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선의 사진풍경 110>꽃피는 4월에 악몽을 꾸다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입력 : 2024. 04. 04(목) 10:21
DSC_4697(만벵듸 공동장지)
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난다.

발길을 어디로 돌려도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 4월이다

하지만 눈앞에 다가온 총선의 열기로 세상이 시끄러워서인지

제주에 다녀온 후로 꽃향기 속에서도 악몽을 꾼다.

꽃놀이에 취해가도 설움과 잔인함이 감추어진 4월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가



제주4.3사건의 흔적을 더듬어 가다

찾아간 곳은 한림 갯거리오름길에 있는 만벵듸 공동장지.

경작지 근처에 수십 기의 무덤이 몰려있는 곳

48년 4.3사건과 뒤이은 한국전쟁의 대혼란기에 예비검속 자들이

모슬포 인근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50년 음력 7월 7일 집단 학살되어

암매장되었다가 숨죽여 살던 유가족들이 56년에야 시신을 수습하여

한 유가족의 밭을 기증받아 이곳에 묻었다.



무덤들 앞에 위령비가 서 있다.

아니 내가 보기에는 버티고 있다.

60여 명의 농사밖에 모르는 농투성이들을 국가폭력으로 학살하고서

무엇이 잘났다고 비석 위에 큼지막한 태극기를 올려놨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국가는 이곳에서 토벌군으로 의기양양하면서 전과를 자랑하는가.

늦게나마 국가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해 세력의 뉘우침이 없는데 무엇으로 용서한단 말인가?



아무리 많은 횟수의 사과와 보상이 따른다고 해도

가해자의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수많은 애국지사가 가슴에 품어왔던 그 태극기가

당시 제주에서는 이승만과 그 휘하 위정자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면죄부를 주고 말았지 않았던가.

지금에 와서도 진실 앞에 서니 가슴이 미어진다.



이 같은 모순은 우리 땅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그냥 가볍게 넘기고 말일인가.

국가가 올바르게 나아간 자리에 태극기가 펄럭이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미운오리새끼’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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