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희용>왜 국회도서관 분관은 광주로 와야 하는가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입력 : 2025. 04. 28(월) 16:03
노희용 광주문화재단 대표이사
국회는 국민의 대표인 300명의 국회의원이 모여 일하는 대한민국의 최고 입법기관이다. 국회의원은 국민 주권의 대리인이다. 국민의 목소리를 법과 제도에 반영하고, 국가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들은 지역과 정당을 대표해 입법을 제안하고 심의한다. 또한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며, 국민의 삶에 직결되는 예산을 심의하고 확정한다. 요컨대 국회의원은 국민의 삶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책임 있는 대리인이다.

이러한 국회의원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는 핵심 기관 중 하나가 국회도서관이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한 도서의 보관소가 아니라, 입법 활동과 정책 결정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조사·분석·제공하는 기관이다. 동시에 국회도서관은 국민에게도 개방돼 지식정보를 공유하는 공공 플랫폼이다. 즉, 입법과 정책의 이성과 논리가 축적되는 공간이자, 국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창고다.

이처럼 국회도서관은 ‘정보의 민주화’라는 가치를 실현하는 기관이지만, 그 물리적 기반은 여전히 서울에 집중돼 있다. 부산시와 세종시에 분관이 설치됐지만, 호남에는 아직 없다. 이런 상황은 지역 간 정보 접근의 불균형을 초래해왔다. 지식과 정보도 수도권 일극 체제로 편중된 셈이다. 국회가 정보의 평등과 민주성을 추구한다면, 국회도서관의 또 다른 분관은 반드시 광주로 와야 한다. 그 이유는 지리적 여건이나 행정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다. 광주는 역사와 정신, 문화와 정체성에 있어 국회도서관이 지향하는 가치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도시다. 무엇보다 광주는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로 위상을 갖추고 있다.

1980년 5월, 광주는 계엄령 철폐와 언론 자유를 요구하며 스스로 광장에 나선 시민들의 도시였다. 시민들은 총칼로 무장한 국가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공동체의 자율과 책임으로 도청을 중심으로 한 자치 질서를 세웠다. 무정부 상태에서 도둑이 없고, 시민들이 쓰레기를 치우며 공동체를 유지했던 일화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다. 광주는 선언이 아닌 실천으로 민주를, 시민이 주인임을 증명한 도시다.

그뿐만 아니라 광주는 인권의 도시이다. 5·18 이후 유가족과 시민단체들은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수십년간 헌신해 왔다. 이 과정에서 5·18기념재단, 국립5·18민주묘지, 5·18기록관 등이 설립됐고, 이는 인권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교육과 실천의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광주는 인권을 기억의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실질적 실천의 거점이 돼 왔다.

나아가 광주는 평화의 도시다. 무력과 폭력의 상처를 경험한 도시임에도, 복수와 증오가 아닌 용서와 화해를 택했다. 시민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진실을 밝히되, 폭력의 재생산을 거부했다. 이러한 성숙한 대응은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민주화운동 도시와 연대를 형성했고, 광주는 지금도 미얀마, 홍콩, 팔레스타인 등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에 가장 먼저 응답하는 도시 중 하나다. 평화는 광주의 일상적 태도이자 시민 정신이다.

이러한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은 국회도서관의 설립 철학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라, 인간 존엄과 공동체 가치를 지식과 정보로 실현하는 공간이다. 국회도서관의 분관이 광주에 세워진다면, 이는 단순한 물리적 확장이 아니라 정신적, 문화적 가치의 확장이 된다.

광주는 국회도서관 분관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교육·문화 인프라가 풍부하고, 청년과 연구자, 예술가와 활동가 등 다양한 시민층이 지식정보를 적극 활용할 기반을 갖추고 있다. 분관이 접근성 높은 곳에 들어선다면, 이는 지역민에게 열린 지식공간이자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 될 것이다. 또한 이를 중심으로 한 콘텐츠 생산, 아카이빙, 교육 프로그램 등이 활성화되면, 광주 분관은 그 자체로 지역의 문화·지식 생태계를 자극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광주는 국회도서관 분관 설립의 전략적 요충지다. 남부권 전체의 정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허브 기능을 할 수 있다. 광주는 이미 민주, 인권의 상징 도시로서 브랜드가 구축돼 있다. 이 브랜드 위에 국회도서관 분관이라는 구조물을 올리는 것은 국가적 상징과 기능을 동시에 완성하는 일이다. 지금 광주는 과거의 역사를 품은 도시를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국회도서관 분관은 이러한 광주의 정체성과 비전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결정적 인프라다. 국회와 정부는 이제 응답해야 한다. 정보의 민주화를 말한다면, 지식의 지역 균형을 말한다면, 가장 먼저 할 일은 광주에 국회도서관 분관을 설립하는 일이다. 그것은 광주에 대한 예우이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자긍심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테마칼럼 최신뉴스더보기

기사 목록

전남일보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