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빈 시인, 고향 흑산도에 전하는 '첫 번째 편지묶음'
첫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초등 5년때 목포 유학 외로움 달래려 창작
오마이뉴스 등 20년 경력 ‘시인이 된 기자’
“참혹했던 전두환 신군부 시절 다시 재연”
언론인·예술인 폭력과 싸워야하는 존재
입력 : 2024. 12. 10(화) 18:05
이주빈 시인.
“섬에는 어머니와 유년의 벗들을 비롯한 모든 그리운 것들이 있습니다. 바다를 건너야 그 섬에 갈 수 있고, 그 바다를 건너 외지로 떠납니다. 선창은 그렇게 떠난 이들을 배웅하는 곳이자 마중하는 곳이죠.”

이주빈 시인은 10일 전남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달 펴낸 첫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에 대한 소회를 밝히며 작품에 투영된 감정과 시각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는 “제목 그대로 제 고향인 흑산도와 그 섬을 둘러싼 바다, 섬으로 가는 육지의 선창이 시가 탄생한 주요 공간이다. 시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기다림, 그리움, 아련함 등의 기본 정서가 깔린 이유”라고 밝혔다.

지난달 발행된 이 시인의 첫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은 저자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던 섬 ‘흑산도’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을 담아 육지에서 써서 보내는 편지와 같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흑산도에서 목포로 육지 유학을 갔는데 그때부터 편지를 많이 쓰기 시작했다.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친구들에게 그리움을 담아 편지를 쓰는 건 외로운 육지 생활을 달래는 가장 친근한 방법이었다”며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고등학교 시절 문예부 활동을 하며 시를 쓰게 됐고 지금도 편지를 쓰듯 시를 계속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출간된 이 시인의 첫 시집은 그의 첫 번째 편지 묶음인 셈이다.

그간 페이스북에 간간이 시를 올렸지만, 시인으로 활동했던 적은 없었던 그가 시집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강제윤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의 격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도 한 강 소장의 소개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으로부터 시집을 출판하자는 제안을 먼저 받게 된다.

“꽃을 기다리는 날에는/묏등 삐비꽃도 피지 않았다//파도를 기다리는 날에는/잔놀조차 일지 않았다.//기다리는 날에는/모두 오지 않았다//객선머리에 머리를 덩덩 찧으며 통곡을 해도/바윗돌에 심장을 북북 갈아 피를 토해도//어미는 오지 않았다/사랑은 오지 않았다”

이번 시집에 실린 시 ‘기다리는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에서 그는 지독한 쓸쓸함 속으로 자진해 들어가 돌아오지 않을 존재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불편함과 고독함을 대면하다 못해 그에 상응한 존재들과 하나 되려는 결단을 이 작품이 답변해 주고 있다.

류근 시인은 이 시인에 대해 “사람의 음성으로 말하되 불현듯 오래된 악기가 불러 주는 음유가 되는 사람, 생래적 시인이란 이런 것이다”며 호평했다.

지난달 22일 광주 남구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이주빈 시인.
이 시인은 ‘시인이 된 기자’로도 불린다. ‘오마이뉴스’에서 창간 첫해인 2000년부터 지난 2020년까지 기자로 20여년간 활동했기 때문이다. 지역공동체부 부장·영국 특파원 등을 역임하며 언론계에 몸담았던 그에게 최근 벌어진 ‘12·3 내란 사태’는 기자의 시각으로도 용납할 수 없고 시인으로서도 용인할 수 없는 극렬한 폭력의 재현이었다.

계엄사령부가 지난 3일 발표한 포고령에는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는 이에 대해 “대학생 시절과 30~40대 기자 생활의 많은 기간을 광주에서 보냈다. 군사계엄이 어떤 의미인지, 또 어떻게 공동체를 유린하는 가장 극렬한 폭력인지 잘 알고 있다”면서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 반란이 잉태한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세월을 겪은 세대가 그 참혹했던 시절이 21세기에 반복되는 걸 지켜봤고 젊은 세대는 교과서와 자료를 통해서만 마주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실시간으로 재현되는 걸 목격했다. 그저 쓴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낀 점을 글로 쓰는 건 우리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 이전에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천부인권이다. 이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제도도 침해할 수 없다”며 “이를 침해하는 폭력과 협박 앞에서 굴하지 않는 것이 양심이고, 이 양심의 명령에 따라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마지막까지 싸워야 할 사회적 존재가 바로 언론인과 예술가다”고 강조했다.

폭력 앞에서 굴종하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며 협박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는 것이 이 시인의 신념이다.

현재 그는 고향인 신안에서 섬의 문화와 역사, 생태 자원을 지역 자산으로 만드는 ‘섬문화다양성’ 활동과 기후위기 시대를 태평양 권역 시민들이 함께 협력해서 대응하는 ‘태평양기후위기대응협의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시인은 아직 구체적인 차기작 계획을 구상하고 있진 않지만, 일상에서 찾아오는 모든 감정과 배움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정련하겠다고 전했다.

첫 시집에서 버려지고 남겨진 존재들과 하나 된다는 것의 의미를 고찰했던 그가 차기작에서는 어떤 애환의 울림을 선사할지 주목된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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