 참여한 열사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씀해 주시기도 했다”며 “아직 어린 딸도 5·18이 근현대사에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지 직접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전야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오월어머니들이 ‘해방광주’ 시민참여부스에서 5·18의 상징인 주먹밥을 만들어 나눔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전야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오월어머니들이 ‘해방광주’ 시민참여부스에서 5·18의 상징인 주먹밥을 만들어 나눔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전야제 보러 광주 왔어요.”

이날 전야행사에는 서울과 제주 등 타지에서 온 사람들이 많아 5·18의 전국화를 실감케 했다.

헌혈버스 앞에서 만난 송모(48)씨는 “5·18 전야제에 참여하기 위해 서울에서 왔다”고 했다. 송씨는 “광주 사람이 아니다 보니 5·18의 참혹한 실상을 알게 된 지 불과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며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이 헌혈에 적극 동참했다고 들었다. 전야제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헌혈버스를 보고 참여하고 싶어 오게 됐다”며 “광주 사람이 아니다 보니 5·18의 참혹한 실상을 알게 된 지 불과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 보니 옛 전남도청 복원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전야제는 ‘시민 참여형 행사’를 표방한 만큼 당일 무대에 함께 오를 시민배우참여모집 부스도 설치됐다. 부스 스탭 김현경(50)씨는 “시민배우들은 부스에서 직접 만든 천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무덤천’을 만드는 등 퍼포먼스를 펼칠 것”이라며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왔다. 피켓에 ‘제주4·3과 5·18을 함께 기억해야 한다’고 쓴 제주에서 오신 주부 2명이 기억에 남는다. 오직 ‘5·18 기념행사’를 참여하기 위해 함께 광주를 찾았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전우원 손자의 폭로를 계기로 5·18에 관심을 갖게 된 10여명도 평택, 부평 등 각지에서 모였다. 이들은 오월어머니들과 함께 주먹밥 만들기 행사에 참여하고, 전야제 무대에 올라 합창 무대도 선보였다. 광주에 처음 왔다는 장은숙(67)씨는 “전일빌딩245에 들러 전시해설도 들었는데,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던 걸 직접 마주하니 더욱 참혹했다”며 “광주의 첫인상은 ‘민주화의 도시’다. 어떤 지역에서도 민중항쟁을 전야제 등을 통해 이렇게 크게 기념하는 모습은 본 적 없다”며 감탄했다.

●거리 메운 ‘임을 위한 행진곡’

오후 5시께가 되자 풍물굿 ‘오월길맞이’가 시작되며 전야제의 서막이 열렸다. 금남로에는 풍물굿 소리와 함께 ‘임을 위한 행진곡’이 거리에 크게 울려 펴졌다. 대형 태극기와 ‘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이라는 전야제 슬로건 깃발도 힘차게 나부꼈다. 북동 성당과 광주공원에서 출발해 금남로까지 걷는 ‘민주평화대행진’의 행렬도 금남로로 모여들었다. 풍물단은 힘껏 장구와 북을 치며 열사들의 투쟁 정신을 표현해 냈다. 행진에 참여한 각 기관 및 단체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오월 정신 헌법 수록’, ‘진상규명’ 등 각자의 염원이 담긴 피켓을 손에 든 모습이었다.

풍물 소리가 멈추자 유족 및 각계 인사들이 무대에 올라 오월정신 실천·연대의 메시지를 전하는 ‘2024 광주선언’이 시작됐다. 3년째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맞서 투쟁 중인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와 올해 광주인권상을 수상한 스리랑카 인권 활동가 수간티니씨도 무대에 올랐다.

진 마 아웅 NUG 외교부장관은 “광주가 군부를 이겨내고 민주주의를 쟁취했듯이 미얀마의 봄의 혁명도 결국 성공했다는 역사를 남기고 싶다”며 “국제 사회의 NUG에 대한 지지뿐 아니라 군부대에 대한 경제적인 제제까지 해줬으면 좋겠다. 군부 비행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한국 업체가 공급을 중단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수간티니씨는 “타밀족도 물리바이칼이라는 518 학살 기념일이 있다”며 “빛도, 길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연대를 통해 손을 잡고 나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선언문은 518공법단체 및 시민단체 세월호·이태원 유족 등이 차례로 낭독하며 ‘전국의 민주시민 및 국제사회와 머리를 맞대고 서로 연대해 518의 가치가 영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선포했다.

17일 광주 동구 금남로 일대에서 5·18민주화운동 제44주년 전야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미얀마 민족통합정부 관계자들이 무대에 올라 ‘2024 광주선언’의 연대 발언을 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오월정신 예술로 승화

오후 7시가 되자 인권·민주·오월을 상징하는 ‘언젠가 봄날에 우리 다시 만나리’를 주제로 노래, 연극, 합창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특히 올해 공연은 3개의 메인 무대를 드나들며 관객과의 소통을 높였다. 관객들은 무대와 무대 사이에 앉거나 자리를 옮겨 다니며 자유롭게 공연을 감상했다.

중학교 1학년 때 5·18을 직접 겪었다는 조삼현(58)씨는 “광주 시민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전야제를 찾았다고 들었는데, 당시 모습을 재현하는 공연으로 80년 5월의 역사를 알릴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며 “후세대가 역사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역사 계승은 계속돼야 한다”고 밝혔다.
강주비·정상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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