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말 국제 미술계가 한차례 들썩였다. 2010년 결성된 20대의 젊은 건축가와 디자이너 18명으로 구성된 프로젝트 팀 어셈블(Assemble)의 터너상 수상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토니 크랙(Tony Cragg),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등 시각 예술 분야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이 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상을 주관하는 테이트 브리튼은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현대미술 매체가 아닌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선택한 것이다.
유기적인 집단 어셈블 스튜디오는 쇠락해져가는 영국 항구도시 리버풀의 그랜비에 2013년 예술적·민주적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한 때 번화가였지만 철거 위기에 놓인 그랜비의 낡은 주택 단지를 개보수하면서 활력을 불어넣었다. 지역 공동체를 위해 공예 기술 등을 교육하면서 수익 창출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러한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과 협업 체계라는 어셈블의 비전이 담긴 '그랜비 포 스트리츠 프로젝트'는 영국 권위 터너상의 영예를 안겨줬다.
과연 오늘날 미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어셈블의 사례는 동시대 미술이 더 이상 순수미술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융합, 통섭, 융·복합 등 용어들이 마치 구호처럼 생산되듯, 시대 변화와 맞물려 예술의 범주 또한 매체 간 적극적으로 네트워크하고, 기술·유전공학·건축 등 학문 간 합종연횡하면서 진화 및 확장하고 있다. 경계가 없는 유동적인 형식은 미술의 외연을 더욱 유연하고 풍부하게 한다.
때론 감성적인 미술은 이성적인 기술과 결합하기도 한다. 생명 과학과 유전 공학의 발달 속에서 바이오 아트 혹은 유전자 이식 미술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대두되었다.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브라질 출신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은 미술과 유전공학의 '교배'를 1999년 시도한다. 1년 뒤 그는 해파리에서 추출한 유전자 물질인 GFP(초록색 형광 단백질)를 토끼에게 이식하면서 녹색 빛이 발광되는 'GFP 버니'를 탄생시킨다. 당시 생명 존엄성에 대한 논란이 존재했지만, 이전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생명체가 '예술작품'이 된 것이다.
또한 오늘날 미술은 가시적 외관과 물질적 속성을 더 이상 유지하지 않는다. 물질에서 행위와 과정 등 비물질적 요소가 개입되었다.
프란시스 알리스(Francis Alÿs)의 퍼포먼스 기반 비디오 작업은 걷는 행위, 즉 노동의 수행성 자체가 예술이 되어 사회·정치적인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2004년 작가는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에서 페인트 통을 들고 장장 24㎞를 이틀 동안 걷는다. 58ℓ 가량의 페인트 통에서는 녹색 물감이 가느다랗게 새어나온다. 매우 앙상해 보이는 그의 뒷모습을 따라 녹색 선이 그림자처럼 새겨진다. 녹색 선은 국가 간 역사적 갈등을 정치적이지만 시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렇게 그의 걷는 행위는 17분 분량 비디오 '그린라인' 작품으로 남겨졌다. 영상 안에는 지나가는 이들이 보인 반응도 여과 없이 담기면서 현대미술 안의 상호작용과 열린 구조를 보여준다. 이외에도 다른 비디오 작품 '컬렉터'에서는 강아지 모양의 자석 조형물을 끌고 도시를 거닐거나, '실천의 모순'에서는 얼음 덩어리를 매우 힘겹게 밀기도 한다. 이러한 수행적인 걷기 퍼포먼스는 그를 동시대적인 작가의 반열로 오르게 했다.
매체 간 융합적인 다원예술은 동시대 미술 경향의 바로미터인 비엔날레 현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2017년과 2019년 연이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퍼포먼스 장르가 차지한 것이다. 회화, 조각, 건축, 설치, 퍼포먼스 등이 응집된 독일 국가관과 인공적으로 조성된 해변에서 일상적 행위의 퍼포먼스를 구현한 리투아니아 국가관은 각각 이목을 끌었다.
미술에서 장르 간 경계의 해체와 다원화 징조는 1960년대로 거슬러 간다. 모더니즘 미술이 굳건하게 지켜온 회화와 조각 등의 장르 순수성과 매체 단일성에서 벗어나 대지미술, 환경미술, 신체미술, 과정미술, 설치미술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분출되기 시작했다. 1969년 큐레이터 헤럴드 제만(Harald Szeemann)이 스위스 쿤스트할레 베른에서 선보인 '태도가 형식이 될 때' 전은 문자와 개념, 과정 등 새로운 요소들이 미술의 범주로 대거 유입된 전설적인 전시로 기록되고 있다. 수 백 년 동안 이어져온 손 기술 기반의 조형적 오브제에서 탈피해 과정과 아이디어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 전조 증상이 감지된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그동안 지탱해 온 전형화된 구조와 기저들이 현대사회에서는 액체처럼 유영한다 했듯, 모든 것들이 다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말한 이질적인 분야 간 넘나드는 '통섭'의 예술적 구현인 셈이다. 팬데믹과 글로벌 경제난 등 인류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타개해나갈 덕목 또한 통섭일 것이다. 견고한 것들이 액체처럼 뒤섞이는 지금, 다학제적 지식과 정보들이 재조직화되어 새로운 가치관과 패러다임을 재창조할 '골든타임'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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