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태원 잊었나…경찰이 막은 ‘충장 참사’
●이태원 참사 2주기…당신은 '안전' 하십니까 <상>
충장로 한복판 행사 인파 몰려
이동 불가능 ‘군중 유체화’ 현상
인파 흐름 유지 안전요원 2명뿐
서로 뒤엉켜 “밀지마세요” 비명
신고 접수 경찰 행사 강제 중단
입력 : 2024. 10. 27(일) 18:44
광주 동구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26일 오후 6시께 ‘충장상권르네상스 라온페스타’가 열려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이동이 불가능해지는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민현기 기자
2022년 10월 29일. 우리나라에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끔찍한 상처가 남았다. 시민들은 2년간 유지됐던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해제되면서 기대감에 부풀었고 수천명의 청년들이 이태원의 좁은 골목으로 모여 들었다. 참사가 발생했던 골목의 군중 밀집도는 가로세로 1m 안에만 16명이 있을 정도로 치솟았고 끝내 159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사 직후 조직된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방대한 수사를 거쳐 참사를 책임 있는 기관들의 무책임한 대응에 따른 인재로 결론 내렸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안전불감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좁은 골목에서 행사를 진행하면서 경찰에 집회신고조차 하지 않았고, 안전요원은 턱 없이 부족했다. 이태원 참사가 방역 조치가 해제됐다는 특수성이 있었다고 치부하기엔 ‘폭염이 길어서’, ‘가을 날씨가 좋아서’ 등 명분이 달라질 뿐 중요한 건 군중인파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없다는 게 중요한 맥락이다. 이태원 참사는 남 일이 아니다. 평소와 같은 365일 중 하루였으며 청년들은 행사가 진행되니까 즐기러 갔을 뿐이다. 친구, 가족, 심지어 자신이 휘말릴 수 있었다. 전남일보는 2년 사이 군중인파 재난사고에 대한 대책, 우리의 안전불감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그리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점검한다. /편집자주

“밀어! 밀어!”, “아 좀 밀지마세요!”

2년 전 이태원 참사 당시 발생했던 모습이 광주에서 재현됐다. 광주 동구 충장로 한복판에서 진행된 행사에 수천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인파 흐름이 멈췄다. 오도 가도 못한 시민들 사이에선 비명이 터져나올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지만, 이를 통제하는 안전요원은 터무니 없이 적어 10·29이태원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안전불감증’이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오후 광주 동구 충장로 인근에서 ‘충장상권르네상스 라온페스타’가 열렸다.

해당 행사는 광주시와 광주시 동구, 광주시 도시공사가 함께 주최해 충장로 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마다 새롭고 특별한 이벤트로 시민들의 방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진행됐다. 이날은 ‘K-POP 충장스타’ 경연대회 예선과 메인 이벤트인 ‘가을에 만나는 눈’ 콘셉트로 충장로 우체국 사거리에서 인공 ‘눈(雪)’을 뿌리고 크리스마스 트리와 포토존이 설치됐다.

문제는 행사가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만 집중되면서 대규모 인파가 몰리며 좁은 골목에 군중이 대거 몰렸지만, 안전요원이 6명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경광봉을 흔들며 시민들에게 계속 이동하라고 지시하는 안전요원은 2명 뿐이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대통령 탄핵집회에는 10여명의 참가자가 있었음에도 경찰인력이 배치됐으나 수천명이 몰린 행사장에는 경찰이 없었다.

안전요원이 목청껏 “계속 움직여주세요”라고 외쳤지만, 무대에서 K-POP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려퍼지면서 육성은 절대 전달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대 진행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 위험하다’는 민원이 계속 접수되고 있으니 유의해 달라”고 말하면서도 메인 이벤트가 시작돼 인근 건물 옥상에서 인공 눈이 뿌려지자 “모두 멈춰서 인증샷 한번 찍읍시다”고 말하는 등 모순적인 상황도 벌어졌다.

충장로 진입로에는 행사가 진행돼 차량이 통제된다는 입간판만 있을 뿐 인파가 많이 몰려 혼잡할 수 있으니 우회를 요구하거나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등의 안내는 없었다.

통로도 정확히 정해지지도 않아 우체국 사거리 네 방향에서 몰린 사람들은 공연을 보기 위해 멈추는 사람과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서로 충돌하기를 반복했고 끝내 인파 흐름이 멈추고 ‘군중 유체화’ 현상이 발생했다.

2년 전 발생한 이태원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군중 밀집도가 높아져 자의에 의한 거동이 어려운 군중 유체화 현상’이었던 점에서 충장로 행사 현장은 당장 ‘압사 참사’가 발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대가 낮게 설치된 것도 한 몫했다. 무대가 높으면 멀리서도 공연을 볼 수 있지만, 무대가 바닥에 설치되면서 가까이서 보려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들 사이에서는 ‘밀고 나가지 않으면 꼼짝없이 갇히겠는데’, ‘밀지 마세요. 위험해요’ 등 비명이 터져나왔다.

행사는 오후 6시10분께 수차례 신고로 뒤늦게 현장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위험성을 판단, 강제해산 집행을 명령하면서 중단됐다.

경찰은 충장로 인근에서 행사가 열려 사람이 몰렸다는 것을 신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몰랐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주최측은 경찰에 집회 신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법상 ‘문화행사’는 집회로 보지 않기 때문에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아 자유롭게 행사가 가능하다.

주최측은 만약 방문객이 적어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사전 경찰에 협조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광주충장상권활성화 추진단 관계자는 “행사가 강제 종료되는 등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급히 회의를 진행했고. 앞으로는 예산을 좀 더 확보해 경호 인력을 고용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그럼에도 군중 흐름이 통제가 어려울 경우 경찰에 협조 요청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민현기 기자 hyunki.min@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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