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 교수의 필름 에세이>언제 봐도 청량하고 풋풋한 ‘첫사랑’ 이야기
조영명 감독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입력 : 2025. 02. 24(월)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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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명 감독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포스터. ㈜영화사테이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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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명 감독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영화사테이크 제공 |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구바즈 감독이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2006년에 출판한 소설이다(우리나라에는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2017년에 번역출판). 그후 직접 연출한 성장 로맨스 드라마 장르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가 원작 영화다. 2018년 일본에서 ‘그 시절 너의 뒤를 쫓았다’라는 타이틀로 리메이크를 한 전력이 있을만큼 아시아권에서는 알려진 영화다. 조영명 감독의 한국 버전 리메이크 판은 원작의 배경인 1994년 대만의 장화에서 2002년 한국의 춘천으로 훌쩍 건너뛰었다. 일본에서건 한국에서건 리메이크가 가능한 것은 청춘들이 성장기에 겪는 첫사랑 증후군이 시·공을 초월하여 있게 마련이어서다. 그리고 이것은 빛바랜 앨범 속 한 켠에 들어 있는 낡은 사진처럼 추억 속에서 꺼내어 들여다보는 무해한 공감의 정서가 유사해서 일지도 모른다.
월드컵으로 온 국민을 환호하게 만들었던 2002년 여름. 고2 교실에는 제각각 말썽을 피우고 한창 짓궂은 개구쟁이 남학생들에게 일치하는 견해가 있다. 전교 1등인 반장 오선아(배우 다현)가 여신으로 보일 만큼 ‘예쁘다’는 것. 다시 말해, 모범생 선아는 많은 남학생들의 뮤즈인 것이다. 철없고 장난기 많은 구진우(배우 진영)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시간에 장난을 치다 걸린 진우는 선아의 앞자리에 앉아 선아의 특별감시를 받는 벌을 받게 되면서 선아와 가까워지고 그 덕에 공부를 시작한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면 고백하리라는 원대한 꿈을 품은 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의 10대들도 수능과 대학이 인생의 전부라 생각한다.
대사에도 나오는 부분인데, 단언코 ‘그때는 몰랐지만 수능과 대학입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수능을 망쳐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열하는 선아에게 위로를 어떻게 해줄줄 몰라 서툰 표현을 하는 진우, 그의 고백이 귀에 들어올 리 없는 선아. 진우로서는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단지 선아의 머리 위에 두 손을 올려 눈을 덜 맞도록 할 뿐이다. 사랑스럽기 짝이 없는 신이다. 이 영화는 이런 신이나 노련하지 않아 보이는 신선함이 가득하다. 알고 보니, 소재가 첫사랑이듯 새내기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다. 각본을 한국적 상황과 정서에 걸맞게 각색한 김진경 작가 역시 방송 구성작가에서 영화로 갓 넘어온 바라 탄탄한 기반 위에 ‘첫’이란 관형사가 만들어내는 생동감이 있었다. 김진경 작가의 신선한 어휘력이 청신함을 더했다는 생각이다.
B1A4 출신 가수 진영의 출연도 뉴 페이스가 주는 청량감이 있었지만, 트와이스 출신 배우 다현은 데뷔작이다. 이들 아이돌 출신의 출연 작품이라는 소식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단시간 매진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한다. ‘첫사랑’이란 누구에게든 풋풋하고 청랑한 어감이다. 설렘 못지않게 가슴 아픈 애틋함과 어설픈 아쉬움이 마땅히 따르게 마련인. 그래서 개인의 드라마가 성립되는 것이다. ‘만약 그때 이랬더라면…’의 상상도 개개인의 몫이지만, 이 영화는 그 ‘만약…’도 덧입혀 놓는다. 매우 코믹한 설정으로. (실상 코믹을 뺀 로맨스는 감성의 골이 깊어져서 개인적으로 덜 반기는 편이다. 필자로서는 로맨스보다는 로맨틱 코미디가 좀더 다채롭다 생각하는 쪽이라서.) 원작도 그랬지만 원작에 충실한 이 영화도 엔딩이 주는 코믹 타격감이 있다.
“나도 널 좋아하던 시절의 내가 좋아.” 진영의 대사 중 한 대목이다. 첫사랑이란 감성은 어쩌면 나를 위한 나의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도 정서도 종국에는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스스로에 대한 뿌듯함, 만족감일 수 있으니까. 그런 경험은 사랑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 단계 성장하고 큰 의미의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성숙함을 갖추는 발판이기도 하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