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숨은 기획자" 이훈우 열사 이장식
'임을~' 녹음·제작 故이훈우
민청학련·5·18 당시 수감 고초
"산자의 도리 다하란 가르침"
입력 : 2024. 05. 13(월) 11:08
12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에서 고(故) 이훈우씨의 이장식이 끝나고 유가족이 사진을 촬영했다. 박찬 수습기자
12일 오전 11시께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에서 고(故) 이훈우씨의 이장식이 진행됐다. 윤준명 수습기자
5·18민주화운동 44주기를 6일 앞둔 12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제2묘역. ‘임을위한행진곡’ 제작에 참여한 고(故) 이훈우 열사의 이장식이 진행됐다.

이날 이장식에 참석한 이씨의 유가족, 고교·대학 동문 등 30여 명은 저마다 눈시울을 붉히거나 고인의 행적을 회고하는 등 떠난 영령을 추모했다.

이씨는 원래 경기도 고양시의 한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었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부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금됐던 사실이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고 가족회의를 거쳐 이장을 결정했다.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서중·일고를 졸업한 이씨는 1973년 전남대 상과대학에 입학해 광주일고 서클 ‘광랑’을 중심으로 조직된 ‘민족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에 소속돼 반독재 항쟁을 계획하던 이씨는 1974년 4월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돼 혹독한 고문을 겪는다.

민청학련 사건은 박정희 정부 시기 민청학련 관련자 180여 명이 불온세력의 사주를 받아 국가를 전복시키고 공산정권 수립을 추진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된 조작 사건이다.

10개월간의 형기를 마치고 광주에서 학원강사로 생업을 이어가던 이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항쟁에 참여했다가 구금되는 고초를 겪었다.

1982년에는 황석영과 김종률 외 여러 후배와 함께 ‘임을위한행진곡’ 엔지니어링과 테이프 제작을 도맡는다.

이후 롯데제과에 재직하다 1990년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이씨는 제작국장, 경영지원실장 등을 역임하고 2004년 퇴직했다.

그는 지난 2018년 5월 전국 배포 과정에서 분실된 ‘임을위한행진곡’과 윤상원·박기순 열사 영혼결혼식 노래극 ‘넋풀이’ 원본 테이프 2개를 5·18민주화운동 기록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넋풀이’가 녹음된 테이프는 기증본이 유일하다.

이날 추모사를 맡은 이씨의 고교 동창 양태열씨는 “이 땅에 민주·정의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한 이들과 함께 영면에 드니 이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생각된다”며 “민주화운동 복판에서 묵묵히 소임을 다하면서도 교만하지 않은 모습은 만인에게 귀감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양씨는 “황석영, 김종률 등과 함께 ‘임을위한행진곡’을 제작한 것은 모두에게 ‘산자’의 도리를 다하라는 가르침”이라며 “뜻을 같이한 동지들과 평안한 안식을 가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아내 박두리(66)씨는 “고인이 한국 민주주의사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고민 끝에 이장을 결정했다”며 “고인은 생전 ‘임을위한행진곡’이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모든 이를 위한 노래라며 큰 애정을 보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을 도와 애써준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박찬·윤준명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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